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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혜 Eunhye Jeong Aug 22. 2021

성음, 음색과 소음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서양음악은 근대의 화성적인 조성 음악 발달에 포화 내지는 한계점에 이르렀다. 현대 작곡가들은 음고를 중심으로 발달한 서양음악의 현재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돌파구를 찾았고, 그 방식과 접근은 다양했다. 이 중에서도 소음과 음색에 주목하여온 20세기 서양 현대 작곡가들이 있다.


... 서양음악의 세계에서 음고는 소리 현실의 다른 측면들을 배제하거나 최소한 무력화시킨 채 우울한 것으로 취급된다. 좀 과장되게 말하면 음고는 근대 서양음악의 유일한 음악적 재료가 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근대 서양음악에서 음색이나 음가, 음의 강약 등이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음고만이 체계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매혹의 음색>, 김진호


서양음악에서는 여러 음악의 요소들 중에 음고만이 체계를 갖춘 것으로 여겨졌다는 말이다.


나는 비음악적 소리라 할 수 있는 소음을 소음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소음騷音은 불규칙적이고 떠들썩한 소리를 말한다. 그러나 모든 물리적 현상에는 원리가 있기 마련이고, 상대적인 차이가 있을 뿐 소리를 만드는 원리는 동일하다. 자동차의 소음을 자동차 소리라고 하고 피아노의 도레미 음을 피아노 소리라고 부를 때 비로소 이 모든 소리를 평등한 위치에서 논의하고 다룰 수가 있다. 그 어떤 소리도 비음악적, 음악적이라고 차등을 두지 말아야 편견 없이를 음악을 듣고 음악을 만들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음색의 경우는 그 자체로 대단한 예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도 서양음악의 발달에서 무시되어 온 것이 자명해 보인다. 음의 색과 질감은 모두 다양한 각도, 다양한 차원을 모두 지닌 소리에서 풍성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또한 그것이 어떠한 악기나 그 누군가의 목소리이거나 특정 연주자만의 독특함이거나, 모두 개별성과 개성과 관련한 것이다. 개별성과 개성은 상대적이며 따라서 규격화된 체계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체계를 만든다는 것은 구체적인 실체에서 분리되어 도출되어 작아진 정보이므로, 개별성에 대한 체계를 만들 필요도 없고,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만 동양적 접근과 같이, 어떠한 큰 범주를 그려내어 연속적 실체의 덩어리인 우주를 적절히 구분 짓고 그것이 끊임없는 운동성 속에서 인간의 주체성과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개별성과 보편성 그 어느 것도 희생되지는 않게 된다. 과도한 추상화와 체계화의 시도는 변동성과 자연스러운 개별성의 자리를 좁히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음색적인 개별성이 강한 특정한 구체적인 소리를 추상적인 음악화하는 것이 어떠한 대단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지도 의문이다. 우리가 매일 지구를 팽이처럼 돌리거나, 태양 주위를 달리도록 하지 않지만 이미 일정한 규칙적 운동을 하고 있고, 기본적인 시공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수많은 지구 위의 인생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음악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즉 모든 소음이 음악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심장 소리마저도!


이렇게 소음을 가치판단 이전의 정체성인 '소리'로 이해하고, 음색을 소리의 개별성과 구체적 실체에 관한 것이라고 재정의를 내렸을 경우, 이는 정확하게 우리 전통에서의 '성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차이점은 존재한다. 이는 바로 소리 물질에 대하는 태도와 행위에 있다. 소음과 음색을 음악 재료라는 관점으로 파악하는 경우, 다시 한번 서양적 접근의 한계로도 보이는 주객의 분리에 환원된다. 그러나 성음은 이와는 달리 객을 주에 끌어당겨 맞물린 그 지점이 현현한 어떠한 경지이자 결과이다. 국악에서 좋은 성음을 지닌 연주자나 소리꾼은 음의 고저장단뿐만 아니라 원근감, 무게감, 기세 등의 다양한 요소를 다차원적으로 표현하여 자연의 소리 -- 서양에서는 비음악적 소리인 소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를 실감 나게 표현한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배음이나 음색, 좁거나 두텁거나 하는 등의 요소들이 그 성음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묘사와도 다르다. 만약 뻐꾸기 울음을 표현한다고 하면, 뻐꾸기를 연상시키거나 이를 닮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뻐꾸기가 되어 뻐꾸기 소리를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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