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근대 남성성의 출현

by NAHDAN

5. 산업화와 근대 남성성의 출현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산업화 시대는 남성성이 근대 국가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강력히 구조화되며 그 정체성을 완성해가는 결정적 시기였다. 근대 국가는 남성을 생산과 통치, 전쟁과 가정의 전면에 배치했고, 산업화는 남성의 일, 권위, 시민적 책임을 새로운 규범으로 고착시켰다. 이 절에서는 산업화 과정 속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정당화되었는지를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에서 분석하며, 그 유산이 오늘날까지 어떠한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근대 국가와 남성 시민의 이상화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산업화와 국민국가 형성기는 남성성의 정체성이 전면적으로 구조화되는 시기였다. 특히 계몽주의와 시민 혁명의 영향으로 등장한 '근대적 인간상'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사회 계약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남성을 이상화했다. 이 남성상은 단지 철학적 담론에 그치지 않고, 헌법, 제도, 교육, 군사 체계를 통해 제도화되었다.


이 시기 남성은 국가의 시민이자 가족의 가장, 노동의 주체이자 전쟁의 수행자로서 하나의 근대적 전형이 된다. 공적 공간에서의 발언권, 선거권, 재산권은 오로지 남성에게 부여되었으며, 여성은 비시민으로 분류되거나 가사노동과 출산이라는 사적인 기능으로 격리되었다. 근대의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는 평등을 말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남성 시민’만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이는 곧 남성성 자체가 공공성을 구성하는 핵심 자원으로 간주되었음을 뜻한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형성된 시민권 담론은 ‘이성적 주체’로서의 남성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는 곧 법적·윤리적 주권자로서의 남성성 정체성과 결합된다. 이러한 구조는 정치적 권리뿐만 아니라 도덕적 책임의 수행을 요구했다. 국방, 납세, 투표는 남성의 의무였고, 동시에 그것은 공적 인간으로서의 인정을 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즉, 남성성은 권리와 의무의 통합된 윤리로 재정의되며, 공공의 책임을 수행해야만 ‘완전한 시민’으로 인정받는 구조였다.


프랑스군인.jpg 목숨을 담보로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이 아니라, 자신의 국가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애국심으로 무장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유럽을 휩쓸었다. (출처 : 채널예스)


학교 교육과 병역 시스템은 이를 체화시키는 핵심 수단이었다. 소년은 '국가의 아들'로 규정되었고, 학교에서는 규율, 경쟁, 성취, 합리성을 강조받았으며, 군대에서는 복종, 체력, 명령 수행 능력이 평가되었다. 이 과정은 남성에게 '이겨야 한다', '지켜야 한다', '책임져야 한다'는 도덕적 명령을 내면화시키며, 이는 곧 국가에 복무하는 시민으로서의 남성상을 고착시켰다. 시민권은 단지 투표 행위에 머무르지 않았고, 국가에 몸을 바치고 감정을 절제하며 이상을 실현하려는 정신적 자세까지를 포괄했다.


이러한 이상화된 남성 시민상은 또한 계급에 따라 분화되기도 했다. 부르주아 남성은 문명화된 교양과 통제된 욕망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었고, 노동자 계층 남성은 근면함과 성실함,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이상화되었다. 반면 이 범주에서 벗어난 남성들 -흑인, 식민지 남성, 빈민층 남성 등- 은 ‘불완전한 시민’, ‘야만적 존재’로 배제되었고, 이는 인종주의적 남성성의 제도화를 가능케 했다.


결국 근대 국가의 형성과 함께 남성성은 전면적으로 정치화되고 도덕화되며, 시민의 자격과 공공의 질서를 규정하는 핵심 잣대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로써 남성은 단지 성별의 정체성을 넘어, 근대 국가의 토대를 구성하는 인간상 그 자체가 되었고, 그 유산은 오늘날까지 시민성과 남성성을 동일시하는 관념으로 잔존해 있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진 산업화와 국민국가 형성기는 남성성의 정체성이 전면적으로 구조화되는 시기였다. 특히 계몽주의와 시민 혁명의 영향으로 등장한 '근대적 인간상'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사회 계약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남성을 이상화했다. 이때 남성은 가족의 대표이자 시민권의 주체로, 투표권과 병역, 세금 납부의 의무를 동시에 짊어지는 전면적 사회 주체로 부상한다. 여성은 대체로 가정 내에 머물렀고, 공적 세계의 주역은 남성이었다.


이러한 남성 시민상은 국가와 법, 교육 제도에 의해 적극적으로 양성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남성에게만 시민권이 주어진 현실은 곧 남성성 그 자체가 '국가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즉, 남성은 단지 가족의 보호자나 가장이 아니라, 헌법의 수호자이자 국가의 기둥으로 인식되었다. 이 시기의 남성상은 이성, 합리, 법, 조직에 대한 충성, 공공성을 향한 책임감 등으로 구성되었고, 그것은 곧 ‘정상 시민성’의 표준이 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특히 학교 교육과 병역 시스템을 통해 재생산되었다. 소년은 '국가의 아들'로 불리며 훈육되었고, 이 과정에서 강인함, 인내심, 질서 준수, 리더십은 남성의 핵심 가치로 주입되었다. 이른바 '국민 만들기'의 시대 속에서 남성은 민족의 담지자이자 전쟁과 평화, 생산과 발전을 견인하는 역사적 주체로 자리매김한다. 이는 곧 공적 영역에서 남성의 독점적 위상을 제도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산업 노동과 생계부양자로서의 남성성


산업화는 남성을 공장과 사무실이라는 새로운 생산 공간으로 내몰며, '일하는 남자'라는 상징을 중심으로 남성성을 재편성했다. 기계와 시간 규율, 대량 생산 체계 속에서 남성은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위치로 고정되었고, 이 구조는 남성의 노동이 곧 가족의 생존, 국가의 발전과 직결되는 절대적 가치로 자리잡게 했다.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이거나 비공식적 영역으로 밀려났고, 남성의 월급은 '생활임금', 여성의 임금은 '보조적 임금'으로 구분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구체적인 사례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20세기 초 미국의 포드 공장은 노동자 남성을 하루 8시간 교대제로 규율화하고, 일정 성과를 내는 이들에게는 가족 수당을 제공하며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는 남성을 적극 지원했다. 이것은 단순한 복지가 아닌 남성 가장 체제의 산업적 제도화였다. 비슷한 시기, 영국의 버밍엄 자동차 공장에서는 노동자의 결혼 여부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기혼 남성은 ‘가정을 책임지는 자’로 간주되어 승진과 보상에 유리한 구조를 갖췄다. 이는 ‘가정의 가장’이 곧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남성’이라는 서구 산업사회의 보편적 통념을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포드자동차남성노동자.jpg 1910년대, 디트로이트의 포드 자동차 공장의 남성 노동자의 모습


한국의 경우 1970~80년대 포항제철, 현대중공업 등 대규모 중공업 현장에서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제대로 일하라'는 구호가 붙었고, 이는 국가경제 발전과 가정의 안정이 '남성의 성실한 출근'에 달려 있다는 문화적 합의를 형성했다. 당시 ‘월급 봉투를 들고 오는 아버지’는 가족의 자존심이자 안전망이었으며, 남성은 일을 통해 가정 내 권위를 유지하고 사회적 도덕성을 획득했다. 반면 실직은 곧 가족 해체의 위험으로 간주되었고, 이를 경험한 남성들은 자신을 무가치한 존재로 인식하기 쉬웠다.


또한 이 시기 노동계층 남성은 신체성과 육체적 능력을 핵심 자산으로 간주받았다. 굳은 손바닥, 거친 피부, 체력은 일터에서의 신뢰를 얻는 상징이었고, 이로 인해 육체적 고통은 미화되고 감정은 억제되었다. 정년까지 회사를 지키는 것이 곧 남성 인생의 완성처럼 여겨졌으며, 이는 노동 그 자체가 곧 남성성을 입증하는 수단이 되었음을 뜻한다. 반면 감정 표현이나 우울감 호소는 남성성의 약화로 간주되어 금기시되었고, 이러한 억압 구조는 남성 개개인의 정신건강과 가족관계에 장기적 파열을 가져왔다.


결국 산업화는 남성에게 ‘가족을 먹여 살리는 자’라는 명확한 위치를 부여하며, 남성의 노동을 도덕화하고 영웅화했다. 그러나 이 영웅화는 동시에 자기 희생과 감정 억제, 인간관계의 단절을 강제하는 구조였으며, 노동에서 배제되거나 실패한 남성들에게는 존엄마저 박탈하는 잔혹한 이면을 지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자가 집안을 책임져야 한다'는 믿음은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남성 노동의 윤리와 정체성이 깊숙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직사회와 관료제 속의 위계적 남성성


근대 남성성의 결정적 무대 중 하나는 바로 조직사회와 관료제였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국가와 기업, 학교, 군대는 남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이 조직들은 하나같이 상명하복, 연공서열, 승진 경쟁이라는 구조를 통해 남성성을 훈련시키고 제도화했다. 조직 내에서 성공한 남성은 침착하고 효율적이며 감정을 억제할 줄 알아야 했다. 이는 근대 남성성을 단지 가정의 가장이 아니라, 조직 내부 질서의 수호자로 위치시키는 문화적 기제였다.


예를 들어 일본의 전후 기업문화는 ‘사무라이적 남성성’을 현대화한 형태로 작동했다. 대기업 중심의 연공서열 제도는 근속 연수와 나이에 따라 권위가 부여되는 구조로, 조직 충성심과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았다. 이런 남성상은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부하 직원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버티는 인물로 이상화되었고, 이른바 ‘회사형 인간’이라는 문화적 전형을 낳았다. 한국에서도 1970~80년대 공무원 사회와 대기업 구조는 이를 모방하며, 과장·부장·차장·상무 등 위계로 구조화된 직책 문화 속에서 ‘말단 사원에서 임원까지 오르는 사다리’는 남성성 수행의 상징이 되었다.


사무라이남성들.jpg 메이지유신 직후의 일본 사무라이 남성의 복원 사진


이 구조 속에서 남성들은 조직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통제하고, 경쟁을 내면화하고, 후배를 ‘관리’하는 존재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정해진 틀 안에서 위계를 지키며 움직이는 능력이 ‘성공’으로 평가되었고, 이는 비판적 사고보다 순응과 지속성을 중시하는 남성 문화를 강화했다. 감정노동이나 관계의 섬세함은 ‘여성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경시되었고, 이는 조직문화에서 여성들의 리더십 발현을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이데올로기로도 작동했다.


더불어 이러한 위계적 남성성은 남성 내부의 위계도 강화했다. 고졸·비정규직·외국인 노동자는 정규직·관리직 남성에 비해 ‘불완전한 남자’로 간주되었고, 이는 ‘남성성’이 단지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라 계급적 성격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위계 구조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관료제와 조직사회는 남성성 내부에도 구획을 만들고, 일부 남성만이 '정상 남성성'의 자격을 부여받도록 설계되었다.


현대 한국에서도 여전히 많은 직장 문화는 군대식 명령 체계와 유사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회식 문화, 위계적 보고 체계, 연공 중심의 승진 시스템은 ‘부드러운 리더십’보다는 ‘통제 가능한 상사’를 선호하는 남성성 관념을 지속시키고 있다. 최근 들어 ‘MZ세대’ 남성 직원들이 이런 문화에 저항하며 공정성과 수평적 관계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러한 요구가 기성 세대에게는 ‘게으름’, ‘무책임’으로 비춰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세대 간 남성성의 충돌 또한 조직 내부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관료제는 남성성을 구조화된 경쟁과 통제의 상징으로 재편했으며, 이 구조는 남성 개인에게 성취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감정의 억압과 권위 중심적 인간관계를 내면화하도록 강제했다. 이는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억압적인 구조였으며, 그 내부에서 형성된 위계와 규범은 지금도 직장 문화와 공공 조직의 깊은 밑바닥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진정한 조직 혁신은 이러한 위계적 남성성의 구조적 해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조직사회 내 남성성의 해체와 재구성 문제를 더욱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가족주의와 ‘가장’의 윤리로 내면화된 남성다움


조직사회와 병행하여, 산업화 시기에는 ‘가족주의’가 남성성의 내면적 기반을 형성했다. 이 가족주의는 남성을 집안의 기둥이자 책임자로 설정하면서, 가정 내 권위와 위계를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작동했다. 남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동시에, 자녀 교육과 부부 관계에서도 결정권을 쥔 ‘가장’으로 내면화되었고, 이는 곧 남성성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았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문화적 신화처럼 반복되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묵묵히 버틴다”, “아버지는 웃지 않아야 강하다”는 식의 서사들이 광고, 교과서, 대중문화 속에 반복되며 남성은 가정에서조차 감정과 약함을 드러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자녀는 아버지를 경외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의 결정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이는 단순한 도덕 교육이 아니라, 남성에게 침묵과 인내, 절제와 통제, 감정 억제의 윤리를 강제하는 가정 내 규율 체계였다.


1970~80년대 한국의 가정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아버지 캐릭터는 대개 무뚝뚝하지만 책임감 있는 인물로 설정되며,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녀는 반항아, 혹은 부도덕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일본의 전후 사회에서는 샐러리맨 아버지가 매일 아침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장면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이상적 남성'의 상징이었고, 미국의 경우에도 <리브 잇 투 비버>나 <파더 노우즈 베스트> 같은 1950년대 가족 드라마는 ‘이성적이고 절제된 가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미디어는 가정 내 남성의 절대 권위와 침묵의 윤리를 시청자에게 강력하게 각인시켰다.


이처럼 ‘가족 내 위계’를 정당화하는 남성상은 남성과 여성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여성 내부의 반응도 구조화했다. 많은 여성들은 남성의 역할 수행 실패가 곧 가족 전체의 경제적·도덕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구조적 불안 속에서, 남편의 권위 유지와 체면 보호에 동참하게 되었다. 이는 남편의 실직을 숨기기 위한 과장된 존중,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가족 해체를 피하려는 침묵, 혹은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여성 스스로 역할을 ‘보완자’로 재정의하려는 순응적 전략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부 여성들은 이러한 구조에 대한 반발로 가정 내 권위 구조의 재편을 시도하기도 했다. 여성 노동 참여가 늘어나는 1980년대 이후, 소득이 없는 남성보다 외벌이 여성이 더 많은 가족들이 등장하며 ‘가장의 역할’에 대한 재해석이 시작되었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 서울시 가족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정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주체가 여성인 경우에도 가족 내부에서는 여전히 남편을 '가장'으로 호명하는 경우가 70% 이상이었다. 이는 상징적 권위를 유지하려는 문화적 관성의 증거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일부 여성들은 경제적 우위와 교육 수준 향상을 기반으로 가정 내 의사결정의 균형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갈등과 폭력, 이혼율 증가 등의 사회 변화가 함께 발생했다.


가족 내 위계는 단순히 남성과 여성 간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 역할, 존엄의 분배 방식에 대한 지속적인 긴장과 협상의 장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장’이라는 호칭과 그에 따른 기능 수행 여부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가정은 남성성이 내면화되는 최후의 전선이자, 동시에 그 한계가 폭로되는 공간이다. 따라서 진정한 성평등의 실현은 가장이라는 정체성에 부여된 사회적 상징을 해체하고, 가족 내부의 관계를 수직이 아닌 수평적 상호 책임의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근대 남성성의 유산과 해체 이후의 전망


산업화와 함께 정립된 근대 남성성은 한 세기 이상을 관통하며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구조를 지탱한 규범적 인간상으로 기능해왔다. 이 남성상은 책임과 근면, 이성적 판단, 침묵과 복종, 통제된 감정으로 구성되었으며, 근대 국가의 국민, 조직사회의 관리자, 가정의 가장으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성은 그 자체로 완성된 정체성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와 사회적 통제에 따라 구성된 수행적 정체성이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남성들은 ‘이상에 도달하지 못한 남자’로서의 불안을 내면화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한국에서 '산업역군'으로 불리며 전국 경제를 지탱했던 노동자 남성들은 은퇴 이후 급격한 역할 상실을 경험했다. 이들은 회사에서는 관리자였지만, 가정에서는 감정적으로 고립된 존재로 기능했고, 은퇴 후에는 자기 효능감의 붕괴로 인한 우울과 무력감을 겪는 사례가 속출했다. 반면, 아내들은 남편의 권위 상실을 목격하면서 가정 내 권력 구조를 조정하려 했고, 이는 부부 관계의 재협상이라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전환기는 근대 남성성의 해체와 재구성이 충돌하는 구체적 현장이었다.


또한 영국의 전후 사회에서는 ‘비틀즈의 아버지 세대’로 대표되는 중산층 가장들이 경제적 번영 속에서도 가족 내 소외감을 겪으며, 자녀와의 정서적 단절, 아내와의 갈등을 겪는 사례가 대중문화와 문학을 통해 반복적으로 그려졌다. 이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화가 남성에게 강요한 '공적 성공과 사적 무감각의 이중 구조'를 드러내는 문화적 알레고리였다.


7514_5811_4251.jpg 1978~79년 ‘불만의 겨울’ 당시 영국 총파업 (출처 : 오피니언뉴스)


근대 남성성의 유산은 단지 개인적 차원의 고립감과 우울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와 사회, 조직과 가족이 모두 공유해온 하나의 ‘정상성의 기준’이었다. 이는 지금도 학교 교과서, 입사 면접, 가족 의례, 조직 관행 등 수많은 사회적 제도와 문화 코드 속에 잔존해 있으며, 남성이 느끼는 ‘해야만 하는 역할’과 여성이 경험하는 ‘대체자적 불안정함’ 모두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 남성심리연구소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50대 남성 중 47%가 “가장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구조적 남성성의 피로가 여전히 현재형임을 보여주는 데이터다.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근대 남성성의 유산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그것은 단지 남성성의 부정이 아니라, 그 내면화된 이데올로기와 수행 강박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돌봄과 공감, 감정 표현과 관계 중심의 남성성, 실패와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인간적 남성상, 그리고 ‘책임지는 존재’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진정한 남성성의 갱신은 사회 제도의 변화뿐 아니라, 교육과 미디어, 대중문화와 가정 안에서의 일상적 재인식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이라는 상징, 침묵하는 책임자라는 환상, 조직 내에서만 존재를 증명하던 규범을 넘어설 때, 남성은 더 이상 권력과 통제의 상징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상호 책임과 관계 맺기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근대의 유산 위에서 새로운 남성성의 길을 열 수 있다.


결국, 근대 남성성의 종말은 끝이 아닌 전환의 기회다. 단선적이고 경직된 역할 규범을 넘어, 다양하고 유연한 남성성을 상상할 수 있는 시대, 그것이 우리가 열어가야 할 다음 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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