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키를 알 수 있게 하는
목수뿐 아니라 거의 모든 현장 노동자에게 필요한 도구가 자(Ruler)이다. 페인터는 견적을 뽑을 때 자를 이용해 칠해야 할 벽이나 천장 면적을 계산하고, 타일러도 자를 사용해 욕실 면적을 알아야 필요한 타일 개수를 산정한다. 목수도 일을 할 때 제일 먼저 사이즈를 재야 한다. 문을 달 때도, 부엌의 싱크대를 설치할 때도, 벽과 지붕 프레임을 설치할 때도, 서랍장을 만들 때도 언제나 치수를 먼저 재야 한다. 사이즈를 정확히 측정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한다. 예를 들어 호주 현관문은 방화문이어야 하고 그 가격은 집 내부의 일반문에 비해 서너 배 이상 비싸다. 그런 방화문 사이즈를 실제보다 작게 측정해서 톱으로 잘라버리면 다시 이어 붙이기도 어렵게 된다. 페인터가 어떤 건물 외부 도장 견적을 냈는데 측정을 잘못해 실제 면적의 절반을 기준으로 했다면 일을 완벽하게 하고도 손실을 보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경험 많은 목수들도 두 번씩 사이즈를 체크하고 톱질을 한다. 페인트 사장들은 고객과 최종 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한번 더 면적을 체크한다.
그런데 왜 그런 측정 오류가 발생하는 걸까? 우선 인간의 기억 오류 때문이다. 나도 방금 전 1미터 90센티미터로 측정하고도 돌아서서 톱질할 때는 1미터를 뺀 90센티미터로 자를 때가 있다. 두 번째로 읽기 오류다. 분명히 줄자를 대고 문의 높이를 쟀는데 2m 15cm를 2m 5cm로 읽는다. 셋째로 쓰기 오류다. 2m 15cm로 재놓고 적을 때 2m 5cm로 기록한다. 이런 착오들을 줄이기 위해 현장에선 mm 단위를 쓴다. 2m 15cm는 2150으로, 2m 5cm는 2005로 표기한다. 이렇게 해도 자의 눈금을 잘못 읽거나 다르게 적을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아무리 조심해도 그런 실수들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실수를 안 한다고 자만하지 말고 항상 그런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고객 집을 처음 방문해 견적을 받아야 하는 경우 줄자 없이 몸만 가면 십중팔구 고객에게 무시당한다. 견적을 뽑으려면 사이즈를 측정해 규모를 산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 자가 필요한데 맨손으로 고객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왕초보라고 떠드는 것과 다름없다. 나도 아무 생각 없이 맨손으로 갔다가 그런 오해를 받은 적이 있다. 측정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건 일할 자세가 되어있다는 자기표현이기도 하다.
사람을 볼 줄 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볼 줄 안다는 건 내가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자를, 기준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유능한 목수가 폭과 높이를, 공간의 면적을 정확히 측정하듯이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특정인의 인품과 세계관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을 판단하기에 앞서 내가 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주식투자를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를, 나의 성향을, 나의 배포를, 손실이 나도 감당할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나는 단기간의 손실에 연연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인가? 100프로 손실을 입어도 나의 일상에 지장을 주지 않는 여유돈인가? 나는 큰 손실과 작은 이익에 초연할 줄 아는 사람인가? 나의 세계관에 비추어 투기나 투자는 적절한 돈벌이 수단인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본 이런 질문들에 명확하게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주식투자의 기본기를 갖춘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은 냉정하게 평가하면서도 자신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한다. 나만의 잣대는 곧 나의 가치관이고 정체성이다. 그러나 나의 잣대는 상대적이며 주관적 잣대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준에 절대성을 부여한다. 나의 주관적 가치를 타인에게 똑같이 적용하는 절대적 가치로 바뀌면 그때부터 타자와의 불화는 피할 수 없다.
다른 한편 이중 잣대도 문제가 된다. 타인을 평가할 때 엄격히 적용하는 기준을 자신에게는 느슨하게 적용한다. 그것이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하면 불륜이다.
치수를 재는 줄자를 항상 갖고 다녀야 하는 사람은 현장 노동자뿐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