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좋은 사람이야
약간의 비가 왔고
코 끝은 차가운 냉기로 인해 약간의 콧물을 머금었지만 목덜미와 이마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부끄러운 곱슬머리들이 튕겨올라와 내가 여기있오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약간의 눈물로 분명히 마스카라도 번졌었겠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떤 평강의 신이라도 기다리다 갔을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무 생각이 들지않았다. 그저 후들거리는 다리를 위해 작은 분수 앞에 기대어 있었다.
귓가에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들이 아득해지더니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가수의 옛날 노래가 내 입에서 새어나오는 것이 들렸다.
그렇게 기력이 보충되는 것 같더니 배가 고팠나 보다.
밥.. 밥... 밥....
밥 생각에 몸을 일으켜 카운터로 향했고 가락국수를 먹을까 라면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돈가스를 시키며 지갑을 뒤적였다. 그때 누가 내 뒤통수를 쳤다.
너 때문에 내가 미치겠다.
해엔드혼이 나나가가서 그거 내가기어기안나가지고 그러니까 나는 즈께온게 아닌데 뛰어다니다가 아까 난 간줄알고 어버버버 우욱욱...
검정 코듀로이 재킷에 얼굴을 파묻고 순식간에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빗물이 쏟아져 내렸다. 청초하게 발랐던 블러셔는 국물이 되어 사라지고 샤방하게 바른 비비크림이 흘러내리며 검은 재킷을 물들였다.
'띵동'
"315번 손님 식사 나왔습니다!"
"315번 손님!"
"저.. 손님, 식사 나왔다는데요."
"아, 죄송합니다."
언제나 대신 사과하던 사람이 이번에도 사과를 하며 탁자로 나를 옮겼다. 나는 비틀거리며 아기처럼 기대어 시키는 대로 곱게 앉았다.
돈가스와 된장국이 올려있는 쟁반과 화장지가 대령되었고 숨 쉴 수 있을 만큼 코를 풀고 나니 다시 사람이 된 듯 싶었다. 이내 부끄러움에 얼굴을 후딱 숙이고 말았지만.
"일단 먹어. 배고팠나 봐. 이런 상황에 밥을 시키다니.."
"..."
"뭐.. 너 답긴하다. 어떻게 사람이 변함이 없니."
"..."
"얼른 먹어. 나 시간 별로 없어."
손에 수저를 쥐어주고 돈가스를 썰어주는 모양새가 어제 만나 썰어줬던 듯 익숙했다.
차디찬 손가락들도 반가웠다. 된장국 한 입을 떼는 순간 순식간에 위장으로 음식들이 몽땅 사라졌다.
수저를 놓자 준비된 물컵이 대령되었다. 기분이 좋았다. 처음 만났을 때 그때처럼 수저도 주고 물도 주었다. 내가 왜 이 사람과 헤어졌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배가 가득하니 드디어 눈이 밝아지고 얼룩덜룩해진 재킷이 눈에 들어왔다. 미안함과 꿈이 아니구나.. 싶은 안도감이 밀려들어와 이제는 졸리기 시작했다.
"다 먹었으면 가자."
"어.. 디?"
"집에 가야지. 얼굴 봤으면 됐잖아."
"... 누구 집?"
"넌 너의 집. 난 나의 집."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저놈의 재킷도 밉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