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이야기, 짧은 소설
교실
쥐 죽은 듯,
한동안 아무런 소음도 나지 않는 이곳은 어느 교실 안.
우유와 유리 그리고 난이까지 서로를 흘긋 댈 뿐 눈치만 보며 입을 열진 않는다.
"아까 말한 것처럼. 지금 우리 교실에서 현금 15만 원이 삼일에 걸쳐서 없어졌어."
"..."
"혹시 이 일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교무실로 찾아와도 좋아. 쪽지만 남겨놓고 가도 좋아. 선생님은 기다릴게."
"..."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표정, 언제 끝나는지 지겹기만 한 표정. 이런 분위기에도 눈을 감고 졸고 있는 아이까지, 다양한 표정들이 모두 아이들의 것이다.
"그래, 그럼 이만..."
"저... 선생님."
교실의 가장 앞자리, 서 있는 서선생의 맞은편에 앉아있던 선희가 조심스럽게 손을 든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삼일 동안 제일 늦게 집에 간 애들은 유리랑 우유. 그리고 난이에요. 제가 봤어요."
떨리지만 또렷한 목소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생과 아이들의 시선이 교실 끝자락, 뒷 문 앞에 쪼르륵 앉아있는 세명에게로 돌아간다.
"어? 나 아닌데."
유리는 그렇게 말하며 우유를 바라본다.
우유는 난이를 바라본다.
난이는 천장을 바라본다.
"자, 자. 혹시 선생님한테 할 말 있는 친구들은 언제든지 교무실로 오면 돼. 그리고 선희야 용기 내서 말해줘서 고마워."
선희는 책상 위에 올렸던 손을 아래로 내려 마주 잡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며칠 전, 돈이 없어졌다고 서선생에게 알리러 교무실까지 왔던 선희는 이럴 때도 용감하다.
교무실
"하아아아아아아."
들고 있던 책을 교무실 책상에 탁 내려놓으며 한숨을 먼저 내뱉는다.
"그래가지고 어디, 땅이 꺼지겠어요?"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
"네에~ 네."
옆자리 김선생은 말 한 두 마디만 붙이고는 다시 방망이를 까닥까닥 목을 때리며 수첩을 편다.
"저기요, 김선생님."
"네, 서선생님."
수첩을 탁 접고 서선생쪽으로 돌아 앉는다.
"선생님 반에서도. 분실 사건 같은 거 있었던 적 있어요?"
"있죠."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
"어떻게 하시고 싶으신데요?"
"음.. 올바른 훈육을.., "
"그럼, 그렇게 하시면 되시겠네요."
"아니, 저보다는 훨씬 오래되셨으니까. 좋은 방법이 있으면 저도 좀..."
"선생님이 하시고 싶은데로 하시면 돼요. 무엇을, 어떻게, 왜 하고 싶은지."
무엇을 어떻게 왜...
라니
뜬 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음 오또케.
"서선생님."
가만히 생각에 빠진 서선생을 부른다.
"네"
기대에 찬다.
"파이팅."
김선생은 불끈 쥔 오른 주먹을 보여주고는 교재와 방망이를 집어든 채 유유히 교무실을 나간다.
"하... 팍... 시.."
찾아온 아이
(1) 유리
유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긴 머리를 돌돌 돌려가며 여기저기를 흥미롭게 쳐다본다.
"선생님한테 할 말이 있다고?"
"네, 전 아니에요."
"응."
조용히 유리의 눈만 바라본다.
"한 달 급식비 내기도 버거운 건 우유잖아요. 이번 달은 내는지 보면 되는 거 아니에요?"
"우유를 봤니?"
"가져가는 걸 본 건 아니지만. 며칠 전에 제가 가방을 두고 와서 다시 돌아왔을 때, 우유 혼자 교실에 있었어요. 저를 보고 엄청 놀라더니. 그러다 뛰어나갔거든요."
"그러면 그다음엔 네가 혼자 있었겠네."
"... 그런데 저는 아니에요. 저희 엄마아빠 뭐 하는 분인지 아시잖아요."
"음..."
조용히 유리의 눈만 바라본다.
유리의 시선은 선생에게 머물지 않고 앞과 옆의 사람들 움직임에 따라 계속 흔들린다.
"저, 이제 가봐도 되죠?"
"그럼, 할 말이 없으면 가도 돼."
"네., 저 우유. 불러올까요?"
"괜찮아. 고마워 유리야."
서선생이 싱긋 웃으며 답하자 유리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만 꾸벅 숙인다.
다시 긴 생머리를 돌돌 말아가며 교무실 문을 나간다.
(2) 난이
"선생님. 제가 처음 온 거 맞아요?"
"글쎄. 선생님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네... 실은 제가 며칠 전에 마지막까지 교실에 있었는데요."
조용히 난이의 눈을 바라본다.
"저, 아니 유리가 얼마 전부터 엄마랑 싸우고 집에 잘 안 들어간다고 들었어요."
"그랬구나."
"유리 어머니, 엄청 무섭잖아요. 가출하고 싶다고 늘 입에 달고 사는데. 막상 하지는 못하면서."
난이가 가느다란 팔로 의자 양쪽을 짚은 채 까닥까닥하다가 넘어질까 불안하다.
"그리고 유리랑 우유랑 요즘 붙어 다닌다는데. 서로 죽일 듯이 잡아먹을라고 할 땐 언제고."
"으응."
미소를 잃지 않고 조용히 난이의 눈을 바라본다.
"선생님."
"응"
"저 할 말 끝났는데요."
"응, 그래 그럼 들어가 봐 와 줘서 고맙다 난이야."
"... 뭘요. 더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또 말씀하세요 선생님."
서선생은 눈을 맞추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3) 우유
조금 전부터 실루엣 하나가 교무실 앞에 비쳤다가, 사라졌다가.
서선생은 몇 분을 바라만 보다가 다가가서 천천히 문을 연다.
"악!"
"우유?"
"그게 아니고. 선생님."
"들어와."
"네..."
의자를 끌어다 주자 앞 턱 끝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걸친다.
쉴 새 없이 꼬물거리는 발은 운동화 앞부분의 떨어져 나간 고무창을 가리고 싶은 걸까.
"저... 진짜 아닌데요."
조용히 우유의 눈을 바라본다.
애틋하게 보고 싶진 않다.
"일주일을 굶는다 해도 남의 거는 안 훔쳐요."
"그렇구나."
우유는 말없이 땅만 보며 신발의 앞코를 밟았다 놓았다 한다.
"어떡하실 거예요?"
"응? 뭐를?"
"범인을... 못 잡으면요."
"우유가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제가요? 제가 어떻게 선생님이 돼요. 공부도 못하는데."
서선생은 빙그시 웃어 보인다.
언젠가 학년초 상담에서 '선생님은 선생님이라 좋겠어요'.라고 했던 우유의 말이 떠오른다.
"음... 저라면... 애들 말을 믿겠.. 죠..."
"응. 우유는 그런 선생이 될 거구나."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아니에요. 뒤져보셔도 돼요."
"내가?"
"네... 좋은 선생은 애들을 바로잡아야 좋은 선생일 거잖아요. 그러니. 의심되면 확실히 뒤져보고."
"선생님은 네가 말하는 그런 선생은 못될 것 같네. 나도 아직 배워가고 있는 중이라."
우유가 침을 꼴딱 삼킨다.
나오는 말마다 예상치 못한 답안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저는 갈게요."
"그래, 그럼 조심히 가. 와줘서 고마워."
"... 네. 저 선생님. 저는 누굴 의심하는지 안 궁금하세요?"
서선생은 고개를 갸웃하며 우유를 쳐다본다.
"아니에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우유의 날갯죽지에도 손가락 하나 들어갈 작은 구멍이 보인다.
서선생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나도 늘 물려받은 교복이 저랬었는데.'
(2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