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의 적자 생존기
몇 년 전 아마존에서 한국 호미를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했다. 서양에도 한국 호미 같은 연장이 있을까? 그래서 호미를 영어로 무엇이라 부르는지, 다른 나라에도 호미 같은 연장이 있는지 찾아봤다. 호미는 영어로 Hoe였다. Hoe를 검색해 보니 한국 호미와는 다른 모양의 연장이 나온다. 마치 작은 괭이 같았다. Hoe는 한 손으로 잡고 쓸 수 있는 괭이다.
호주에선 잔디밭에서 자라는 민들레나 잡초를 뽑을 때 쓰는 도구를 위더(Weeder)라고 하는데 끝이 갈라진 쇠꼬챙이 중간에 지렛대 발이 달려있다. 이 Weeder로 검색해도 Hoe가 나온다. 호주 위더도 호미의 일종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나는 호주에서도 정원을 가꿀 때 호미를 쓴다. 채소가 자라는 텃밭에서 잡초를 뽑을 때 호미만 한 게 없다. 할 일이 없고 정신이 사나울 때는 잔디밭에 최적화된 위더를 들고 곳곳에 자란 민들레를 뽑는다. 민들레를 뽑는 데는 호미보다 위더가 더 좋다. 호미보다 더 땅속 깊이 들어가 뿌리째 뽑아 올리기 때문이다.
호주 위더가 주로 잔디밭의 잡초만 뽑는 용도인 반면 한국 호미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호미로 풀을 뽑고, 밭의 흙을 잘게 부수어 고르고, 크고 작은 돌멩이를 골라내고, 씨앗을 심기 위한 골이나 구멍을 만들고, 곡식이 심어진 두둑에 흙을 북돋우고, 흙 속에 묻힌 나무뿌리를 자른다. 한마디로 호미는 밭일의 맥가이버 칼(스위스 군의 포켓 칼)이다.
어떤 일이든 쪼그려 앉아 장시간 하게 되면 무릎 관절이 다 망가진다. 앉아서 일하면 허리도 장시간 구부려야 하니 척추관절에도 무리가 간다. 호주에서 만난 한국 타일러들은 대부분 무릎과 허리가 고장났다. 호미는 우리의 어머니들의, 할머니들의 무릎과 허리를 병들게 한 주범이다. 호미질은 쪼그려 앉아 할 수밖에 없다. 키 작은 채소밭의 잡초를 서서 캘 수는 없으니 굽은 무릎은 하루 종일 자신의 체중을 감당해야 한다. 허리도 하루 종일 구부러져있다. 한 손은 호미를 쥐느라 다른 한 손은 잡초를 움켜쥐기 위해 하루 종일 힘을 줘야 한다. 한국 농촌의 할머니들이 대부분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이유가 평생을 계속한 호미질 때문이다.
이런 힘든 호미질을 즐겁게 한 기억이 있다면 갯벌에서 바지락 같은 조개를 캘 때였다. 호주로 오기 전 몇 해 동안 학교와 직장 동료나 친구와 서해의 섬으로 캠핑을 자주 갔다. 섬마다 조개가 잘 나오는 숨겨진 포인트가 있는데 그곳에서 조개를 캘 때 호미가 유용하게 쓰였다. 그러나 바닷가에 놀러 와 재미로 바지락 캐는 일은 즐거울지 몰라도 갯벌에서 조개를 캐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어촌의 여성들에게도 호미질은 고된 노동이다. 어촌의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의 무릎과 허리도 농촌의 그분들처럼 다 망가져있다.
이렇게 호미처럼 연장들은 우리 몸에 흔적을 남긴다.
호미는 한국에 특화된 농기구라고 한다. 평야지대의 넓은 밭을 호미에만 의존해 경작할 수는 없어 유럽과 같이 대평원의 곡창지대엔 호미가 없다고 한다. 한국처럼 좁은 국토에 산지가 많은 농사환경이 호미를 만들었다. 산골의 경사지 밭은 돌과 자갈이 많다. 이런 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풀을 뽑아가며 어떻게든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하기 위해 애쓴 결과 호미가 탄생했다. 좁은 땅에 최적화된 호미는 그래서 서양의 정원이나 텃밭 가꾸기에도 적합하다. 아마존에서 한국 호미가 팔리는 이유다.
환경에 적응한 생물들이 살아남고, 변화하는 주변정세와 국내환경에 적절히 대응한 국가가 부강하다. 우리의 인생도 때가 되면 허물을 벗는 것처럼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낡은 습관이나 사상을 고집하는 개인은 변화된 세상과 불화한다. 기다란 손잡이가 좁은 공간에서 일하는데 방해가 되니 잘라낸 짧은 호미 자루처럼, 풀을 뽑으며 동시에 채소에 흙을 북돋우는 일을 해야 하기 위해 넓적하게 만든 호미날처럼 우리 자신을 바꿔야 한다. 때로는 하늘처럼 높은 자존심을 내려놓고 호미처럼 땅바닥을 기어갈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때로 삽이고, 괭이고, 쇠스랑이고, 호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