20살 겨울쯤이었던 것 같다. 학교 도서관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로 시작하는 첫 구절을 읽을 때부터 나는 작가의 감성에 공감했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부엌에 대해 묘사하는 장면인데, 뽀송뽀송하게 마른 깨끗한 행주,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타일, 거대한 냉장고의 은색 문, 튀김 기름으로 눅진한 가스레인지...와 같은 평범한 표현들에서 뭔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그날 나는 앉은 자리에서 <키친>을 다 읽고, 그녀의 소설을 모두 찾아 빌려왔다. <도마뱀>, <티티새> 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그녀가 낸 책이 번역되어 출판된 것은 3-4권 남짓이어서, 도서관에 없는 것은 서점에서 구입해서 읽고 이미 빌려서 읽은 책도 도서관에 반납한 후 전부 구입했다. 그만큼 요시모토 바나나를 좋아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을 읽을 때 나는 스토리 보다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 가는 것을 즐기는 편이었던 것 같다. <암리타>라는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충격으로 몇일을 암막 커튼이 드리워진 방안에서 잠만 자는 장면이 그려지는데, 그 부분을 읽은 후엔 나 또한 암막 커튼이 쳐진 방에서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고 오롯이 내 속으로 침잠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거의 김난주씨가 맡아서 번역했는데, 그러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표현의 원작자가 요시모토 바나나인지 김난주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그래서 김난주가 번역한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도 몇 권 사서 읽어보았는데, 결과적으로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을 김난주가 번역한 버전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취향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이상하게도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신간을 더이상 사모으지 않게 되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구입한 그녀의 신간은 <바나나 키친>인데, 이 책은 소설은 아니고 그녀의 아이가 두 살 반에서 여섯 살이 되는 동안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엄마와 아이의 식탁 위의 추억과 일상의 행복을 담았는데, 그 자체로 충분히 좋았지만 어쩐지 20대에 내가 좋아하던 요시모토 바나나는 더이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어 묘한 상실감도 맛보게 했다.
어쩌면 전혜린을 좋아했던 그 감정이 요시모토 바나나로 자연스레 연결된 것일지도 모른다. 위태위태하고 불안한 나의 감정들을 다른 이가 쓴 글에서 발견할 때의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맞을까? 20대에 그녀들을 글을 찾아가면서 읽게된 것도, 30대가 되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 것도. 그리운 기분은 들어도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