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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륜휘 Feb 28. 2021

느티나무와 우울의 뿌리

우울은 아무데나 심는 나무가 아냐


  “살색은 거무티티하고 뿌리는 얼마나 억센지 아무데나 심는 나무가 아냐.” 

  구구는 바다밭 입구에 느티나무 묘목을 심었다. 그것을 알게 된 아버님은 단단히 화가 났다. 느티나무의 뿌리는 멀리까지 뻗치기 때문에 단감나무를 먹어버릴 것이라고 했다. 혼쭐이난 구구는 느티나무를 반대편 산 쪽으로 옮겨 심었다. 느티나무는 거무티티하지도 않았고 염분 탓인지 흰 껍질이 돼가고 있었다. 죽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느티나무는 말이야. 마을 입구나 너른 들판에 심어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

  “느티나무의 기능은 그것이야.” 

  “요즘은 집 안에 에어컨 바람 나오지, 보일러로 따뜻하지 그런 공간이 필요가 없어져버렸지만, 옛날에는 마을 느티나무 아래 모여 쉬는 게 초가집에서 모기와 싸우는 것 보다 평화로웠어.” 

  느티나무의 성질을 잘 알고 계신 아버님은 느티나무 이야기를 한참이나 하셨다. 작은 밭에 커다란 느티나무는 그가 볼 때 필요가 없는 나무였던 것이다. 하지만 구구와 나는 눈빛을 교환하며 느티나무가 잘 살아나기를 바랐다. 느티나무 그늘 아래 텐트도 치고 싶고 캠핑도 할 생각에 신났기 때문이다. 

  “아버지. 손 안 아프세요?”

  구구가 아버님에게 물었다. 

  계속해서 뭉툭한 전정가위를 가지고 가지를 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님은 끄떡없다며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반찬 통에는 손질이 잘 된 방울토마토와 딸기가 먹기 좋게 담겨있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늦게 바다밭에 도착한 나는 시장에서 떡과 붕어빵 그리고 식혜를 사갔다. 식혜는 꽁꽁 얼어있어서 마실 수도 없는 상태였다. 꿀떡을 먹으려고 보니 포크나 젓가락을 챙기지 않은 게 뒤늦게 생각났다. 아버님은 그 순간 전정가위로 단감나무 가지를 톡톡하고 잘라서 젓가락을 만들었다. 나는 아버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엉성한 감나무 젓가락으로 우리는 꿀떡을 맛있게 먹었다. 

  중참 배달을 마친 나는 할 일이 없어서 공방으로 향했다. 고래 모양의 원단들이 책상 위에 너저분히 널려있었다. 어느 것에도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던 나는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하면 정신이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는데 그렇지도 않은 날이었다. 공방 문을 안에서 꽁꽁 잠그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우울이 느티나무의 뿌리처럼 삶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아버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그의 주장의 근거는 항상 삶에 있으며, 느티나무의 본질을 이해한 데서 출발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우울의 본질은 어디서 왔을까? 그것이 내가 고민해야 할 과제였다.


  라이브바 우산에서 몇 번 본 의사가 있다. 그는 내가 당뇨가 있다는 것을 알자 자신의 병원에 한 번 와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복용하는 조울증 약을 알게 된 그는 너무 명쾌하게 내게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다른 삶을 사셨잖아요? 그게 우울의 이유에요.” 

  나는 그 병원을 다시는 찾지 않는다. 내과 질환이 분명 있지만, 그것이 내 삶을 장악하는 우울에 도포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확신에 찬 듯 별 거 아니라는 투로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아픈 몸과 마음을 가볍게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울감도 항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울감은 외로움과는 다른 것이다. 외로울 때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서 외로움을 해소한다. 우울은 누군가를 만날 여력도 없는 상태를 만들곤 했다. 그래서 복용하는 약이 항우울제이다. 항우울제는 삶의 민감성을 건드리는 것 같다. 쓸데없이 날카로워졌고 짜증이 불쑥불쑥 뛰쳐나왔다. 공방으로 출근하는 길에는 여러가지 경로가 있다. 주로 집에서 차를 타고 큰길로 나오면 직진 신호를 받아서 골목으로 좌회전한다. 그런데 예민한 날에는 바로 직진 신호등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좌회전 하자고 짜증을 내곤했다. 좌회전을 하면 불법 유턴을 해서 공방으로 들어가는 경로가 있다. 그 경로를 혼자서 운전할 때는 자주 써먹는 방법이라서 구구에게 괜히 짜증을 내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일로 다툼이 발생하다보니 늘 항우울제를 늘인 날에는 잔뜩 긴장하고 지낸다.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도록 바라는 것이다. 

  아버님은 어제 각산 케이블카를 타고난 이후 와룡산 정상이 바뀐 것에 대해 놀랐다. 그래서 오늘 그것이 확실한 정보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신 후 기존의 민재봉이 799미터로 와룡산 정상보다 낮다는 것을 확인하셨다. 그 사진을 캡쳐한 카톡이 구구에게 도착했다. 구구는 무슨 지도가 카톡으로 왔는지 놀랐다. 주소는 경남 사천시 와룡동 산95-2였다. 와룡산의 주소를 알게 되다니 신기한 일이다. 또 아버님은 바다밭을 품고 있는 자란만에 대해서도 어원을 추측하셨다. 

  “자생하는 난이 많은 지역이어서 자란만이라고 해.”

  자란만에서 자란 나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너무 그럴싸하지 않은가 말이다. 

  세계를 이해하려고 들면 세계는 문을 열어준다고 느꼈다. 세계에 의문을 가진 자에게 언제든지 세계는 해답을 알려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버님의 말을 들으며 나의 우울을 탐구해보고자 했다. 우울도 하나의 세계이고 나는 우울이 나에게 답을 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느낀다. 

  아버님은 여든아홉 살이다. 재작년에는 혼자서 지리산 천왕봉에 오르셨고 귀여운 셀카를 가족들에게 보내왔을 정도로 건강하시다. 나는 그의 건강이 너무 반갑고 좋아서 놀라웠다. 스스로 몸을 챙기는 사람이기에 마음도 덧없이 너그럽다. 어르신들의 억지스러움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아버님이라면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까? 아버님이 우울증이라면 어떤 정보를 찾으려고 하실까? 

  언젠가 

  그가 

  보내온

  영상에는

  ‘긴장하며 살지 마라’

  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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