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니콜라스 파티:더스트전을 보고 왔다.(2024.08.31-2025.01.19.)
니콜라스 파티는 스위스 작가로, 미술사에서 영감을 얻어 콜라주와 샘플링을 통해 새롭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구축한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독특한 색감의 그의 작품 이미지를 보고, 10월 27일, 일요일, 호암미술관에 다녀왔다. 미술 비평가도 미술사학자도 아니니 그저 내 느낌대로 다녀온 소감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삼성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미술관의 하나인 호암미술관은 경기도 용인시에 있다. 까마득한 옛날에는 방문조차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가본 호암미술관에는 가족단위 나들이 객이 꽤 많았다. 호수 근처에 돗자리와 캠핑의자를 펼치고, 막 찾아온 가을을 만끽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전시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전통 정원인 '희원'이 있고, 정원 곳곳에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모아 온 석물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재벌이 막대한 자본으로 사라질 위기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이 아름답고 독특한 문인석은 당연히 정당하게 수집했으니 이렇게 전시하고 있는 걸 테지. 갑자기 삐져나온 삐딱이. 스스로 당황스럽다.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호암미술관 전면은 불국사 백운교, 청운교와 닮아 있다.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장이다.
니콜라스 파티는 미술사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어딘가에서 본 듯 아닌 듯, 익숙한 듯 낯선 듯, 독특한 재미를 준다. 미술사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우리나라 전시를 위해 리움미술관 소장 고미술품이 불쑥 그의 그림에 등장한다. 전시장에는 김홍도의 군선도, 십장생도, 기타 고미술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그의 작품에 사용된 부분이 어디일지 찾아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중세의 제단화의 형식을 가져온 듯한 초상화. 한 바퀴 돌아 뒷면도 감상하자.(오른쪽:루벤스의 제단화)
재료는 소프트 파스텔이라고 하는데, 요새 미술시간에 많이들 사용하는 오일파스텔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전시된 작품 수는 생각보다 많고, 시각적으로 보는 재미가 있다. 작가는 특히 반대색 대비를 아주 잘 사용한다. 강렬하고 화려하며 미묘한 색의 변화를 천천히 즐겨보자. 미술사의 가치라든지, 그런 건 다 집어치우고, 작가가 보여주는 색채의 향연에 동참해 보자.
미술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생각하면서 전시를 돌아보노라면 작가가 참 영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품에 대한 오디오 해설을 제공하고 있고, 혹시 이어폰을 가져오지 않았으면 빌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획일적인 작품 해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듣지 않았다. 작품 감상을 꼭 작가의 의도대로, 주최 측의 해설대로 감상해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나? 그저 나 좋을 대로 보고, 시각적으로 뭔가 느낄 수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전시장 로비에 작가와의 대담 동영상을 상영하고 있으니 관람이 끝나거든 다리도 쉴 겸 앉아서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작가의 생생한 육성만큼 좋은 작품 해설이 어디 있으랴.
카라바조의 성모의 죽음에서 커튼만 떼어 그린 그림. 이 전시회에는 총 세 점의 커튼 그림이 있는데, 잠시 발검음을 멈추고 검색해서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눈높이를 낮춰 석물의 위치에서 작품을 바라보면 어떨까? 석물과 작품이 같이 전시된 곳이 있는데, 하나는 작품을 등지고, 하나는 작품을 바라보게 설치했다. 뭔가 의도가 있긴 하겠지. 하지만 꼭 작가의 의도를 알아야 전시가 재미있는 건 아니다. 서있는 눈높이를 낮춰 석물 옆에 앉아서 그림을 감상해보자. 그러면 작가의 의도도 더 잘 보일까?
그림과 석물을 같이 전시한 곳도 있다.
김홍도의 군선도와 작가 작품에 샘플링된 부분도 비교해보자.
사족:호암미술관의 주차는 전시 관람과 상관없이 별도로 주차비를 내야 한다. 이건 좀 살짝 억울하단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주차비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값이라고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