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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s drawing Dec 17. 2015

그게아니고

그게 아니고

헤어진 사람을 붙잡는 일은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감정의 기류와 타이밍, 그리고 치밀한 심리 작전이 맞물려 가야 한다.
고백하는 순간은 뜬금포가 대박 터질 수도 있지만 이때만큼은 뜬금포도 정확한 계산 아래에 예상했던 상황에 맞춰 터뜨려줘야 한다. 이를테면 헤어지고 첫 연락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하는가 같은.. (때로는 전혀 예상 못한 곳에서 마주치기도 하지만.. 그럴 때 우린 운명이라고 느껴버린다.)


그러나 '연'이 없다면 '인'으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처음 헤어졌을 때에는 '장비'작전이었다.
감정에 맡긴 채 전화 걸어 화를 내고 집 앞으로 찾아가 화를 냈다. 그리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쿨 몽둥이로 무장한 체 단순히 분노했고 열정은 통했다.

(헤어져서 힘드느니 그냥 다시 만나자는 말에 남자친구는 크게 동의했었다.)

두 번째 헤어졌을 때는 '관우'작전이었다.
예의 있었고 침착했고 매너 있게 문자로 통화 의사를 묻고 전화통화 후 만나 고마웠다고 전했다.
그리고 역시 쿨 몽둥이찜질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약 2주가 지났고 먼저 연락이 왔다.

(첫 이별과 달라진 모습에 마음이 동했으리라 짐작된다.)


세 번째 헤어졌을 때는 '유비'작전이었다.
정과 의리에 호소했다. 오랜 만남으로 익숙한 패턴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만났다. 그리고 대화는 작고 낮은 톤으로 다양한 연애 이론들을 펼치며 객관적인 우리의 모습을 되짚어갔다. 대화는 점점 설득으로 이어져가고 남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턱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약 세 번의 대화로 우리는 다시 손을 잡았다.

(연애도 설득이 통한다. 우린 안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결론 없을 것 같은 토론을 이어갔고 그러다 보면 희망도 떠오르는 법이다.)


네 번째 헤어졌을 때는 '와룡'작전이었다.
말로, 감정으로 쓸 수 있는 패 들은 모두 노출되었고 남자 친구를 움직이기에 신선하지 못했다. 쓸 수 있는 패가 없을 때에는 초심으로 돌아가되 그때보다 세련되어야 했다. 감정을 앞세우지만 방법은 달랐다. 오래 만나다 보면 서로의 물건들이 뒤죽박죽 엉켜있기 마련이다. 갖고 있는 남자 친구의 물건들은  보잘것없었만 손 때 묻은 것이라면 가치가 달라진다. 읽고 또 읽어서 갈갈이 갈라지고 모서리가 사라진 히치콕의 단편선이 그것이었다. 그리고 곁다리로 후드티 하나와 열쇠고리, 이어폰 같은 것들이 있었다. 몇 달이 지난 후에야 택배로 보냈고 연락은 따로 하지 않았다.

 연락은 먼저 하는 게 아니라 오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보내는 타이밍도 중요했다. 금요일 오후에 받도록 보냈다.

(타이밍의 한 수가 여기다. 모두가 불금을 보낼 때 이별한 남자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배가 되고 뜬금없는 택배에 호기심을 일으키기 아주 적당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은 아주 좋은 반응이다.)

바로 연락이 왔다. 남자 친구의 회사 사정상 택배는 바로 받을 수가 없게 되어있다. 내용물을 모른 체 궁금함에 못 이겨 연락했겠지. 용건만 간단히 하고 끊을 수도 있지만 상대의 반응에 세심하게 기울어야 한다. 말을 하는 간격이나 사용하는 단어, 목소리의 높이 등등. 그리고 며칠 후 갑작스럽게 전화를 한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쁠 때의 요구사항은 더욱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만약  귀찮아한다면 작전은 실패이고 그런 사람이라면 마음도 접어야겠지.)

급하게 여행을 가게 되어서 차에 두고 온 선글라스를 부탁했다. 곳곳에 둔 인질들을 쓸 시간이다. 남자들은 자신의 물건 외에는 여자 친구의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그리고 얼마 간격으로 다른 인질들도 함께 부탁하며 통화의 횟수를 늘여갔다. (남자에게 미션이란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그런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미션은 정확하고 심플하게 인지시켜준다. 냉장고 두 번째 칸 노랑색 뚜껑 반찬통 같은..)

만나서 받기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물건을 받도록 하고 이때 남자친구가 여행의 일정을 묻는다면 작전은 반 이상 성공이다.

(누울 자리는 보면서 누워야 한다. 나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것은 매우 희망적이다.)
사실 여행 같은 건 안 가도 된다. 일정을 알고 있는 남자 친구에게 연락이 먼저 온다면 이제 밥 뜸 들이 듯 만남을 조절해 가며 처음 만나 썸을 타듯 해야 한다. 간단한 데이트를 하고 맛집 정보를 공유하고 저녁 안부 정도를 묻는다. 띄엄 띄엄. 그리고 담백한 얼굴로 지내다가 갑자기 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나 결판을 지어야 한다.

남자 친구가 반응이 없었다면 장비든 관우든 유비가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우리는 지독하게 성향이 반대였을 뿐 잘 맞는 커플임엔 틀림없었다. 나는 우리의 이별에 최선을 다했고 남자 친구는 그것에 감사하며 언제나 손을 잡아주었다. 작전은 성공했을 때 작전이라 불러줄 수 있는 것이지 실패했을 땐 그저 헛질이 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만났을 때이다. 침략한 나라도 통일시켜 성군을 베풀면 하나의 나라가 된다. 언제나 에필로그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고도 다시 만났을 때 참을 필요성에 대해 고민된다면

만남의 지속은 고려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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