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 여행기

마자르의 섬, 부다페스트에서 마주한 낯선 향기

by 정희

보이지 않는 향기의 성벽

교직에 몸담고 있을 때, 세계지리 수업 시간에 '인종의 섬'에 대해 가르치곤 했다. 유럽의 거대한 슬라브, 게르만, 라틴 민족의 바다 한가운데에 고립된 채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사는 이들, 바로 핀족과 마자르족이다.


부다페스트 공항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예상외로 소박한 규모였다. 역사적 명성에 걸맞은 거대하고 현대적인 시설을 상상했던 내 기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 소박한 공항을 나선 순간, 마자르족의 터전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나며 마음 한구석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가 교단에서 가르친 지식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혹여 낡거나 틀린 내용을 전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사실 내게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교사로서의 책무를 점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지식은 교과서에 머무는 순간 박제가 되기 쉽다. 나는 정형화된 지식이 아닌 현장의 생생한 숨결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여력이 닿는 대로 부지런히 길을 나섰던 것 같다.


'인종의 섬(Ethnic Island)'이란 주변 민족과는 확연히 다른 고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고립된 집단을 뜻한다. 헝가리는 유럽 한복판에서 이러한 고립과 독특함을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헝가리는 마치 '유럽의 외계인들이 사는 땅'과 같다. 주변국인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등은 모두 인도유럽어족에 속하지만, 헝가리어는 핀란드어와 함께 우랄어족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적 뿌리부터 다르기에 헝가리어는 주변 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로 꼽히며, 인도유럽어의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섬처럼 존재한다.


이 거대한 언어적 장벽은 마자르인들을 정신적으로 고립시켰으나, 역설적으로 그들만의 독창적인 사고방식을 길러내는 토양이 되었다. 오죽하면 20세기 초 미국 과학계에서 "헝가리인들은 정체를 숨기려고 이상한 말을 쓰는 화성인들"이라는 농담이 돌았을까. 그 중심에는 현대 컴퓨터 구조를 설계한 존 폰 노이만, 핵무기 개발의 단초를 제공했으면서도 그 사용에는 격렬히 반대했던 레오 실라르드 같은 천재들이 있었다.


'부다페스트의 화성인들'이라 불린 이들은 기초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꿀 만큼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성을 앞에 두고 이름을 뒤에 쓰는 명명 방식이나 한약과 유사한 치료 문화 등, 유럽 한복판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동양적 흔적들은 그들이 이 땅의 영원한 이방인이었음을 짐작게 한다.


그 고립과 이질감은 도시 곳곳에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마치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 세상을 향해 단단히 세워진 것들. 다뉴브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의 야경은 강물 위로 화려한 반영을 드리우며 밤을 장악하고 있었다. 어부의 요새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붉은 지붕들과 강과 다리가 한데 어우러져, 수백 년의 고집이 빚어낸 풍경처럼 펼쳐졌다.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음을 증명하는 듯한 도시. 그것이 부다페스트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참 뒤, 나는 우리나라에서 헝가리의 소울 푸드인 굴라시를 만날 수 있었다. 패키지여행의 특성상 현지에서는 정작 헝가리 음식을 제대로 먹을 기회가 없었다. 뒤늦게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맛본 굴라시는 마치 육개장처럼 친숙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그 맛에 매료된 나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파프리카 가루 대신 고춧가루를 넣어 끓여 보니 맛이 좋았다. 식구들도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곧 굴라시의 핵심은 '캐러웨이 시드'에 있다는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나는 곧장 그 낯선 식재료를 구했고, 다시 한번 의욕적인 도전에 나섰다. 결과는 처참했다. 내가 의욕적으로 쏟아부은 캐러웨이 시드는 축복이 아니라 침입이었다. 박하처럼 서늘하면서도 코끝을 찌르는 예리한 약초 향은 구수한 고기 국물 위로 낯선 이방인의 맛을 쏟아내는 듯했다.


그 강렬하고 낯선 향기 앞에서 굴라시는 더 이상 익숙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섬 밖의 사람은 결코 범접할 수 없도록 마자르족이 그들의 섬 주위에 둘러친 보이지 않는 향기의 성벽과 같았다. 결국 그 강한 향을 이기지 못하고 음식을 모두 버려야 했다.


지금도 그때 쓰고 남은 캐러웨이 시드는 싱크대 선반 한구석에 남아 있다. 버려지지 못한 그 씨앗들은, 타인을 혹은 타 문화를 이해하려다 실패했던 수많은 시도를 상징하는 듯하다. 가끔 선반 문을 열 때마다 풍겨오는 미세한 향은 나에게 속삭인다.

그들의 문화를 지식으로 아는 것과, 그것을 내 삶 속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결코 쉽게 건널 수 없는 깊고 깊은 심연이 존재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