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역사 속 남성성의 변곡점들과 글로벌 맥락

by NAHDAN

제5장

역사 속 남성성의 변곡점들과 글로벌 맥락

- 시대 변화의 흐름 속에서 변화해온 남성성의 작용점





1. 한국 근현대사 속 남성성의 변천사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 : 유교적 남성성의 해체와 식민지적 굴절


현대 한국 남성들의 혼란과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국 사회에서 남성성이 어떤 역사적 변화를 겪어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한국의 남성성은 지난 150여 년간 급격하고 반복적인 변화를 경험했으며,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궤적을 그려왔다.


조선 후기까지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것은 유교적 남성성이었다. 이는 '군자(君子)'라는 이상향을 중심으로 구축된 것으로, 학문적 소양, 도덕적 완성, 가족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의무를 핵심으로 했다. 조선시대 남성의 이상은 무력이나 경제적 성취보다는 도덕적 완성과 문화적 교양에 있었다. '文治주의' 전통 하에서 남성은 학문을 통해 자신을 수양하고, 가문을 돌보며, 나아가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로 정의되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서구 문명과의 충돌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런 전통적 남성성은 근본적 도전에 직면했다. 서구의 근대 문명은 조선의 유교적 남성성을 '전근대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특히 일제는 조선 남성을 '나약하고 비주체적인 존재'로 타자화하면서,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 남성들은 기존의 정체성 기반을 상실하고 깊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남성성의 변화는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첫째는 일제의 요구에 순응하며 식민지 근대화에 적응하려는 '협력적 남성성'이었다. 이들은 일본식 교육을 받고 근대적 직업을 가지면서, 식민지 체제 내에서의 성공을 추구했다. 둘째는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며 일제에 저항하려는 '보수적 남성성'이었다. 이들은 유교적 가치와 조선의 전통을 지키는 것을 남성의 의무로 여겼다. 셋째는 서구의 근대적 가치를 받아들이면서도 민족적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근대적 저항 남성성'이었다. 이들은 서구의 과학과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일제에는 저항하는 복합적 정체성을 추구했다.


이런 분열된 남성성은 해방 이후까지도 한국 남성들의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전통적 권위의 기반이었던 유교적 가치 체계가 크게 훼손되면서, 한국 남성들은 새로운 정체성의 기준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는 현재 1-2장에서 본 남성들이 겪는 정체성 혼란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기존의 준거틀이 무너진 상황에서 새로운 기준을 찾아야 하는 어려움은 한국 남성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해온 역사적 패턴인 것이다.




해방과 전쟁 : 국가 건설 주체로서의 남성성과 전쟁 트라우마


해방과 함께 한국 남성들은 다시 한 번 급격한 정체성 변화를 경험했다. 식민지에서 벗어났지만, 이제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새로운 시련에 직면해야 했다. 이 시기 남성성의 핵심은 '국가 건설의 주체'라는 역할이었다. 남성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지켜야 할 책임을 진 존재로 정의되었다.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까지의 시기에 형성된 남성성은 매우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성격을 띠었다. 좌우 이념 갈등 속에서 남성은 특정한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투쟁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이는 조선시대의 문치주의적 남성성이나 일제강점기의 순응적/저항적 남성성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남성은 이제 총을 들고 싸우고,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며, 새로운 사회 건설에 직접 참여하는 존재가 되었다.


한국전쟁은 이런 남성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전쟁을 통해 한국 남성들은 '전사(戰士)'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내재화하게 되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며, 공산주의라는 적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남성의 핵심적 역할로 자리 잡았다. 이는 매우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남성성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동시에 깊은 트라우마도 남겼다. 수많은 남성들이 전쟁에서 죽거나 다쳤고, 살아남은 이들도 극심한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경험한 남성들에게 영웅적 남성성은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부담이 되기도 했다. 또한 전쟁 과정에서 보여준 인간의 잔혹함과 비도덕성은 기존의 도덕적 남성성에 대한 믿음을 크게 흔들어놓았다.


서북청년단.jpg 서북청년단(西北靑年團, 약칭: 서청)는 미군정 당시 조직된 대한민국의 극우 반공주의 청년 단체였다.


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는 매우 복합적인 남성성이 자리 잡았다. 표면적으로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강한 남성성이 지배적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감과 상처가 깊이 스며있었다. 이런 이중적 구조는 이후 한국 남성성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강해 보이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깊은 불안감을 안고 있는, 영웅적 외관 뒤에 숨겨진 취약성이 한국 남성성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형성된 '전사적 남성성'은 이후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 체제와 강하게 결합되면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군사 정권 하에서 남성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존재로 규정되었고, 이에 순응하지 않는 남성은 '비국민'이나 '의심스러운 존재'로 낙인찍혔다. 이런 억압적 남성성은 한편으로는 사회 통합과 경제 발전에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크게 제약하는 결과를 낳았다.




산업화 시대 : '산업 전사'로서의 남성성과 경제적 성공 신화


1960년대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산업화는 한국 남성성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었다. 이 시기 남성성의 핵심은 '경제 발전의 주역'이라는 역할이었다. 남성은 공장에서, 건설 현장에서, 사무실에서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산업 전사'로 재정의되었다. 이는 이전 시대의 정치적/군사적 남성성에서 경제적 남성성으로의 중요한 전환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남성성은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극도로 희생적이고 헌신적이었다. 남성들은 가족의 생계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기꺼이 희생했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 주말 근무, 야근이 당연시되었고, 이를 감내하는 것이 남성의 덕목으로 여겨졌다. 둘째, 강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잘 살아보자', '선진국이 되자'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남성들은 이를 위해 기꺼이 고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셋째, 위계적이고 집단적이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남성들은 강한 조직 문화와 상하 관계에 익숙해졌다. 회사에서의 서열, 나이에 따른 위계, 학벌에 따른 차별 등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개인의 개성이나 자율성보다는 조직에 대한 충성과 집단 목표 달성이 우선시되었다. 넷째, 강한 경쟁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나라, 다른 회사, 다른 개인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남성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다.


이런 산업화 시대의 남성성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은 세계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남성들은 이런 성취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역이라는 자긍심은 한국 남성들에게 강한 정체성의 기반을 제공했다. 가난했던 농촌 출신 남성들이 도시로 나와 성공을 이루는 스토리는 일종의 신화가 되었다.


새마을운동.jpg 1960년대 말, 박정희 정권 하에 시작된 새마을운동의 농촌 개량 활동의 한 장면


하지만 이런 성공에는 큰 대가도 따랐다. 무엇보다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남성들은 일에만 몰두하느라 가정에서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부재하는 아버지'가 되었다. 아내와의 관계는 경제적 부양자와 가사 담당자의 기능적 관계로 축소되었고, 자녀와는 권위적이고 거리감 있는 관계가 형성되었다. 또한 극도의 업무 스트레스와 경쟁 압박으로 인해 많은 남성들이 알코올 중독, 우울증, 각종 성인병에 시달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남성성이 매우 일차원적이고 경직되었다는 점이었다. 경제적 성공만이 남성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었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남성은 '실패자'로 낙인찍혔다. 감정 표현이나 인간적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은 '남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런 경직성은 나중에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산업화 시대 남성성의 또 다른 특징은 '미래 지향성'이었다.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자로 여겨졌다. "우리 아들은 우리보다 더 잘 살 것이다"라는 믿음이 모든 희생을 정당화했다. 하지만 이런 미래 지향성은 현재를 희생하는 결과를 낳았고, 많은 남성들이 '언젠가는 행복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실제 행복을 놓치게 되었다.



민주화와 경제성장 : '중산층 가장' 모델의 전성기


1980년대 후반 민주화와 함께 한국 남성성은 또 다른 중요한 전환을 맞았다. 이 시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중산층 가장' 모델이 한국 남성성의 이상향으로 자리 잡은 시기였다. 이는 이전 시대의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남성성에서 좀 더 균형 잡히고 여유 있는 남성성으로의 변화를 의미했다.


민주화와 함께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남성들도 단순히 국가나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개인적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주 5일 근무제의 도입, 여가 문화의 발달, 소비 문화의 확산 등은 남성들에게도 '일과 삶의 균형'을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했다.


이 시기 한국 남성성의 이상형은 '성공한 중산층 가장'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주로 대기업이나 공무원)을 가지고, 적당한 규모의 아파트를 소유하며, 자가용을 운전하고, 자녀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진 남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모델이었다. 이는 이전 시대의 극단적 희생보다는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남성성이었다.


'중산층 가장' 모델의 남성성은 여러 면에서 이전과 달랐다. 첫째, 좀 더 가족 친화적이었다. 남성들도 가족과의 시간을 중시하고,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가지며,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좀 더 평등한 파트너십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둘째, 문화적 소양을 중시했다. 경제적 성취뿐만 아니라 교양, 취미, 여가 활동도 남성의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되었다. 셋째, 외모와 스타일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전 세대의 '꾸밈없는 남성다움'에서 벗어나 패션이나 외모 관리도 남성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졌다.


Capture_2025_1001_095258.png 20대 청년의 결혼관을 주제로 한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 <8시에 만납시다>의 한 장면(1981)


이 시기는 또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남성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변화했다. 더 이상 남성이 유일한 경제 활동 주체가 아니게 되었고, 가사나 육아에도 어느 정도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이었다. 여전히 주된 책임은 남성에게 있다고 여겨졌고, 여성의 경제 활동도 '보조적' 역할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산층 가장' 모델이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있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고, 중산층의 규모도 계속 확대되었다. 대학 교육의 확산, 안정적 일자리의 증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통한 자산 증대 등이 이런 남성성 모델을 뒷받침했다. 많은 남성들이 실제로 '중산층 가장'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었고,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만족감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남성성도 한계가 있었다. 여전히 경제적 성취가 남성 정체성의 핵심이었고, 이를 달성하지 못하는 남성들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또한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적응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중산층 가장' 모델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사회를 전제로 한 것이었는데, 곧 찾아올 급격한 변화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외환위기 이후 : 경제적 남성성의 균열과 정체성 위기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남성성에 또 다른 결정적 충격을 가했다. 그동안 한국 남성 정체성의 핵심이었던 '경제적 성취'와 '안정적 가장 역할'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대량 실업, 명예퇴직, 기업 도산 등을 통해 수많은 남성들이 기존 정체성의 기반을 잃게 되었다.


외환위기는 단순한 경제적 충격을 넘어서 한국 남성성의 근본적 토대를 흔들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능력주의와 성과주의가 강화되면서, 이전 세대의 남성성 모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회사에 충성하면 회사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 '열심히 일하면 승진과 성공이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가 완전히 깨어진 것이다.


이 시기부터 한국 남성들 사이에서는 깊은 불안감과 위기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많은 남성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40-50대 중년 남성들의 경우 이미 형성된 정체성과 가치관을 바꾸기 어려운 상황에서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이중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개인화'의 진전이었다. 이전까지는 집단(가족, 회사, 국가)에 소속되어 집단의 목표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면, 이제는 각자가 자신의 생존과 성공을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확대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는 이런 변화가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기존 세대와 같은 안정적 경력 경로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대신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스펙 쌓기', '토익 점수', '인맥 관리' 등이 새로운 남성의 덕목으로 부상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향상된 시기이기도 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여성 인력 활용의 필요성이 인식되었고, 성별에 관계없는 능력주의가 확산되면서 여성들의 교육 수준과 사회 참여도가 급속히 높아졌다. 이는 상대적으로 남성의 지위 하락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정보화와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남성성에 대한 도전이 더욱 강화되었다. 물리적 힘이나 전통적 남성적 능력보다는 창의성, 소통 능력, 감성적 지능 등이 중시되는 사회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남성성 모델은 점점 더 부적응적인 것이 되어갔다. 또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새로운 형태의 소통과 관계 맺기를 요구했는데, 이는 기존 남성성의 특징인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소통 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이런 변화들이 누적되면서, 2010년대에 들어서는 1-3장에서 본 것과 같은 본격적인 남성성 위기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간 진행된 구조적 변화들이 마침내 가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젊은 남성들의 경우 이런 변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면서, 기존 세대와는 전혀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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