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이룬 농부의 꿈
호주로 이주해서 얼마되지 않아 한국 슈퍼에서 낫을 발견했을 때 정든 친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 같았다. 나는 그 한국산 낫을 사서 호주 집의 풀을 베거나 나뭇가지를 베는데 지금껏 쓰고 있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에서 살아도 모국에서 쓰던 농기구의 손맛을 잊지 못한다. 호주에도 토박이들이 쓰는 삽과 괭이, 쇠스랑 등이 있으나 생김새가 한국 것과 달라 손과 몸에 착 맞는 맛이 없다. 그래서일까? 하우스를 가꾸고 사는 한인 이민자들은 호미나 낫을 어떻게든 구해서 쓴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삽을 뒤집어 놓고 삽자루의 손잡이 사이에 숫돌을 끼워놓고 낫을 갈았다. 지금은 연마석이라 부르는 숫돌을 네모 반듯하게 공장에서 만들어 팔지만 그때 숫돌은 진짜 자연산 돌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 기억나는 최초의 연장이 아버지가 날을 갈던 낫이다. 오래전부터 한국 농가에선 낫이 필수품이었다. 농사짓던 시절 우리 집엔 대장간에서 강철을 두드려 만든 조선낫과 함께 공장에서 만든 날렵한 왜낫이 있었다. 공장에서 얇은 쇠판을 이용해 대량으로 생산한 낫은 왜낫으로 불리었다. 왜낫은 일본제국주의 강점기 때 처음 일본에서 한반도로 수입되어 그런 이름이 지어졌는데 억울하게 해방 이후 한국의 공장에서 만든 낫도 왜낫으로 불렀다.
조선낫은 주로 산에서 땔감 나무를 벨 때 썼다. 몸통이 두꺼운 나무를 왜낫으로 베면 날이 금방 망가졌기 때문이다. 왜낫은 풀이나 벼, 보리등을 수확할 때 썼다. 조선낫보다 훨씬 가벼워서 오래 쓰기 좋고 칼날처럼 날카로워 곡식이나 풀이 잘 베어졌다. 조선낫은 이가 빠지거나 날이 무뎌져도 숫돌에 갈면 다시 날이 섰다. 왜낫은 이가 빠지면 금이 가고 깨져 숫돌에 갈아도 날이 반듯하게 서지 않아 오래 쓰지 못했다.
초등학교 농번기 방학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우리 집에서 키우던 송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나는 그 송아지를 먹일 꼴을 벨 때 아버지를 대신해 처음으로 낫질을 해보았다. 어린 내가 베어온 풀로는 다 먹일 수도 없고 하루 종일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그 송아지는 곧 다른 집에 팔려갔다. 아버지의 때 이른 부재도 상처였지만 송아지를 팔아야 했던 상황도 마음이 아팠다. 나는 한동안 아버지의 영정에 절을 하면서 어른이 되면 큰 농장을 일구어 소들도 많이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소는 없었지만 이후로 낫질을 해야 되는 일은 더 많아졌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오엽송,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의 묘목을 길렀다. 이 묘목들이 자라나 정원수로 심을 정도가 되면 조경업자들에게 팔았다. 묘목 밭은 제때 잡초를 제거해주지 않으면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묘목을 뒤덮었다. 나보다 8살 위인 형과 나는 한여름엔 몇 번씩 묘목밭의 풀을 왜낫으로 베었다. 나는 이 잡초를 베다가 손가락을 여러 번 베었다. 오른손으론 낫을 잡고 왼손으론 베어야 할 풀을 잡다 보니 나의 손가락 마디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굵고 팔뚝의 힘도 강했다.
그랬던 내가 농부가 되지 않은 건 순전히 누나들이 사다 준 동아전과, 표준전과 때문이었다. 농사짓는 집 아이들이 다수였던 농촌 학교에선 전과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가족들은 내 머리가 아깝다며 인문계 고등학교를 보냈고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농부의 꿈은 사라졌다. 낫을 손에 쥐는 일도 점차 없어졌다.
낫은 풀과 나무들 베는 용도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 때도 쓰인다. 나는 대나무를 가공해 산적을 꿰는 꼬챙이를 만들 때도, 방패연이나 가오리 연을 만들 때 쓰는 대나무 살을 만들 때도, 나무를 깎아 팽이를 만들 때도, 노끈을 자를 때도, 화학비료 포대를 뜯을 때도 낫을 썼다. 농가에서 낫은 요즘 건설현장의 유틸리티 나이프와 같았다.
낫은 망치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혁명을 상징한다. 러시아 혁명 당시엔 낫은 농민을, 망치는 노동자를 표현했다. 낫과 망치는 그것을 든 계급의 상징이었고 구체제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낫으로 묵은 밭의 잡초를 베는 것, 망치로 낡은 집을 부수는 것이 혁명이다.
개인의 삶에도 때로 낫이 필요하다. 나의 묵은 생각, 나를 괴롭히는 잡념을 베어내야 한다. 묵은 밭과 낡은 집을 그대로 두고 새로운 밭과 집을 만들 수 없는 것처럼 낡은 것과의 결별 없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란 어렵다. 그런데 어쩌자고 나는 자꾸 낫을 드는 일이 적어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