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
돌쟁이 둘째가 2주째 콧물을 흘리고 무른 변을 밤낮으로 보던 어느 날이었다. 아프다고 하기엔 콧물이 심하지 않았고 완전한 설사도 아니었고, 아이 컨디션도 좋았다. 항생제도 먹였으나 차도가 없었고 어린이집에 안 가면 나아지려나 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리하여 어린이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에 들렀다가 어린이집에 보낼 생각으로 채비를 하고 나왔다. 그런데 두둥! 병원 문이 닫혀있었다. 오픈 시간은 이미 지났으나 의미 없었다. 할머니 선생님 한 분께서 원맨 비즈니스로 운영하시는 곳이었다. 그분이 안 왔으면 그런 거다.
그대로 어린이집으로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컨디션이 완전하지 않은 아이를 대책도 없이 맡기는 건 매너가 아닌 것 같았다. 하여 할 수 없이 차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갔다. 처음 예상했던 동선은 매우 짧았었기 때문에 아기띠도 아기 신발도 챙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두려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침 지하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자리가 있었다. 신이 나서 주차를 하고 2층으로 갔는데, 두둥.. 길이 막혀 있었다. 건너편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는 안내문과 함께.. 어쩐지... 2층 버튼이 안 눌러져서 3층으로 갔다가 계단으로 다시 내려간 참이었다. 9킬로짜리 아기를 안고 말이다. 아기띠가 없이 아기와 함께 한 길은 정말 멀었다.
머리를 굴려보았다. 방법은 없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한참을 돌아 반대쪽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두둥! 이 병원은 처음이었고, 주민등록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핸드폰을 차에 두고 왔다. 제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좋은 방법이 없을까 CPU를 또 굴리던 차에, 참! 같은 건물 다른 소아과에 간 적이 있다. 그래서 가보니 두둥.. 휴무다. 약국에도 정보는 없었다.
미련을 버리고 멀리 주차해놓은 차에 다시 다녀왔다. 9킬로짜리 아기를 안고서.. 아 아기띠.. 아니면 신발이라도 신겨올걸.. 어쨌든 겨우 진료를 보고 약을 타고 먹였다. 알고 보니 첫 설사는 항생제 부작용이었고, 계속된 이유는 설사한다고 먹인 유산균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더 많은 유산균을 먹이던 참이었다.
힘들었지만 아기는 협조를 잘해주었다. 병원에선 기분 좋게 놀아주었고, 차에서 칭얼거릴 땐 과자와 물을 주면 되었다. 그런데... 두둥....! 돌고 돌아 드디어 어린이집으로 그는 길에 그만 배고픔과 졸음이 함께 터졌다. 쪽쪽이! 쪽쪽이가 없었다. 안 챙겼다. 이렇게 오래 차를 타게 될지 몰랐으니까.
과자를 주니 던지고, 물을 주니 던지고, 울음은 천둥소리만큼 점점 커졌다. 1시간처럼 느껴지는 10분이었다. 그 10분 동안, '그냥 집으로 갈까? 배고프고 졸린 아기를 어린이집이 맡기는 건 민폐가 아닐까? 히지만 너무 힘든데...?' 몇 초간 마구 생각을 하고 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런데 두둥! 길이 엄청 막혀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아기는 천둥같이 울고 있고, 나는 또다시 뇌를 회전시켰다. 그때 마침 유턴을 할 수 있는 차선에 있었기 때문에 답은 내려져 있었다. 어린이집에 가는 걸로..
맞이해주시는 선생님께 아기의 컨디션과 늦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을 하고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아이를 떼어내고 터덜터덜 차로 돌아왔다.
영혼은 갈 길을 잃었고 다리만 저절로 움직였다. 차에 앉아 영혼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두둥! 낮잠 이불을 깜박했다. 그리고 아기는 지금 매우 졸린 상태다. 급히 차를 몰아 집으로 가서 이불을 가져왔다. 다행히 어린이집에서 내 아기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잘 놀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돈가스 사 먹고 와서 두 시간 동안 부동자세로 누워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다 내 잘못이다. 항생제를 먹이면 설사를 한다는 상식을 몰랐고, 유산균을 너무 먹이면 배에 가스가 차서 자다가도 응가를 할 수 있다는 걸 몰랐고, 아기띠와 쪽쪽이를 안 챙겼고, 핸드폰을 차에 두고 갔다. 낮잠 이불도 안 챙겼다. 아기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