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장 : 사회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탄생

제 2부 : 가치의 기반 흔들기

by 헤시온

우리는 이전 글에서 생명체가 본능적으로 ‘생존’하려는 특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이를 언급한 이유는 이 원리가 인간에게도 철저하게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부터 호모 사피엔스로까지의 생물학적 진화 과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탄생

단세포는 정말 힘들고 긴 여정을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 그들은 불을 피우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유목 생활을 했다. 당연히 그들은 번식도 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가족 단위 소규모 집단이 생겨났을 것이다. 여기서 자신을 복제할 줄 알았던 유기물처럼 새로운 집단이 등장을 상상해보자. 한 집단의 남성은 저기 언덕 너머에 풀을 뜯고 있는 맘모스의 뼈를 뜯고 싶은데, 소규모 집단만으로는 자신들의 살이 뜯길 것이 뻔했다. 그래서 그는 근처의 다른 집단에게 같이 협동하여 맘모스를 잡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협동할 줄 알았고, 네안데르탈인을 도태시키는데 성공한다. 여기까지는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에서 언급되는 내용이다.


여기서 조금의 상상을 더 보태보기로 하자. 농업 혁명 이후, 정착 집단들이 등장한다. 잉여 생산물이 생겨났다. 그렇게 평화롭게 농사를 짓던 집단에게 어느 날 위기가 찾아온다. 어김없이 눈을 뜨고 움막을 나왔는데, 다른 집단 하나가 잔뜩 무장한 채, 창고 움막에 쌓아둔 곡물을 훔쳐간다. 화가 잔뜩난 이 남성은 근처에 보이는 돌도끼를 들고 저항해보지만, 도적의 수가 더 많다. 실컷 투들어 맞고 나서, 그는 억울해하며 막을 방법을 생각해본다. 그 때, 옆 마을에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아이 하나가 구걸을 하러 왔다. 그들도 실컷 맞고 곡식을 털린 것이다. 이 때, 이 남자는 좋은 생각이 난다. 옆 마을과 같이 싸우면 어떨까? 도적이 한 마을을 공격하면, 다른 마을이 같이 막으러 와주는 ‘계약’을 맺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무역 등 다양한 이유와 형태의 ‘계약’들은 자연 형성된 소규모 집단들을 부락 단위로 성장시켰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 형성된 집단들이 사회 계약을 통해 사회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는 상징체계를 이용해 묶인 집단을 의미한다고 정의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이제 우리의 시야는 더욱 거시적으로 변한다. 이렇게 생겨난 사회들 또한 진화했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한다. 사회 또한 결국에는 거시적 규모의 생명 내지 종이라 볼 수 있다. 생명체는 진화하면서 그들의 유전적 특질이 바뀐다. 그렇다면 사회는 무엇을 바꿀까. 사회를 살아있게 해주는 것은 상징체계이다. 사회는 진화하면서 그들의 상징체계를 바꾸었을 것이란 가정은 쉽게 도출된다.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노인은 아마 마을의 우두머리로 뽑혔을 것이고, 자연 현상과 그들의 특정 행동이 우연한 일치를 일으켜 원시적인 ‘종교’가 생겨난다. 종교는 전능한 존재의 힘을 빌려 원시적인 ‘법’을 제정한다.

가령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할 것이다. 마을에 가뭄이 들어서 모든 사람들이 굶어죽을 지경이다. 농부들은 궁리를 하다가 마을에서 가장 지혜로운 노인을 찾아간다. 노인이라고 뭘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 산 만큼 본 것은 있었기에, 올해 따라 유난히 마을의 아름드리 나무가 시들시들한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저 나무가 화나서 우리에게 벌을 주는 것은 아닐까 싶네만. 물을 뿌려주며 땅에 머리를 박으면 우리를 용서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노인의 말을 믿고 비가 올 때까지 가뜩이나 말라가는 강물을 나무에 뿌려가며 땅에 머리를 박았다. 결국 언젠가는 비가 내릴 것이고, 깨작깨작 물을 받아먹던 나무는 폭우로 인해 다시 싱싱해질 것이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해석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가 나무에게 용서를 구해서 비가 내렸어!’

그렇게 가뭄이 들면 나무 앞에서 절을 하는 전통이 생기고, 전통은 점점 구체화 되어갔을 것이다. 물은 꼭 당일 뜬 것을 써라, 가장 늙은 노인이 머리를 박아야 한다 등등. 그러는 과정에서 노인은 원시종교의 우두머리로 승격되고, 마을 사람들은 우두머리의 말을 점차 전능한 존재의 의미로 해석할 것이며, 전능한 존재의 힘에 기반한 원시적인 법이 생겼을 것이다. 그 법은 선과 악을 나누며, 공익에 해가 되는 것은 ‘악’으로 규정하고, 공익에 득이 되는 것은 ‘선’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성의 발현

이성의 탄생 또한 사회의 탄생에 기인한다. 이성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본능에 따르는 것이 아닌, 미래나 사회적 결과를 예측하며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목민 시절까지만 해도 그런 요행은 필요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열매는 따다 먹으면 되고, 눈 앞에 보이는 나무는 베어 쓰면 된다. 하지만 사회의 출현은 본능적인 행동을 막는다. 눈 앞에 보이는 그 열매가 이웃의 열매이면 자신은 벌을 받을 것이며, 눈 앞에 보이는 그 나무가 마을에서 숭배하는 나무라면 다음에는 내 목이 베일지도 모른다. 사회 내에서 구성원들은 점차 사회적인 능력을 진화시켜갔으며, 그렇지 못하고 이성을 놓은 채, 본능대로 행동하는 구성원들은 벌을 받거나 목이 베였을 것이다. 안정된 마을은 불안정한 마을이나 소규모 집단들보다 더 생존에 적합하다. 그들은 종교와 법이란 상징체계를 진화시켰고, 구성원은 이성이라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이성은 본성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은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사실 당신이 오전에 급하게 제출한 지도교수님의 전공 강의 레포트 사이에는 어제 보던 성인잡지 몇 페이지가 끼워져 들어갔다. 식은 땀이 흐르고, 심장이 뛰지 않는가? 마치 뒤에서 호랑이가 덮친 것처럼 말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과정에서 ‘기억’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사회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는 ‘맘모스가 엄청나게 크고 힘이 세더라.’, ‘옆 마을도 농사를 지으며 산다.’, ‘저번에 계약을 맺었으니 우리가 도와주러 가야 한다.’ 등의 기억이 사용된다. 옆 마을이 공격받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는 것처럼 본능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호모 사피엔스의 생물학적으로 우수한 기억력과 사고력으로 일어난 일인 것이다.

이전 05화2부 1장 : 생명은 고귀하다는 거대한 착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