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없는 마른 땅에서도 서로 돕는 처절한 연대.
사람들은 가끔 “은둔형 외톨이”를 성격의 결함처럼 말한다. 물론 과거의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 자료를 다시 확인할수록 보이는 건 딱 하나였다.
은둔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조건의 문제라는 것.
생활 동선이 끊기고,
기대와 낙인의 사이에서 말할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
누구라도 문 밖으로 나가는 힘을 잃을 수 있다.
정의 역시 나라마다 다르다.
일본에서는 통상 6개월 이상 집 밖 활동이 없거나 거의 없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사회활동이 적고 인적 지지체계가 부족한 청년”이라는 폭넓은 개념으로 접근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은둔형 외톨이에서 시작하는게 아닌가.
서로 다른 정의는 곧 통계 비교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이 문제는 ‘특수’가 아니라 ‘보편’의 문턱으로 올라왔다는 징후가 분명해졌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실태조사와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는 국내 고립·은둔 청년 규모가 최대 약 54만 명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고,
2024년부터 온라인 발굴 및 전담 지원체계를 시범 도입하겠다고 못 박았다.
“조기 발굴–전담지원–예방–지역 연계/제도화”라는 네 개의 축이 동시에 움직이는 그림이다.
숫자 그 자체보다 훨씬 중요한 건,
‘발견되지 않았던 사람들’을 제도 언어 안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한국의 은둔 청년이 일본보다 더 많아졌다”라는 식의 단정이다.
일본 내각부 조사에서는 코로나19 이후 15–64세 중 약 150만 명이 은둔 상태일 수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반면 우리 정부 추정치는 19–34세 청년층을 중심으로 산출·제시되었다.
모집단, 연령대, 질문 문항과 기준이 달라 단순 비교는 곤란하다.
비교는 어렵지만,
“각 사회가 이제 제도 언어로 이 문제를 다룬다”라는 점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오해는 또 있다.
은둔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사건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갑작스러운 취업 좌절,
학교·군대·직장 내 관계 붕괴,
가족 갈등과 돌봄 부담,
만성질환이나 정신건강 문제,
그리고 팬데믹 같은 외생 변수까지.
여러 인과가 겹치면 “한 번만 안 나가보자”가 “나갈 이유를 못 찾겠다”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글에서 서술했던 암에 대해 다시 말하면,
암은 DNA 분열 오류가 쌓여 발생한다.
사망 원인 1위임에도 발병은 ‘운’의 영향을 크게 받으니, 개인의 의지로 환원하는 해석은 빗나간다.
우울과 은둔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 환원하는 시선은,
눈에 보이는 지표와 통계로 설명 가능한 암과 달리,
정신질환이 가시적이지 않고 생활 태도와 쉽게 혼동되기 때문이며,
‘세상은 공정하다’라는 믿음을 지키려는 심리,
한국 사회의 체면·성과주의 문화, 낮은 정신관련 접근성으로 인한 경험 부족이 맞물려 형성된 구조적 낙인이다.
결국 이는 내가 왈가왈부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가 만들어낸 시선의 산물로서,
우울과 은둔을 ‘의지’가 아닌 ‘조건’의 언어로 다시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가.
결국 그들 스스로는 기존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나만 이상한가’라는 자기 낙인이 생기고,
낙인은 침묵을 만든다.
복지부의 정책 문서가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
조기 발굴과 연결의 회로이지 않을까.
그 침묵의 골을 건너게 만드는 방식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는 것이다.
낙인의 반대말은 칭찬이 아니라 맥락이란 점.
내가 최근 알게 된 곳,
‘안무서운회사’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은둔 경험’을 결핍이 아니라 경험치로 재명명한다.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며,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일상을 함께 만든다.
강북구 미아동의 두 채(A·B동)에 나뉘어 사는 구조,
무료 심리상담 연계, 생활 리듬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 등,
인생을 다시 ‘일과표’라는 낮은 단위로 회복시키는 방법을 실험한다.
집은 보호막이 아니라 문턱을 낮추는 플랫폼이 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모델이 바로 ‘은둔고수’ 양성 프로그램이다.
말 그대로, 은둔을 겪었고 성찰해 온 당사자가 동료를 돕는 사람(피어 스페셜리스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반년 이상 교육과 현장 활동을 묶어,
상담·동행·생활 코칭을 수행할 수 있게 돕는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다’가 아니라 ‘먼저 건넌 사람이 다리를 놓는다’라는 방식.
관계의 대칭이 줄어들수록 낙인은 옅어진다.
제도 바깥의 미세한 회복을 언어로 번역해내는 통로이기도 하는 곳이다.
통계로 단정하긴 이르지만,
셰어하우스와 동행 지원을 거치며 사회 이행(학업 복귀, 구직 재도전, 저강도 일·활동 참여)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제도의 안전망(발굴·연계)과 현장의 안전망(동료 경험)이 맞물릴 때, 사람은 “나는 고장 난 사람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다시 말하게 된다.
우리 제도도 그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 중이다.
국정 차원의 ‘발굴–지원–예방–제도화’ 축은,
결국 현장의 이런 미시적 변화를 찾아가 포섭하는 과제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서 있을까.
나 스스로도 한때 말이 닿지 않는 구간을 오래 건너온 적이 있다.
그때 필요한 건 거대한 조언이 아니라,
작게 시작할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여기선 울어도 된다”라고 말해 주는 방,
나와 비슷한 속도로 숨 쉬는 사람들,
나를 채점하지 않는 시간표.
그러니까 우리는 ‘나약함’을 부수는 게 아니라,
‘나약함’이라는 말 자체를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상태를 죄목으로 만들면, 사람은 더 깊이 숨어버린다.
어쩌면 영영 찾기 힘든 곳으로.
또 하나의 솔직한 고백.
나는 아직도 어디에 초점을 둘지 완전히 알지 못한다.
20대 초반의 내 또래일까,
고등학생일까,
아니면 20대 후반일까.
분명한 건, 나는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건네듯 글을 쓰고 싶고,
그 말이 누군가의 오늘에 닿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방향이 선명하지 않아도, 관심은 방향을 만든다.
관심은 질문을 만들고, 질문은 연결을 만든다.
연결이 생기면, 사람은 그제서야 스스로 움직인다.
그래서 이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싶다.
은둔은 결코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잠정적 은둔자로서,
어느 순간 말이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는 잠정적 연결망을 더 많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곳곳의 셰어하우스, 피어 스페셜리스트, 온라인 발굴 창구, 지역의 저강도 활동들.
제도와 현장이 만나 “나도 해본 적 있어요”라고 먼저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을 늘려줄 수 있는 사회.
그 말이 시작될 때,
사람은 수치심 대신 설명할 언어를 갖게 되고,
설명은 곧 이동과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오늘, 그런 이동을 돕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멋있고, 대단하며,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그리고 언젠가 어쩌면 아주 가까운 시점에,
내가 그 곁에서 작은 역할이라도 하게 되기를 바란다.
방향을 완벽히 안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가야 할 곳이 있다는 감각만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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