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부 : 신성한 방어막 해체
저번 글에서는 이 우주가 얼마나 광활한지, 그리고 우리의 우주가 어떻게 끝을 맺을지 보았다. 이러한 규모와 운명에 있어 인류는 주인공이 전혀 아니며, 어떠한 신조차 우리를 열죽음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젠 시선을 내부로 돌릴 차례이다. 우리의 외부가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우리의 자아가 가진 잠재력은 그 누구도 규정할 수 없지 않은가? 신이 정녕 존재하지 않으면 자‘신’을 믿으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이번엔 내부의 방어막 안으로 도피한 당신의 무의식을 또 깨부수어 보겠다.
자, 그럼 무한한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는 우리가 정말로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해보자. 당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통장 잔고를 들여다보거나, 당신의 사설 벙커에서 보호받고 있는 금고 내의 금 수십 톤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글자 그대로, 당신이 정말로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손과 발은 우리의 마음대로 무언가를 창조해내거나 부술 수 있다. 우리의 눈과 귀는 우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신체가 정녕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사실 지금도 죽어가고, 분열되고, 대체되어가고 있다. 위 내벽은 3-5일, 피부는 한 달, 적혈구는 4개월이면 완전히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몇 년이 지나면 우리 몸의 대부분은 이미 다른 세포들로 바뀌어 있다. 만약 신체가 우리의 근원이라면, 우리의 근원은 끊임없이 뿌리부터 뒤바뀌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뇌는 어떤가? 25세까지 성장한 뇌세포는 이후부터는 거의 분열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의 뇌는 우리의 사고와 인지를 담당하는 신체기관이다. 그렇다면, 신체 전체가 아닌 뇌만큼은 우리의 자아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또한 그렇지 않다. 우리의 뇌 또한, 단순히 신체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의 생각과 자아라는 것은 결국 (칼 세이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뉴욕의 전광판처럼 뉴런들이 복잡하게 신호를 주고 받는 결과물인 것이지, 뇌 자체는 그저 유기체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미 우리는 예쁜 꼬마 선충의 신경망을 뇌가 아닌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질적인 것에서 찾기는 글러먹은듯하니 개념적인 것으로 옮겨가자. 의식의 연속성은 어떠한가? 우리는 우리의 신체를 통해서 ‘연속적으로’ 세계를 인지한다. 우리의 뉴런들이 주고받는 신호 또한, 멈추지 않고 계속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것이 우리 자아의 근원일 수 있을 것인가? 안타깝게도 인간은 잠을 잔다. 낮잠을 자든, 술에 취해 길바닥에 뻗든, 우리가 가진 의식의 연속성은 매일 같이 뚝뚝 끊긴다. 당신은 잠들기 전의 당신이 정말 지금의 당신과 같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사실 엄청난 기술력을 가진 비밀 연구소에서 어젯밤 회식으로 인해 곯아떨어져 있는 당신의 뇌를 몰래 꺼낸 후, 새로운 신체의 뇌에 뉴런들을 복사하여 대신 갖다 놓았을 수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의식의 연속성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보자. 의식의 연속성을 인지하려면, 우리는 잠을 자기 이전의 의식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 우리의 자아는 기억에 의존한다. 우리는 기억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예측한다. 만약 10년 전 사귄 친구가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다면, 아직은 술 한 잔 걸치면서 서로 공유하고 있는 추억들을 풀어놓기 힘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해 장기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고 해보자. 부모고 친구고 아무도 못 알아본다. 당신은 이 친구를 정말 당신의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 요소는 기억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당신은 지금까지 먹은 빵의 개수를 기억하는가?’. 단순히 사건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지식 또한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자전거를 언제 처음 탔는지 기억할 수는 있어도, ‘Value’라는 영단어를 처음 배운 게 언제인지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기억들의 구멍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자아를 ‘기억에 의해 학습된, 일정한 사고 패턴과 행동 양식’이라고 정의해보는건 어떠한가? 기억이라는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데이터를 통해 학습해 일관된 ‘나’를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빵집에 가면 고르는 빵의 선호도, 친구에게 자주 치는 농담, 사설 벙커의 금고 비밀번호 모두 결국엔 일종의 ‘패턴’ 아니겠는가? 이 정의는 신체에 종속되어 있지도, 어떠한 연속성에 의존하지도 않는다. 출처가 불분명한 지식과 경험에 대한 설명도 이러한 사고 패턴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즉, 우리의 자아는 고도로 학습된, 하나의 프로그램 내지는 알고리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 것인가? 바로 다른 형태의 ‘나’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라는 그래프는 한 시점 t에 대해서 1대1 대응이었다. 하지만, 한 시점 t에서 그래프가 둘로 갈라진다면? 지금 당신의 옆에 당신과 완전히 같은 기억과 사고 방식을 가진 클론 1이 있다고 하자. 당장은 신체의 연속성을 통해 당신이 원본이라고 확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클론을 두 명 만든 후에, 원본인 ‘당신’이 죽었다고 해보자. 당신의 사설 벙커 금고에 담겨있는 금은 누구의 것인가? 둘이 가위바위보라도 해야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기술적으로 이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우리의 자아라는 개념이 위협받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자아인 AI가 우리 옆에 서 있고, BCI 기술은 우리의 자아라는 개념을 통째로 흐려버리고 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4부에서 자세히 서술하도록 하겠다.
어떠한가, 당신의 자아는 천부적인 권리를 타고나는 신성한 무언가가 아니다. ‘나’라는 존재는 내 생애동안 유일무이한 존재 또한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기억이라는 그래프에서 한 지점에 도출되는 알고리즘과 패턴의 스냅샷 내지는 미분일 뿐이다. 이러한 이해만이 ‘자아’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