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날개옷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혹시 너무 오래 방치해 낡았다고 생각하며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날개옷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한 땀 한 땀 수선해 입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내 존재를 지우려는 사람들 속에서, 그리고 남아선호라는 거친 풍파 속에서 나를 지켜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것들을 나누고 싶다.
첫 번째는 경제적 독립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숫자는 힘이 된다. 내 손으로 직접 일구어낸 소득은 관계의 종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실질적인 힘이 된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배웠다.
나의 경우, 그 절실함을 동력 삼아 조금 늦은 나이에 임용고사에 도전했다. 주변에서는 "젊은 사람들도 힘든 시험인데 가능하겠냐"며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고, 실제로 공부는 결코 쉽지 않았다. 생소한 전공 내용, 살림과 육아 속에서 조각나는 집중력. 하지만 나만의 방패를 만드는 일에 몰두했다.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안도감이, 나를 갉아먹는 관계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을 당당함을 선물해 주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감정의 주권을 되찾는 일이었다. 나의 존재를 지우려는 사람들에게 내가 택한 방법은 회색돌 기법이다. 무미건조한 돌처럼 반응함으로써 상대와의 정서적 연결을 차단하는 것이다. 내가 감정적 반응을 멈추면 상대는 더 이상 나를 통해 에너지를 얻지 못한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나는 평화적 해결과 인도적 고통을 우선했지만, 주변에는 힘의 논리를 앞세우며 나를 설득하려 드는 사람이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끝까지 맞섰을 것이고, 대화는 감정을 할퀴는 소모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알겠어" 하고 짧게 갈무리한 뒤 자리를 피한다. 갈릴레오처럼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마음에 새기며.
세 번째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줌바와 필라테스로 내 몸을 움직이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음악과 춤이 어우러지는 그 순간은 다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에너지를 준다. 잘 먹고 잘 자는 것, 몸이 아프면 미루지 않고 병원에 가는 것. 이 당연한 일들이 사실은 나를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선택이었다.
네 번째는 글쓰기였다. 발행하지 못한 채 서랍에 넣어둔 글이 많을지언정, 글쓰기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직 나를 치유하기 위한 가장 정직한 거울이 되어주었다. 타인의 기분을 살피느라 닳아버린 마음의 안테나를 이제야 나에게로 돌린다. 누구의 기분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의 고요에 귀를 기울이는 일, 그 작은 선택이 나의 평화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나의 날개옷을 천천히 찾아오는 중이다.
본인의 상황에 맞게 조그만 날개옷이라도 찾아오는 연습을 한다면, 언젠가는 크고 빛나는 날개옷을 입게 될 것이다. 당신의 빛나는 미래를 미리 축하한다. 내가 먼저 길을 가서 기다리겠다. 나도 지금 천천히 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