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똥구리네 집 (Soedungguri's house)

쇠똥구리는 똥을 굴리며 좌절할까 웃을까

by 호윤 우인순 시인



나이가 들면 감동이 무디어

지는 걸까


쇠똥구리 똥 굴리는 모습만 보아도

신기하고 우습던 시절도 있었는데

누군가 웃어만 주어도

온종일 행복했는데

이제는 춤을 추고 뛰어도 흥겹지가 않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무디어지는 걸까


냄새나고 지저분한 똥을 굴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먹고사는 쇠똥구리가

참 슬퍼 보였는데

나이 들으니 그것이 슬프지가 않다.

세상 살다 보니 꼭 깨끗한 사무실 화이트 칼라가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엔 원하면 무엇이든지 도깨비방망이가 되어

뚝딱! 하면 다 나오는

은수저 부모님을 가진 아이들이 참 부러웠다

세상 부족함이 없이 자신만만한 모습에 큰 소리로

마구 하고픈대로 말을 하고 아무나 깔아뭉개도

아무렇지 않은 친구! 어려서부터 유교 교육을 받고 자란 나에게는 부럽기도 하고, 그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어 기가 죽었으나

나는 늘 그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하며 따라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은수저 부모를 가진 황새의 큰 걸음을

나는 작은 뱁새처럼 달음박질하여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림을 그릴 때 나도 그리고

그들이 피아노를 치면 나도 치고

그들이 산을 오르면 나도 올라

그들 틈에 끼여 웃고 있었으나

사실은 황새틈에 기죽어서 웃는 뱁새였다

그래서 그들이 쓰는 외제 학용품은 없었다

아이들은 은수저 주변에 붙어서 외제 연필하나

얻으려고 갖은 비위를 맞추고 있고

나는 그냥 바라보았다

세상이 지금도 은수저 아이는 비싼 물건 들고

으스대고 흙수저 아이는 기죽어 있거나

아양을 떨어 부스러기를 주워가질 것이다


죽도록 황소처럼 성실하게 일하시는 우리 부모님

하지만 늘 살림살이는 그대로이고

은수저집 친구들이 가지는 것들을 꿈꿀 수도 없이

그저 부럽게 쳐다보았다

그래서 죽어라 공부를 했다

일등은 은수저로도 안되었기에

코피 터지면서 수석을 하는 기분!

아마도 나의

열등의식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부가 다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는,


어느 날 길 가다 본 새파랗고 맑은 하늘

길가에 하얗게 웃는 한 친구

참 곱고 맑고 순수하고 예뻤다

은수저 집 아이들이 가질 수 없는 얼굴이다

옷은 수수하고 꾸미지 않아도 가을 들꽃같이

은은한 향기가 나는 아이다

그 친구를 알게 되면서 나는

행복이란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친구는 흙수저집이다

아버님은 환경미화원이시다

정화조 똥을 푸는 공무원이시다

그 집에 가면 냄새나는 작업복이 빨랫줄에 널려있다

친구들이 그 아이를 놀렸댔다 아마도 그 집은

똥냄새로 진동할 것이라고

그래서 그 아이 별명이 쇠똥구리였다

나는 그때쯤 쇠똥구리에 관심이 생겼다

쇠똥구리는 똥을 굴리며 죽고 싶도록 좌절을 할까

"이 더러운 똥을 먹고 살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찡그리고 있을까


어느 날 그 친구집에 초대받아서 놀러 갔다

마당에 들꽃이 가득 피어 웃고 있었다

큰 가마솥에 노란 밥이 가득 들어있었다

감자를 넣은 노란 밥이 상위에 나왔다

활짝 웃으시는 어머님이 애호박 전을 부쳐서

주셨다 열무김치에 까만 콩자반이 반짝거리며 웃었다 구수한 된장찌개도 나왔다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밥 중에 제일 맛있는 밥이었다

밥을 먹으며 환하게 웃는 가족들

마당에 점박이 바둑이가 킁킁거렸다

아주머니는 된장국에 먹다 남은 밥을 말아

바둑이 밥그릇에 부어주었다

킁킁거리며 먹는 바둑이의 얼굴은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한 모습이다

다 먹은 뒤 그릇을 싹싹 다 비우고

꼬리 치며 웃는 모습! 지금도 생각하면 행복이란 것이 뭐 그런 게 아닐까?

부자의 행복이나 가난한 쇠똥구리집 행복이나

무엇이 다를까


땀 흘리며 일하고 먹는 식사 시간

따스한 눈빛들이 오가며 만족한 듯 웃는 모습들

나는 그날 이후로 쇠똥구리는 똥을 굴리며

엄청 행복한 모습으로 굴릴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집으로 가서 가족과 나누어 먹을

식사이고 기쁨이고 행복이기 때문이다

진흙탕에 구르며 똥냄새 맡아도

쇠똥구리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행복하게

일 하며 하루를 보낼 것 같다

이따금씩 새파란 하늘도 보고 말이다


중학생이 되어 내가 공부를 잘하니 은수저 친구가

나에게 맛있는 것도 가져다주고

그 친구집에 초대도 했다

시골뜨기 내가 국회의원 집 차를 타고 갈 줄이야 상상이라도 했을까

집이 참 좋았다.

쇠똥구리친구 집 보다 으리으리한 궁전이고 모든 것들이 빛났다

"우리 은서랑 함께 독서실에서 공부를 해줄 수 있을까? 다른 친구는 다 빼고 우리 딸 하고만" 물었다

그러면서 조건을 붙였다

나는 웃었다 모두 함께 할게요

친구들도, 은서도 다 제 소중한 친구라서요

조건은 필요 없어요

저도 필요하면 다 해 주시는 부모님이 있어요

내 말이 기분이 상했는지 은서 아버님은 다른 친구를 구하여 은서랑만 다니게 하였다

모든 것들을 다해 주어도 은서는 늘 시험만 보고 나면 울었다 성적이 안 좋아서이다

그것이 다는 아닌데 어른들은 아이의 눈물은

보지를 않고 성적만 보이나 보다

그 집만 생각하면 왠지 슬프다

큰 집이 너무 조용하고 걷기조차 조심스러운 집,

모두들 다 자기 방에 들어가 있어서 모두가

한 지붕 혼자인 집, 웃음이 없는 그 집이

비교가 된다

쇠똥구리집엔 마구 뛰고 깔깔 웃는 소리가 듣기 좋았는데, 역시 나는 궁궐보다는 쇠똥구리네

흙집이 좋았다

지금도 가끔 생각하면 쇠똥구리 친구네 집이

떠오르고 그립다

(소똥구리는 국내에서 더 이상 보기 힘든 멸종위기 종 중 하나입니다. 5~60년대 이후로는 더 이상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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