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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륜휘 Oct 21. 2020

정신과 진료가 있는 날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면 

  정신과 진료가 있는 날이면 예쁘게 꾸민다. "저 언제 약 끊을 수 있죠?" 매번 묻다가 이제는 보여주기로 건강함을 어필하려는 나의 속셈이다.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다. 공방에 출근할 때는 중앙시장에서 산 몸뻬 바지에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고 편하게 작업한다. 반면 병원 외래를 갈 때는 땡땡이 원피스에 톤 다운된 검은 티셔츠를 레이어드해서 입고 워커를 신는 식이랄까. 옷이 하나의 의사 표현이라면 내가 전달코자 한 말을 워딩 하자면 이렇다.


  '외출할 때 타인을 신경 쓸 줄도 알고요. 뚱뚱해졌다고 의기소침해 지지도 않았어요. 저는 당당해요.'


  반갑게 인사하며 의사선생님께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선생님, 오리 같아요."

  선생님 표정이 무슨 말이지 고민하는 듯해 보여 손짓으로 마스크 부리 모양을 그렸다.

  "아~ 마스크가 오리 부리처럼 보였나 보구나."

  "네."

  옆에서 나를 감시하던 엄마는 또 당장 하소연 시작이다. "얘가 글쎄 아무한테나 아무 말을 해요."

  "글쎄 올케한테 웨딩사진 보다가 달걀귀신같다고 해서 올케가 엄청 난감해했던 적도 있어요."

  "아, 저는 괜찮습니다. 어머님. 우리가 본지 10년이 훌쩍인데요."

  "그래, 뭐가 문제지?"

  "잠을 잘 잤는데 눈만 감으면 잡념이 침범해 정신을 교란 시켜요."

  "계속해서 생각들이 이어져 힘들다는 말이지?"

  "네. 근데 그게 잠을 결국 방해하고 괴로워서 머리를 벽에 쥐어박아서 피를 보고 싶게 해요."

  "영상을 많이 보는 편이니?"

  "아니요. 티브이에 나오는 불안한 사운드들이 나를 불안하게 해서 안 틀어놔요."

  "체중은 줄고 있니?"

  "네. 1킬로그램 줄었어요."

  "흠. 릴리는 끊기로 하고 다른 약을 쓰려고 하거든. 한번 찾아볼게 있어봐."

  "잠이 일찍 들고 일찍 깼으면 좋겠어요. 공방에 가야 해요."

  "기분이 들뜨거나 짜증이 나는 일이 잦니?"

  "아니요. 보통인데 잠에 드는 시간이 문제에요."

  "아, 공방에는 억지로 나가는 기분이니?"

  "아니요, 울며 겨자 먹기로 나가는 기분이에요. 어쩔 수 없으니까요."

  의사는 약판을 모나미펜으로 가리키며 릴리를 없애고 리튬을 반알 더 늘리기로 했다. 또 쎄로켈을 반 알 추가했다.

  “아침 약은 잘 먹고 있니?”

  아침 약은 식욕억제제이다.

  “귀찮아서 하나도 안 먹었어요. 앞으로 못 챙겨 먹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그것도 취소할 게.”

  “3주 짓고 싶어요.”

  “2주로 짓자.”

  “3주가 좋은데.”

  “약을 변경했으니 한 번 보고 기간을 늘리도록 하자. 알겠지?”

  “네. 안녕히 계세요.”


  수면에 이상이 생기면 인지하는 것에도 무리가 따른다고 한다. 그래서 잠이 보약이라는 말은 어르신들의 주술이자 진리였다. 엄마 손은 약손 하며 배를 따뜻하게 데우는 행위도 아름다운 민속의 치료법이다. 엄마는 모다 아울렛에서 파자마를 샀는데 사이즈가 너무 커 보여서, 디자인은 또 잔체크가 닥스처럼 보여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어디 공기 좋은 실버타운 환자복 같아.”

  “그러네.”


  엄마는 의기소침했지만 이내 밝아져서 이 재질을 만져보라며 내 손을 갖다 댔다. 참 부드러웠다. 그래, 돈 많이 드는 실버타운에는 좋은 재질의 환자복을 입힐 게야. 아름답지 않은 체크였다. 왜 엄마는 꽃무늬 대신 실버타운 환자복 같은 잠옷을 샀을까? 엄마도 이제 할머니가 될 준비를 하나보다. 나는 엄마와 동행한 쇼핑길에 티셔츠를 3장 샀다. 아주 편한 티셔츠, 근데 한 군데에서 남녀 공용이라며 스몰 사이즈를 권했는데 맞을 거라고 해서 입지 않고 오케이 했는데, 집에 와서 팔을 넣어보는데 팔이 끼일 일인가. 살을 빼야지, 생각했다.


  또 의사선생님은 낮에 햇볕 쐬며 좀 걸으라고 주야장천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단언하지는 않았으나 거절하지도 않는 “노력해볼게요.” 둘러댔지만 마음은 항상 뛰고 싶은데 공방이 발목을 잡는다. 공방에는 며칠째 개미 한 마리 오지 않았다. 벌도 안 오고 바퀴벌레도 안 보인 지 제법 됐다. 무엇보다 반가운 사람이 왔으면 하고 기다리는 순간, 누군가 다급하게 공방 문을 열었다.


  애절한 눈빛으로 새하얀 아주머니가 말하기 시작했다.

  “버스가 오기 전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자주 화장실을 찾는 손님들이 오신다.

  “네~ 저쪽 뒤로 가시면 화장실 푯말 붙어 있어요.”


  밖에는 오랜만에 비가 내린다. 비가 온 뒤에는 추워질 것이라고 하니 독감 예방 이번 달 넘어가기 전에 구구와 접종하러 가야겠다. 우리는 예상외로 비실비실하니 그렇다. 독감 알레르기 반응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하니 그것이 우려가 된다. 복잡하군. 마스크 잘 착용하니까 숨이 가프다. 큰 숨을 쉬는 습관이 집에서 생겼다. 마스크와 거리두기의 일상이 언제까지 지속되려나. 우리 이러면 건강 유지할 수 있는 거겠죠? 희망의 빛이 깜박깜박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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