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남성성의 관계는 인류 문명의 가장 오래된 질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 초기 인류 사회에서 외부의 위협에 맞서 공동체를 보호하고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역할은 대개 남성에게 주어졌다. 이는 단순한 힘의 분배가 아니라, 위협을 감수하는 존재로서의 남성에게 상징적·도덕적 권위를 부여한 문화적 기원이었다. 남성은 공동체 외부의 전장으로 나아가 생존과 명예, 집단의 안녕을 책임지는 전사로 정체화되었고, 이러한 역할 수행은 점차 '남자다움'의 핵심 특질로 자리잡게 된다.
고대 사회에서 전쟁은 단순한 충돌이 아니라, 권력과 종교, 생존과 명예가 결합된 통치 행위였다. 그리스의 스파르타 전사, 로마의 군단병, 메소포타미아의 정복자들은 모두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 남성상으로 제시되었고, 용기, 충성, 복종, 희생은 가장 고귀한 남성적 미덕으로 숭상되었다. 스파르타에서는 신생아의 생존력 테스트부터 시작해, 일곱 살부터 병영 생활을 시작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를 만드는 체계를 갖췄다. 젊은 스파르타 전사가 죽을 때 어머니가 무덤 앞에서 "방패를 들고 돌아오거나, 그 위에 실려 돌아오라"고 말하는 장면은 전사적 남성성이 단지 전투기술이 아닌 명예와 충성의 절대적 가치로 작동했음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로마의 군단병은 개인보다 집단의 명예와 훈련을 우선시하며, 전투에서의 패배는 단지 실패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치욕으로 여겨졌다. 패배한 병사는 장군 앞에서 자결하거나, 혹은 10명 중 한 명을 임의로 처형하는 ‘데시메이션(decimation)’이라는 공포의 통치 방식 아래 놓였다. 이 방식은 병사들에게 ‘죽음조차 조직의 명령과 질서를 위해 감내할 수 있는 것’임을 체화시키며, 남성성과 복종 사이의 극단적 결합을 제도화했다.
남성성과 전사의 결합은 문명권마다 다르면서도 유사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부시도(武士道)라는 윤리 체계를 통해 목숨보다 명예를 중시했고, 유럽의 기사도는 신에 대한 충성, 여성에 대한 보호, 약자에 대한 정의의 실현이라는 삼중의 미덕을 내면화시켰다. 몽골의 기마 전사들은 대제국을 형성하며, 오로지 승리와 충성, 그리고 즉각적인 복종을 통해 유목제국의 질서를 구축했다. 이들은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윤리적 존재’로서 남성을 이상화했고, 이는 가족 내부에서도 ‘아버지의 권위’로 연결되었다.
전쟁에 나가 싸우고 살아 돌아온 남성은 단순한 생존자가 아닌 영웅 서사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 서사는 공동체의 문화적 기억으로 남아 후손에게 계승되었다. 이러한 상징은 자녀 교육, 재산 상속, 사회적 지도자로의 진입에도 정당성을 부여하며, 전사적 남성성을 사회 질서의 근본 이념으로 고착시켰다. 요컨대 전사적 남성성은 물리적 보호 기능을 넘어서 사회적 질서를 조직하는 남성 권위의 핵심 코드로 작동했으며, '싸울 줄 아는 남성'이 곧 '공동체를 책임질 수 있는 남성'이라는 도식을 만들어냈다.
이 단락은 전쟁이 어떻게 남성의 존재 방식을 규정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첫 고리이며, 전사적 남성성이 곧 인간적 이상으로 기능했던 기원을 설명하는 기초가 된다. 다음 단락에서는 고대 및 중세 전사 문화의 형식과 철학, 그리고 그것이 남성성의 상징으로 어떻게 진화했는지 살펴본다.
고대와 중세는 전사적 남성성이 사회의 중심 질서로 작동했던 시대였다. 이 시기의 전쟁은 단순한 무력 충돌이 아니라, 지배 질서의 유지, 종교적 정당성 확보, 영토 확장, 계급 위계의 강화 수단이었으며, 이러한 모든 행위의 주체는 거의 예외 없이 남성이었다. 이때 전사로서의 남성은 단지 싸우는 기술자나 병력이 아니라, 사회적 윤리와 질서의 구현체로 상징되었다. 그 존재는 물리적 강인함뿐 아니라, 명예와 충성, 절제와 희생이라는 가치체계 위에 구축되었다.
중세 유럽의 기사도는 그 전형적인 사례다. 기사는 단순한 무장병력이 아니라, 신에게 충성하고 여성을 보호하며, 약자에게 정의를 구현하는 도덕적 전사였다. 이들은 '기사의 맹세'를 통해 신 앞에서 도덕성과 무력의 조화를 약속했으며, 이로써 단지 전투력이 아닌 인격과 윤리의 상징으로 기능했다. 특히 십자군 전쟁에서 기사들은 신앙의 수호자이자 민족의 대표로 출전했으며, 전장에서의 승리나 패배는 공동체 전체의 신성성과 운명에 직결되는 사건이었다.
이슬람 세계의 전사 문화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칼리프를 중심으로 한 정복 전쟁은 지하드(Jihad)라는 종교적 명분 아래 이루어졌고, 이는 단순한 점령이 아니라 신앙의 확장을 위한 성전으로 해석되었다. 이때 남성 전사는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신성한 병기로 간주되었고, 죽음은 곧 천국으로 가는 통로였다. 이슬람 전사 문화는 순교와 복종, 신의 절대 권위에 대한 충성을 중심으로 남성성을 구성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일부 문화권에서 전통적 남성상으로 계승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시대의 전사들은 충의와 효를 동시에 실천하는 이상적 남성상이었다. 유비와 관우의 우정, 충성심은 단지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사회 질서를 수호하는 남성다움의 상징으로 확립되었으며, 이는 조선 유학자들의 이상적 군자 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전쟁 영웅들을 충신과 열사로 기리며 사당을 세우고, 남성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는 동시에 유교적 윤리를 내면화하도록 교육했다.
이처럼 고대와 중세의 전사 문화는 단순한 전투 능력을 넘어 윤리적 남성상을 이상화하며, 전쟁을 통해 남성성을 입증하고, 사회적 위계 속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냈다. 명예는 그 자체로 생명보다 중요했고, 복종은 공동체를 위한 책임으로 여겨졌으며, 충성은 신과 왕, 가문과 가족, 그리고 조국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문화적 기제는 오늘날까지도 '남자는 희생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잔존해 있으며, 남성성 내부의 윤리와 의무에 대한 감각을 형성하는 원형으로 작용한다.
근대에 이르러 국가가 형성되고 국민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남성성과 전쟁의 관계는 더욱 제도화되고 집단화되었다. 특히 국민국가 체계에서 병역의무는 ‘남성 시민성’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제도로 자리 잡았다. 남성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육체와 의지, 정신을 지닌 존재로 국가에 봉사하는 것을 요구받았으며, 병역은 단순한 방위 수단이 아니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는 통과의례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국민군’이 창설되고, 프로이센과 나폴레옹 체제 하에서 병역 제도가 국가 통합의 기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는 곧 남성 시민은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의무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졌고, 그에 따라 남성성은 ‘국가를 위한 자기 희생’, ‘규율에 대한 복종’, ‘훈련된 육체와 정신’이라는 요소들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구조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 한국 등 국가주의가 강한 국가일수록 더욱 강조되었으며, 학교 교육과 병영 훈련을 통해 조기 내면화되었다.
병역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시민적 차이를 제도적으로 고착화하는 핵심 장치이기도 했다. 여성은 생명을 낳는 존재로, 남성은 국가를 지키는 존재로 역할 분리가 이루어졌고, 이는 단지 기능의 차이를 넘어 정체성의 분리로 이어졌다. 남자는 병역을 수행해야만 진정한 어른, 시민,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병역 기피나 면제는 곧 사회적 낙인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은 남성성에 국가주의적 의무감을 심어주며, 동시에 타자에 대한 적대, 경쟁적 사고, 감정 억제 등의 특징을 고착화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병역은 여전히 남성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군 복무 경험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일부이며, 직장문화나 남성 간 위계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남성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스트레스와 외상 후 증후군(PTSD), 자존감 손상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병영 내 폭력과 비인간화, 감정 억제 문화는 전쟁 없는 시대에도 남성들을 ‘전시 체계’ 속 인간으로 머물게 한다.
한편, 병역은 국가 권력과 개인의 신체를 연결시키는 가장 극단적인 양식이다. 현대 생명정치학(biopolitics)의 관점에서 볼 때, 병역은 단순히 국방을 위한 제도 이상으로, 남성의 육체와 감정을 통제하고 길들이는 국가 권력의 핵심 기제다. 미셸 푸코가 말한 '규율 권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 바로 병영이며, 이곳에서 남성은 자신의 신체를 국가에 종속시키는 법을 배우고, 공동체보다 국가의 명령을 우선시하는 인간으로 훈련된다. 이는 남성의 인격 전체를 규율화하고, 때로는 인간성을 해체하면서까지 남성성을 ‘전투 가능한 존재’로 변형시킨다.
따라서 병역과 남성성의 결합은 국가와 남성 간 관계를 규율과 의무 중심으로 고정시키는 동시에, 남성성을 권력과 복종의 함수로 재편해왔다. 이 구조는 시민으로서의 남성이 책임과 헌신을 다해야 한다는 긍정적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남성이 갖춰야 할 감정 표현, 관계의 유연성, 공감 능력 등의 요소를 억제하는 이중적 효과를 낳는다. 더 나아가, 우리는 병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남성성의 규범이 미래에도 유효한지, 혹은 새로운 사회적 남성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근대 이후 병역 제도와 군사교육을 통해 길들여진 남성성은 단순히 제도에 적응하는 차원을 넘어 군사적 가치 체계 자체가 남성의 인격에 내면화되는 현상으로 발전하였다. 남성은 명령에 따르고 감정을 억제하며, 강인함과 침묵, 자기 희생을 미덕으로 삼는 존재로 교육받았으며, 이는 곧 사회 전반에 걸쳐 '진짜 남자'로서의 판단 기준이 되었다. 이러한 군사화된 남성성은 단지 병영에 머무르지 않고, 일터, 가정, 정치,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 퍼져 폭력적 규율과 위계, 복종과 통제를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를 낳았다.
이러한 군사화된 남성성은 개인적 삶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재현된다. 회사의 조직문화에서 상명하복과 침묵, 무조건적 충성이 요구되며, 회식 문화에서의 음주 강요, 체벌적 장난, 선배-후배 위계는 군대식 질서의 연장이자 남성성의 증명 방식으로 기능한다. 가정에서도 가장의 말은 절대적이어야 하고, 감정 표현은 나약함의 상징으로 치부되며, 분노는 정당한 감정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이는 남성이 자신과 타인을 모두 폭력적으로 통제하게 만드는 구조이며, 그 결과로 가정폭력, 직장 내 괴롭힘, 학교 폭력 등 사회 전반에서의 비가시적 폭력이 정당화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군사화된 남성성은 국가의 전쟁 수행 논리와도 깊이 결합되어 있다. 남성이 ‘국가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로 길러질 때, 그의 생명은 집단적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며, 그 고통과 트라우마는 ‘강한 남자’의 상징으로 미화된다. 이 과정에서 남성은 타인의 고통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통에도 무감각해지도록 훈련되며, 이는 공감 능력의 저하와 심리적 고립을 초래한다. 결국 이러한 남성성은 사회의 폭력적 갈등 구조를 내면화한 존재로 살아가게 만든다.
이와 같은 내면화는 단지 국가나 조직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감정 구조, 대인 관계 양식, 자기 정체성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감정적 유연성, 협력과 돌봄, 비폭력적 대안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군사화된 남성성은 경쟁에서 이기고, 위계에서 승진하고, 질서 안에 복종하는 것으로만 남성됨을 확인하려는 왜곡된 정체성의 문화적 결과물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폭력적 남성성의 내면화 구조를 인식하고, 그 해체를 위한 사회적·문화적 재구조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병영 중심의 남성성 교육에서 벗어나, 감정과 돌봄, 협력과 평화를 기반으로 한 비군사적 남성성 모델을 제시하는 일이 필요하다.
전쟁과 남성성의 오랜 결합은 인류 문명의 질서, 국가의 체계, 문화의 서사 속에서 남성을 전사로, 보호자로, 지배자로 형상화해왔다. 그 결과 남성은 사회적 기대 속에서 감정을 억제하고, 위계에 복종하며, 언제든 싸울 수 있어야 하는 존재로 길들여졌다. 이 전사적 남성성은 때로는 긍정적인 책임감과 리더십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폭력의 정당화와 감정적 고립, 자아의 단선화를 초래하는 한계도 안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전사적 남성성이 구축한 문명적 구조를 성찰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산업화와 탈산업화, 디지털 사회의 도래, 젠더 평등 담론의 확산은 더 이상 전통적인 남성성의 틀로 인간을 재단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평화와 돌봄, 감정의 표현과 협력이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형성하는 시대 속에서, 과거의 전사적 남성성은 전환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곧 남성성의 해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정한 남성성의 확장을 뜻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한 책임감, 타인에 대한 공감, 권위가 아닌 이해를 기반으로 한 리더십—이러한 특성들은 '전쟁 없는 전사'로서의 남성을 구성할 수 있다. 이는 비폭력적이고 협력적인 시민성을 갖춘 존재로서의 남성성을 의미하며, 더 이상 싸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남성의 미래상을 제시한다.
국가도, 교육도, 문화도 이제는 남성에게 ‘싸움’과 ‘희생’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요구해야 한다. 남성은 이제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연대하기 위해 존재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며, 이는 곧 남성 해방의 출발점이자 평화적 사회의 기반이 된다.
전사적 남성성은 과거의 질서였다. 이제 우리는 그 유산을 기억하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행해야 한다. 그 전환점은 평화적 남성성, 곧 공감하고, 협력하고, 스스로를 돌보며 타인과 관계 맺는 능력으로서의 남성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