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Hammer)

부수고 새우는 혁명의 연장

by 이승형

내 연장통엔 여러 종류의 길고 짧은, 가늘고 굵은 나사들이 있다. 목재의 두께, 조이고자 하는 재료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나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이들 나사를 대신했던 게 못이었다. 어린 시절 살던 농가 헛간에도 연장통 옆엔 늘 못 통이 있었다. 그 못통에도 다양한 못들이 있었다. 이 못을 박거나 빼던 도구가 장도리 망치다. 현장에서 쓰는 망치는 한쪽에는 못 박는 해머가 다른 한쪽에는 못을 빼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운데가 갈라진 쇠 지렛대가 있다. 이 장도리를 보통 망치라고 부른다.

앞에서 말한 임팩트 드라이버가 없는 일꾼은 있을 수 있어도 어떤 사람이 망치마저 없다면 그는 정말 현장에서의 노동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망치는 못을 박거나, 말뚝을 박거나 금속 재료를 접고 펴는 일에 사용한다. 또 망치는 돌과 콘크리트를, 타일이나 유리를 깨기 위해 사용한다. 집이나 건물을 허물 때도 대형 해머를 쓴다.


가구는 낡았으나 목재가 아직 쓸만하다면 이를 재사용하기 위해 못이나 나사를 조심스럽게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고가구 해체와 분해 작업은 쉽지 않다. 이곳저곳에 숨어있는 나사와 못이 있고 아교로 나무와 나무를 붙여 놓은 경우도 있어 어설프게 목재를 재사용하려고 분해하다가 목재가 망가지고 시간도 허비한다. 또 목재를 흠집 없이 분해했더라도 새롭게 디자인하고 가공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특히 호주처럼 인건비가 비싼 나라에선 낡은 가구는 그냥 망치로 두들겨 부수고 새로운 가구를 구매하는 편이 경제적이다.

망치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목재로 집을 짓거나 가구를 만들 때도 망치가 필요하다. 재료를 다듬고, 못을 박고, 목재를 조립할 때도 망치가 필요하다.

하루 종일 망치로 못을 박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팔과 어깨가 망가진다. 나는 어느 집 나무 마루를 다시 까는 작업을 해주고 나서 오른팔의 인대가 끊어져 몇 달 고생하기도 했다. 못을 박는 에어 건이 없이 수백 개의 못을 망치질을 해가며 박았기 때문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이제 못 박는데 망치를 거의 쓰지 않는다. 망치를 대신해 여러 종류의 전동기구들을 쓴다. 큰 못을 박을 때는 피스톤 안의 가스가 폭발할 때 나온 공기압을 이용한다. 이 도구를 가스타정기 라고 한다. 안전과 편리함의 이유로 호주 현장 노동자는 대부분 가스타정기로 못을 박는다. 망치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기구로 세분화된다. 예전엔 대장장이가 커다란 해머로 불에 달군 쇠를 두들겼다면 요즘은 전동 해머가 그 일을 한다. 그러나 망치는 여전히 필요하다. 전기도, 배터리도 없을 땐 결국 손 연장을 써야 한다. 가진 동력이 나의 몸뿐이라면 그 몸만 써서 일을 해야 한다. 우리도 주변의 도움도 없이, 가진 것도 없이 가끔 맨땅에서 맨몸으로 고군분투해야 하는 때가 있는 것처럼.


망치는 앞서 글에서 언급한 낫과 더불어 혁명의 상징이다. 그 혁명은 봉건왕조를 무너트리고 민주공화정을 수립하는 것이요 인류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구시대 철학을 해체하고 새로운 사유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혁명은 파괴 후 새로운 창조를 통해 완성된다.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중세의 견고한 절대적 관념론의 감옥 벽을 망치로 허물고 인간의 이성이 지배하는 근대로 향하는 문을 활짝 열었다. 그래서일까? 니체의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낡은 건물을 커다란 해머를 휘둘러 산산조각 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기성세대나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쉽게 무시하거나 부정한다. 그러나 남을 비판하면서 나도 그들과 결국 똑같이 살고 있음을 발견하고 부끄러울 때가 있다. 나의 망치로 타인의 이룬 것을 쉽게 부수었지만 그 망치로 나만의 집을 짓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 집을 짓기는 했으나 그 집이 내가 부순 집보다 못할 수도 있다. 니체는 그래서 이런 말도 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망치는 부수기보다 어려운 창조에 대해 말해준다. 대장간의 망치로 수백, 수천 번 두들겨야 만들어지는 명검처럼 새로운 철학도 체제도 그런 단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전 03화낫(Sick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