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에도 온도가 있다

3장 나로 살아간다는 건

by 여백

나는 조금 느린 사람이다.


사람들을 빨리 파악도 못하고, 모든 상황을 단번에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감정이 앞서고 마음이 먼저 흔들리는 탓에 어떤 날은 말없이 지쳐버리기도 한다.


그런 나를 오래도록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다.


"사회성이 부족한 걸까?"

"눈치가 없는 걸까?"

"왜 나는 이렇게 민감하기만 한 걸까?"


"남들처럼 뻔뻔하지도 못하고, 적당히 넘기지도 못하고..."


사람 사이의 간격에서도 늘 혼자 조심스럽게 숨을 참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런 내 고민을 듣고 있던 나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다가와 조용히 말해주었다.


" 여백아 네가 남들보다 느린 건 남들을 판단하지 않고 수용하려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쉽게 지치는 건 깊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섬세한 사람이라서 그러는 거야


그건 너의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야

너도 알고 있으면서 뭘 그래 "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은 나를 믿게 되었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먼저 느끼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말보단 말투를 먼저 느끼고, 말투보단 그 안에 담긴 기류를 먼저 감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진실과 거짓, 슬픔과 억지웃음을 조금 더 예민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이었던 거다.


처음에는 이 예민함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감각이 나만의 언어이자 온도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로 산다는 건 세상의 속도에서 조금 뒤처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다.


모두가 정답처럼 살아가는 방식에서 잠시 비켜서서 나에게 맞는 호흡을 찾는 일이다.


가끔은 나만 멈춘 것 같고, 다들 앞서가는 것 같아 불안하지만 조금은 의도적으로 멈춰본다.


그 멈춤 속에서 나는 나를 더 잘 듣게 되었고 나를 다그치지 않게 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렷해졌다.


" 왜 그렇게 까지 예민하게 살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답한다


' 그게 나라는 사람이니까'


세상은 자꾸 둔해지라고 말하지만 나는 내 예민함을 지켜주고 싶다.


나로 산다는 건 늘 조심스럽고 외로운 일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만이 감지할 수 있는 결, 나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나는 그 결을 따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감정들 속에서 오래 머무르고 싶다.


누군가에겐 느리고 이상한 모습일지라도 이런 내가 이런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나는 이방식으로 사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혹시 당신도 나처럼 하루를 조용히 견디고 있다면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 이렇게 살아가는 나도 괜찮다

이렇게 살아가는 당신도 충분히 괜찮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