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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an 19. 2022

주의6_미술 수업에서 '주의' 찾기

기초 주의와 선택주의는 수업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필자의 2014년 <빛의 혼합과 라이트아트 수업> 사례를 통해 이를 분석해보려고 한다.*16


<빛의 혼합과 라이트아트 수업>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장치는 완벽한 암실로 만든 미술실이다. 우리는 흔히 우리가 느끼는 감각이나 지각을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어떤 경우도 순수한 감각이란 있을 수 없으며, 만일 어떤 감각이 강렬했다면 그 감각이 없을 경우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이미 거기에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같은 의미로 색깔이 있는 빛을 지각하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어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각을 먼저 느낄 필요가 있다. 어둠이 어떤 것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둠에 대한 감각은 관념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잠들어있을 때조차도 늘 빛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미술실을 빛이 한 오라기도 들어오지 않은 암실로 만드는 것은 빛과 대비되는 어둠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교수학습과정에서 나타나는 주의를 분석해보면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도입부

▶ 학습동기 유발

- 어둠의 체험 / 빛과 색의 관계 체험하기 / 빛과 그림자의 관계 체험하기

* 주의 분석

1. 수업이 시작되면 미술실의 불을 끈다. 검정 켄트지로 창문을 모두 막았기 때문에 미술실은 암실이 되었다. 학생들은 완벽하게 어두운 공간에 대한 경험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강한 흥분을 표출하였다. 미술실이 안전한 장소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어둠은 위기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경험이 되며, 빛과 어둠에 대한 학생들의 새로운 지각을 끌어낸다. 이 부분은 기초 주의에 해당된다


2. 촛불에 불을 붙인다. 흔들리는 불빛을 따라 교실에 움직이는 그림자가 생긴다. 시각이 회복된다. 학생들은 흐릿한 교실 풍경을 확인한다. 광량이 부족한 상태라 시각은 회복되기 전이고 교실 풍경은 회색조다. 불도 기초 주의를 끄는 도구다. 전통적으로 불은 인간의 감성과 정서를 일깨우고 의식을 집중시킨다. 학생들은 이제까지 경험했고 알고 있던 미술수업과 다른 교실 환경 때문에 혼란을 느끼고, 이후의 수업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주의를 집중한다. 선택주의로 전환할 많은 가능성을 가진 상황. 

(2) 전개

▶ 빛이 색으로 인식되는 과정 이해하기

  - 물체에 도달한 빛이 시각을 통해 뇌에 전달되는 과정을 알고, 빛과 시각과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기

▶ 모둠활동 1

- 색광을 만들어 빛을 혼합해보기(빛과 색채의 관계 알기/빛의 혼합 체험하기)

- 랜턴을 사용하여 빛의 색에 따라 사물의 색상이 달라지는 과정을 체험한다.

- 빛의 혼합이 주는 아름다움 체험 / 색광이 주는 정서적 효과와 색변화 체험

* 주의 분석

3. 미술실 전등을 켠다. 이는 일상으로의 회복의 의미가 있다. 전등을 켜는 것은 어둠과 촛불이 불러일으킨 학생들의 감각과 정서 반응을 차분하게 하고 색광의 혼합 원리 학습이라는 인지적 학습으로 안내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어둠과 촛불의 경험이 주는 정서적 효과가 너무 강하여 인지적 학습으로 쉽게 전환되지 않았다. 이는 기초 주의로부터 생겨난 흥분의 강도를 감안하여 학습 과정을 조정할 필요가 있음을 말해준다.


4. 빛의 혼합 실험과 모둠활동

빨강, 노랑, 파랑 세 가지 셀로판지를 붙인 랜턴을 흰 도화지에 비추면서 색광 혼합을 실험한다. 미술실이 환한 상태에서 실험을 시작하지만 실험을 진행하는 중간에 교사는 교실 전등을 끈다. 미술실의 전등을 끄면 갑자기 빛의 강도와 색이 강해져서 시각을 강하게 자극한다. 학생들은 색광을 혼합할 수 있고 물감과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한다. 하지만 일부를 제외하고 스스로 움직여 지금 학습하고 있는 내용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5. 교사의 안내에 따라 책상 위의 흰 도화지에 비췄던 랜턴의 방향을 천정으로 향하게 한다. 인지적 학습에 가까운 랜턴 색광 실험을 예술적으로 유의미한 표현활동으로 전환하는 순간 *17으로, 교사의 행동이 학생들의 주의의 방향을 제시하고 학습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학생들은 빛의 색만으로도 다르게 느껴지는 공간을 경험한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학생들은 빛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목표지향적인 의지를 갖게 된다. 랜턴에 그림자를 비춰보고 랜턴을 움직이거나 조명 색을 변화시켜 교실 분위기를 바꿔보는 등 자율적으로 움직이면서 표현 방법을 찾아보고 서로의 랜턴 조절을 요구하는 등 자발적으로 협업을 시도한다.


(3) 전개

▶ 모둠활동 2

- 빛과 음악을 활용한 공연 준비와 발표(빛과 음악을 통해 정서적 반향 일으키기)

▶ 정리

- 빛의 혼합을 사용한 다양한 예술 알기

* 주의 분석

6. 교사는 두 가지 다른 느낌의 음악을 제시하고, 학생들은 음악의 느낌과 빛의 색, 광량, 랜턴의 움직임을 연결하여 라이트아트 공연을 준비한다. 학생들은 음악과 빛의 정서적 연결, 모둠 친구들의 움직임과 목소리에 주의하고, 서로의 생각을 조화시키려 노력한다. 자신의 움직임을 전체 안에서 조화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표현 욕구를 제한하고 새로운 표현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작품을 공연하면서 연대감을 느끼기도 한다. 기초 주의로부터 수업을 시작했지만 이로부터 얻어진 경험이 의미 있는 경험에 이르고, 여기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또 다른 표현활동으로 스스로 나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수업은 학습자를 감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또 다른 감각으로 계속해서 안내한다.  암실, 촛불, 색광과 같은 외부 자극이 학습자의 감각을 자극하고, 학습자 내면의 정서, 사고가 만나면서 어떤 내적 충동이 생긴다. 이 충동은 학습자의 학습에 대한 자발적 동기를 추동하는 에너지가 된다. 


학습자의 내적 충동은 처음에는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막연하고 어렴풋한 추상적인 이미지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학생들은 이 이미지들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이미 자신들이 학습을 통해 알고 있던 자원을 사용한다. 여기에는 학생들의 일상생활에서의 경험과 랜턴의 광량이나 초점 조절과 도구 사용법, 색으로 공간의 분위기를 바꿔본 경험, 물감을 섞듯 빛의 색도 섞을 수 있다는 지식과 같은 이전 수업에서 학습한 내용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신들의 추상적인 이미지들을 구체화시키기에는 부족하다. 학생들은 음악의 느낌을 빛으로 표현해본 경험이 없다. 음악을 듣고 떠올린 심상을 빛이라는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구체화시키려면 이전에 학습하지 않았던 그 무엇인가를 더해야 한다. 

학생들은 먼저 교사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충분한 수량의 랜턴을 사용할 수 있는지, (처음의 학습에서는 각 모둠은 빨강, 노랑, 파란색의 세 개의 랜턴을 사용할 수 있었다.) 공연에서 말을 해도 되는지(대사)와 같은 활동 조건을 확인했다. 그 후 모둠 구성원들과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랜턴을 좀 더 빨리 돌려볼까?’ ‘그림자를 만들어 봐.’ ‘이 부분은 다 같이 빨간색 랜턴만 켜자.’ ‘랜턴을 한 줄로 만들어 봐.’ ‘이건 어때?’와 같은 대화를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학생들은 짧은 준비시간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학습에서 배우지 않았던 요소들을 포함시킬 수 있었다. 


<빛의 혼합과 라이트 아트 수업>에서 볼 수 있듯이 역동적인 수업을 만들고 싶다면 기초 주의를 끌 수 있는 학습 단계로 촘촘하게 짜인 수업을 구상하면 될 것이다. 수업은 학습자의 감각을 자극하여 상황에 몰두하게 만들고, 의식의 흐름은 끊기지 않고 이어져 마침내 유의미한 학습 경험에 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업으로 일 년의 수업을 모두 채울 수도, 채울 필요는 없다. 학생들의 학습은 감각에서 시작하기도 하지만 모든 학습이 그렇지는 않다. 어떤 학습은 의무감으로 시작하지만 학습 과정에서 자신의 내적 목표와 일치한 어떤 것을 발견하거나 비록 작은 것이라도 성취감을 얻게 되어 학습에 몰두하는 에너지를 얻기도 한다. 또 감각적인 장치로 시작한 학습이 늘 유의미한 학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감각을 자극하는 수업은 학생들의 주의를 끌 가능성이 높지만 학생들을 의미 있는 성장으로 이끌지 못하고 쾌락의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도 있다. 기초 주의를 고려하여 감각을 자극하는 단계만 촘촘하게 설계한 수업이 학생들의 피로감을 누적시켜 오히려 학습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황이 학생들의 주의를 더 잘 이끄는 것은 사실이지만 주의가 반드시 감각으로부터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주의가 생겨나고 그것이 의미 있는 학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교사는 자신의 수업을 분석하여 학생들의 주의를 적절히 이끌고 있는지, 학생들이 어떤 상황에서 깊이 있고 유의미한 학습으로 나아가고 성장하는지 잘 관찰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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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빛과 색> 수업 대상:중학교 2학년 여학생. 자세한 내용은 부록의 교수학습과정안이나 다음 사이트 참고. (https://brunch.co.kr/@gipyung/50)

*17  <5. 교사의 안내에 따라 책상 위의 흰 도화지에 비췄던 랜턴의 방향을 천정으로 향하게 한다. 인지적 학습에 가까운 랜턴 색광 실험을 예술적으로 유의미한 표현활동으로 전환하는 순간>이라고 서술했지만, 사실 어느 부분에서 기초 주의가 선택주의로 전환되었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전술했듯이 인간의 의식은 개별성을 띄기 때문에 fmri와 같은 기계로 측정해보지 않는 한 정확한 기점을 지적하기는 어렵다. 학습자에 따라서 이미 수업 초반에 선택주의로의 전환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이때까지도 표현 충동이 일어나지 않은 학습자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교사로서 수업 전체를 되돌아봤을 때 이 시점에서 확연한 교실 분위기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시점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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