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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혜 Eunhye Jeong Nov 19. 2022

[단상] 발리에서 한 달이 일깨워준
자연의 힘

자연의 힘 1 - 적도와 가까운 발리


자연의 위력을 여실히 느꼈다. 적도의 기후. 각도가 벌어지며 어떠한 방향을 향해 가파르게 이동하지 않고, 일 년 내내 태양이 머리 위에서 동심원으로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발리의 가멜란 소리는 일 년 내내 시끄럽게 쨍한 햇살과 은근히 그늘처럼 드리워진 찬 달기운의 조화 같다. 한국에 돌아오니 체감하는 태양의 영향이 거의 80프로 이상으로 줄었다. 여름 내내 아우성이던 햇빛이 훅 빠지니 출가한 아들딸의 빈 방을 바라보는 시원섭섭한 중년 어머니가 된 기분이다. 



자연의 힘 2 - 해와 달이 교차하는 흐름, 이와 조화를 이루는 나의 몸


내 몸은 자연이다. 우리의 삶의 뼈대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천체 운동의 리듬을 타며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산 것은 발리에서의 한 달이 처음이다. 나의 마음과 사회의 규율과 약속이 앞서 몸을 지배했던 삶. 그에 맞춰 인공적인 공간적 시간적 흐름을 만들어내는 도시 환경. 이 속에서 나는 언제나 피곤하고, 잠을 잘 자는 것이 어려운 과제가 되고, 회복하는데 또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했다. 나는 내가 잠을 잘 못 자는 이유가 환경적 이유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환경적 요인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음식이나 기타 습관으로 인한 ‘나’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특히 내 몸은 그 원래 잠을 잘 자는 몸이었다. 


발리에서의 내 숙소는 독채 빌라였다. 두 명이 쓰도록 구성된 이 공간은 사실 둘이 쓰더라도 꽤 넓었다. 침실, 부엌, 발코니, 수영장, 정원, 욕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다. 이곳은 Penestanan이라는 20세기 초부터 유럽에서 이주한 예술가들의 집성촌으로 잘 알려졌던 길에서 작은 골목을 3분 정도 걸어가면 당도하는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스쿠터와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복잡한 우붓 왕궁과 페네스타난의 큰길에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막상 빌라 안으로 들어오면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물론 비가 쏟아지는 때면 나무로 만들어진 건물을 때리는 빗소리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게 들렸다. 


본격적인 우기를 살짝 비껴서 발리에 머물렀음에도 비가 많이 왔다. 예년과는 다르게 이상하게 비가 많이 오는 것이라고 현지인들이 이야기해주었다. 여하튼 해가 나면 빨래든 뭐든 금방 마르지만, 매일 한차례씩은 꼭 비가 쏟아졌기 때문에 언제나 습도가 높았다. 그래서 침구도 옷도 수분을 머금고 있어서 좀 축축해서 불편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면의 질에 관해서 아예 의식을 하지 않을 정도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깊게 잘 잤다.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해가 뜨면 일어났다.  때가 되면 드리우는 묵직한 어둠이 몸에 벌써 이불을 덮어주는 듯했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보더라도, 핸드폰을 내려놓는 순간 그대로 숙면했다. 해가 뜨면 아주 살짝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햇살이 자연스럽게 내 몸을 깨우고, 뒤척임 없이 바로 일어나서 나의 아침 일과를 보내곤 했다. 발리에서 저녁 6시면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몸이 알아서 준비를 하는 듯했다. 이르면 9시, 늦으면 10시 반쯤 잠자리에 들고 아침 5:30시에서 6:30시 사이에 일어났다. 나의 몸이 이만큼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만드는 시간의 마디에 발맞춰서 조화롭게 지낸 적이 없었다. 덜 밀집된 아파트 단지에서 살았던 유치원 시절에 그나마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나의 몸이 얼마나 도시의 환경보다 자연의 리듬에 익숙한지, 나아가서 내 몸이 곧 자연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았던 한 달이었다. 


지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천체는 태양과 달이다. 해와 달의 주기적인 운동이 구획 짓는 시간의 마디에 더불어 태양의 빛과 달의 빛의 크기에 따라 계절의 구체적인 공간적 흐름이 만들어진다. 지구에서 난 나의 몸 또한 해와 달의 영향을 받도록 진화되어왔을 텐데, 현대 도시에서 내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24시간 가동되는 도시의 불빛으로 이것이 또 다른 태양이 되어 바이오리듬에 간섭할 것이다. 


서울에 돌아온 나의 몸은 또다시 자신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도시환경에서 애를 쓰고 있다.  사계절 뚜렷한 한국을 사랑하는 만큼, 밤낮이 뚜렷한 발리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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