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김장, 슈톨렌 만들기

교무실의 커피 향과 '버터 편지',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

by 정희

몇 년 동안 12월이 되면 슈톨렌(Stollen)을 구웠다. 슈톨렌은 독일 사람들이 크리스마스가 오기 한 달 전부터 미리 만들어 두고, 매일 얇게 한 조각씩 베어 물며 성탄절을 기다리는 빵이다. 하얀 슈가 파우더를 듬뿍 뒤집어쓴 모양이 마치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를 닮았다.


교직에 있을 때, 연말은 늘 슈톨렌을 굽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은 단순했다. 빵집 슈톨렌은 손바닥만 한 것도 너무 비쌌다.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만들지" 하고 걷어붙였는데, 손이 큰 탓에 재료를 잔뜩 샀고, 빵도 너무 많이 구워버렸다.


남아도는 빵을 들고 학교로 갔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과 나눠 먹기 시작했는데, 그게 어느새 몇 년 동안 이어지는 나만의 겨울 의식이 되었다. 11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동료 선생님들은 농담처럼 나를 놀리곤 했다.


"샘은 겨울에 김장은 안 해도 슈톨렌은 꼭 만드시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남들이 김장을 할 때, 나는 슈톨렌을 구웠다.


슈톨렌을 만드는 과정은 기다림 그 자체다. 나는 1년 전부터 각종 건과일을 설탕과 브랜디, 럼주에 절여둔다. 꼬박 일 년을 기다린 과일은 깊은 향을 머금는다. 반죽에는 물 한 방울 넣지 않고 버터와 우유, 설탕을 듬뿍 넣는다. 여기에 절임 과일과 견과류를 섞고, 반죽 가운데에 마지팬을 넣어 고소한 식감을 더한다. 반죽을 반으로 접어 강보 모양으로 빚어 천천히 굽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뜨거운 빵이 나오자마자 녹인 버터를 여러 번 덧발라 두껍게 코팅하고, 그 위에 슈가 파우더를 소복하게 뿌린다. 이렇게 만든 슈톨렌은 바로 먹는 게 아니다. 최소 1~2주 서늘한 곳에서 숙성시켜야 과일의 향과 럼주의 풍미가 빵 전체에 스며든다. 먹을 때는 가운데부터 얇게 저며서 한 조각을 내고, 남은 두 덩어리의 절단면을 맞붙여 보관한다. 그러면 빵은 마르지 않고 오랫동안 촉촉함을 유지한다.


그렇게 공들여 구운 빵을 얇게 썰어 커피와 함께 나누어 먹던 교무실의 시간들. 샘들은 빵을 앞에 두고 온갖 수다와 불평을 늘어놓았다. 이 귀한 절임 과일을 왜 이쪽에만 몰아넣었냐, 마지팬이 너무 적은 부분을 받았다, 슈가 파우더가 얼굴에 묻은 줄도 모르고 수업에 들어갔다가 아이들한테 놀림을 받았다. 해결하기 힘들었던 학생 문제도, 학부모와의 갈등도, 그 시간만큼은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창밖은 추워도 교무실 안은 커피 향과 빵 냄새, 그리고 사람의 온기로 훈훈했다.


올해부터는 슈톨렌을 굽지 않기로 했다. 함께 먹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몇 해 동안 식구들에게 내어주었더니, 이제는 더 이상 그 빵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슈톨렌이 내게 남겨준 것들, 그 왁자지껄하던 12월의 교무실은 여전히 내 겨울 어딘가에 남아 있으니까.


나의 슈톨렌을 함께 나누던 샘들. 다들 어디서든 안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