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여행, 벨기에에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

by 노마드젼
첫 번째 여행, 벨기에에서

첫 방학이 시작되었다.
주말을 포함해 16일.

짧지만 나에겐 충분히 긴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 루트는

벨기에 → 독일 베를린 → 이탈리아 베네치아 → 파리


루트를 이렇게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기차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루트가 왜 이 모양이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단순했다. 가격이 저렴했고, 가고 싶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라이언에어의 특가 세일이 내 첫 유럽 여행 루트를 정해주었다.


브뤼셀의 첫날

배낭 하나 메고 혼자 떠난 여행.

준비된 건 항공권과 숙소뿐이었다.


첫 숙소는 브뤼셀 시내 중심, 평점 좋은 호스텔. 방에 들어서자마자 함께 묵는 여행자에게 혼자 왔냐고 물었다. 호스텔에선 흔한 질문이었고, 그렇게 칠레에서 온 낯선 이와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결국 그날 저녁, 아랍계 카운터 직원과 그의 터키 친구, 의사로 일하는 스페인 친구와 함께 브뤼셀의 명물 술집 딜리리움에 갔다. 천여 종의 수제 맥주로 유명한 곳. 마침 흘러나오던 노래는 강남스타일.


그 순간,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국뽕이 밀려왔다.


브뤼셀에서 브뤼헤로

다음 날 아침, 칠레 친구, 스페인 친구와 함께 브뤠헤로 떠났다. 우연히도 모두의 목적지가 같았던 것이다. 전날 늦게까지 마셨지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기차에 몸을 싣고 브뤼헤로 향했다.


스페인 친구는 의사였고, 칠레 친구는 간호사였다. 모두 바르셀로나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처음으로 카탈루냐 독립 이야기를 들었다. 퀘벡 독립, 오키나와 독립처럼 카탈루냐 독립이야기도 들어본 적은 있지만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이정도로 진심일 줄은 몰랐다.

흥미로운 건, 그들이 내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는 점이다. 20대 초반으로 보였다고 했다. 나는 스스로 노안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에게는 주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어려 보였던 모양이다. 순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걸 느꼈다. “어린 동양인”이 아니라 “같은 나이대의 친구”로.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지만,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하는 것은 꽤나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함께 걷는 시간

우리는 무료 워킹투어에 참가했다.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걷고, 마지막에 팁을 주는 방식. 당시에는 보통 5-10유로의 팁을 주는 것이 관례였다. 단 몇 시간 만에 도시의 맥락이 손에 잡히는 꽤 괜찮은 경험이다.


브뤼헤에는 감자튀김 박물관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감자튀김은 “프렌치 프라이”라고 불리는데, 사실 원조는 벨기에라는 사실. 그래서 벨기에 사람들의 자존심이 묻어 있다는 설명을 듣고 웃었다. 우리나라의 김치마냥 어느나라든지 자부심있는 요리는 있는 법인가 보다 싶었다.

브뤼셀에 돌아와서는 홍합 요리가 유명하다고 해서 먹었는데, 그냥 홍합탕 맛, 우리가 아는 그 맛으로 맛있었고,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은… 예상보다 훨씬 작았다. 진짜 작았다.


짧은 인연, 긴 여운

여행을 마치고 그들은 네덜란드로 떠났다.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나는 예약해둔 비행기와 숙소 일정 때문에 베를린으로 향해야 했다. 결국 이틀간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여행 내내 서로 문자를 주고받았다. 오늘 본 것들, 새롭게 알게 된 것들, 느낀 것들을 공유했다. 단 이틀이었지만, 낯선 이들과 함께한 그 시간은 내 여행을 풍성하게 채웠다.


첫 유럽 여행의 시작, 벨기에

혼자라서 외롭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낯선 만남 속에서 새로운 감각이 살아났다.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듯한 기분.


이제, 다음 여정.

베를린에서는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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