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Computer)

나의 가장 오래된 연장

by 이승형

도구가 사람의 신체를 확장한 것이라면 컴퓨터 또한 도구요 연장이다. 컴퓨터는 사람의 두뇌를 확장한다. 내가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쓴 도구는 컴퓨터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고 한국에서 26년 동안의 직장 생활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서 보냈다.

컴퓨터 구조를 공부하면 컴퓨터가 인간의 두뇌와 몸을 시뮬레이션하고 확장한 도구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컴퓨터는 크게 중앙연산장치(CPU), 입력장치, 출력장치로 구성된다. CPU는 인간의 두뇌, 키보드와 마우스 스캐너 등은 우리의 눈과 귀에 해당한다. 출력장치인 모니터와 프린터는 사람의 입과 얼굴 표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컴퓨터는 내가 입사하기 전 1980년대 중반 경마장에도 도입되어 수많은 주산 유단자와 매표원, 기록원 등을 직장에서 밀어냈다. 경마장에선 마권을 팔고, 말의 예상 승리 확률에 따라 배당률을 계산하여 공지하고 경주결과가 확정되면 세금을 제외하고 배당금을 고객에게 지급한다. 일본 강점기부터 경마가 있었으니 경마장에선 전자계산기보다 주판을 더 잘 쓰는 직원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직장 생활하면서 이 마권발매 시스템을 국산화했던 개발팀의 일원이었다. 이 시스템뿐 아니라 다양한 컴퓨터 시스템을 개발하며 회사생활을 했으니 컴퓨터야 말로 나의 오래된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컴퓨터가 우리 손에 쥘 정도로 작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스마트 폰이다. 스마트폰은 내가 처음 사용했던 386 컴퓨터보다 성능이 수십만 배에서 수백만 배 향상되었다. (이 정보는 인공지능 Gemini에 물어봐서 얻었다.) 이렇게 뛰어난 컴퓨터 시스템을 온국민이 하나씩 갖고 있다면 우리의 삶도 386 컴퓨터 시스템을 쓰던 시절과 비교해 최소한 수십 배는 좋아져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인간의 행복은 좋은 도구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 달성되기 어려운 것 같다.


이제 세상은 내 손안에 엄청난 컴퓨터 시스템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인공지능(AI)을 거의 무료로 무제한으로 사용할 있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어마어마한 도구로 인해 인간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고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 삽화를 그려주던 일러스터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고 외국어 문헌이나 뉴스를 번역해 주던 사람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자료조사와 시장분석을 하던 노동자들도 인공지능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나는 청년 시절 에리히 프롬의 소외론을 공부했었다. 그 주된 내용은 인간이 만든 사회제도와 상품, 기술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상실하고 그 제도와 상품, 기술에 지배당하는 상황에 대한 서술이었다.

인간의 두뇌를 가공할만한 정도로 확장한 인공지능에 의해 사람들의 삶이 좋아지기보다 AI에 의해 지배당하고 소외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망치를 잘못 사용하면 그것으로 나의 발등을 찍고, 칼을 잘못 사용하면 내 손을 베이게 되듯 결국 인공지능도 우리가 그것을 잘 사용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은 그야말로 지능이 있는 도구이니 언제든 인간을 목적의식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할 위험이 있다. 유능한 일꾼은 도구를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한다. 인공지능을 인류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피엔스 종 인류 문명의 미래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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