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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희 Jan 24. 2022

주의 9_ 수업 사례 분석

다음은 이정임 교사(이하 이 교사)의 <기묘한 자화상 그리기>(2020년) 수업이다.*22) 이 수업으로 교사의 교육과정이 학생들의 학습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려 한다.  


이교사가 SNS로 공유한 수업 결과물을 처음 봤을 때, 여러 동료 미술교사들은 학생들의 풍부한 표현에 감탄하였다. 그로데스크 한 얼굴 너머로 넘실대는 감각의 물결 같은 것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흑백의 목탄이 가진 표현력과 입체감 있는 오브제를 사용한 머리 표현의 만남은 보는 이를 수업 제목 그대로 ‘기묘한 느낌’으로 안내했다. 

교사들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작품이 나오는 거죠?’     


수업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으면서 놀란 한 가지는 이 수업이 컨투어 드로잉으로부터 출발한 수업이라는 것이다. 컨투어 드로잉은 끊어지지 않은 하나의 선으로 대상의 윤곽선을 그리는 드로잉이다. 특히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은 시선을 대상에 고정시키고, 시선 끝에 연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도화지를 보지 않고 그리기 때문에 그리는 사람은 자신의 그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시선과 손의 운동 사이에 존재하는 이와 같은 간극으로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의 그림은 형태가 일그러진 특징을 보인다. 일그러진 형태와 자유로운 선이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망칠수록 괜찮은 그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블라인드 컨투어 드로잉을 수 십 차례 반복하다 보면 도화지 위의 손을 보지 않아도 비교적 재현에 가깝게 그리는 경우도 생겨난다. 훈련을 통해 머릿속에서 눈과 손의 움직임이 일치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다. 

여러 가지 컨투어 드로잉 수업사례 (좌 서울 김연수 선생님/우 서울 조소영 선생님)


이교사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컨투어 드로잉 하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다음 활동은 자신의 자화상에 목탄으로 음영을 칠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다양한 오브제를 붙여 머리를 표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컨투어 드로잉이 목탄의 음영, 오브제와 만나면서 독특한 심상의 초상화로 변신한 것이다.


이 수업 사례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이 수업에는 그간 이교사가 진행해 온 수업의 맥락이 있다는 점이다. 이 교사는 다른 교사들과의 대화에서 이 수업이 ‘정서와 상상 수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수업’이며, 학생들은 감각과 관련한 다른 수업을 이미 경험한 적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이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이미 감각을 표현한다는 것에 대한 선행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23 


수업 참여 학생들의 선행지식 유무가 왜 중요할까? 우리는 흔히 같은 수업 사례로 수업하면 같거나 비슷한 학습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수업은 그 수업을 진행한 교사의 전체 교육과정의 맥락 안에 있고, 교사의 평소 언행과 같은 암묵적인 표현에 의한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에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선행 지식이 같을 수 없다. 특히 명시적 학습 목표와 다른 암묵적 학습목표가 존재하는 수업일 경우 양자는 외형상 같아 보일지라도 전혀 다른 수업일 수밖에 없다. 선행지식은 학생들이 학습에서 어디에 주의할 것인지, 무엇을 발견할 것인지 탐지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학생들은 ‘선생님들마다 수업 스타일이 다르다’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교사의 수업 스킬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보다는 교사의 암묵적 교육과정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컨투어 드로잉>과 <기묘한 자화상> 수업은 각각 독립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두 가지 수업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수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서와 상상 체험’에 수업 목표를 둔 이교사의 교육과정 안에서 컨투어 드로잉은 <기묘한 자화상> 수업의 맥락 안에 놓이게 된다. 컨투어 드로잉이나 목탄 사용, 오브제 활용은 표현 방법에 불과하고 정서와 상상이라는 추상적인 학습목표가 이 수업의 진짜 학습목표가 된다. 따라서 이 수업은 ‘정서와 상상 체험’의 교육과정 안에서 컨투어 드로잉, 목탄의 명암 표현, 오브제 사용의 세 가지의 학습 주제가 위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컨투어 드로잉의 독특한 선의 느낌에 흑백의 목탄을 칠하자 본래 자신의 얼굴은 사라지고 뭔가 섬찟하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낯선 대상이 드러난다. 만일 학생들에게 감각을 표현하는 수업 경험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낯선 방식의 초상화에 거부감을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수업 결과물에 드러난 학생들의 표현에는 머뭇거림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통상적인 재현 수업에서라면 실패의 경험으로 여겼을 법한 이런 표현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확인이 있는 것만 같다. 학생들은 목탄을 칠할 때 단순히 명암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화상에서 정서를 자극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게 의도를 가지고 칠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입체감 있는 오브제를 머리에 붙이면 처음 컨투어 드로잉의 느낌은 완전히 사라지고, 내적 충동이 넘실거리는 비현실적인 인물상만 남는다. 수업의 각 단계는 독립적인 것 같지만 서로 내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뒤 쪽으로 가면서 감각의 장이 조금씩 더 열리게 설계되어있는 것 같다. 미루어 짐작컨대, 학생들은 지금 진행되는 수업 다음에 어떤 수업이 올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을 것이다. 감각은 익숙한 것보다 낯선 상황을 만났을 때 더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 수 없음’이 학생들을 수업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어떤 종착점을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겠지만 수업이 완결되었을 때 자신의 그림을 보면서 스스로 경탄했을 것이 분명하다. 

만일 이교사가 ‘컨투어 드로잉을 익숙하게 하는 것’을 학습목표로 삼았다면 교육과정 안에서 컨투어 드로잉이 갖는 위치는 달라진다. 이 수업에서의 학습목표는 컨투어 드로잉을 익숙하게 하는 것이었을 수 있고, 학생들은 마침내 재현에 가까운 자화상 그리기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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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필자는 이교사의 수업을 실제로 지켜보지는 않았다.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한 이정임 교사의 수업 결과물과 이교사와 동료 교사들과의 댓글을 보고 짐작하여 분석한 내용이기 때문에 인상비평에 가까우며, 필자의 주관이 다소 깊게 반영되었음을 밝혀둔다.

*23 윌리엄 제임스는 그의 책 심리학의 원리에서 ‘순수한 감각은 성인의 삶에서는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추상 개념’이며, ‘모든 지각은 습득된 지각’이라고 하였다. 학생들의 감각과 지각은 자신의 선행 경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차원의 주의가 필요하다. 그는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가 없으면 세밀한 것까지 깊이 보지 않는다’. 고 지적했다. 감각과 지각 역시 훈련될 수 있는 것이고, 이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감각적인 것을 표현했던 학습 경험이 선행 지식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학생들이 이 수업 이전에 어떤 수업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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