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by 호윤 우인순 시인

울타리 하면 시골집 나무 울타리를 떠올린다

말하자면 영역 표시 랄까

이 울타리 안은 내 집이니 들어오려면

주인 허락받고

들어오라는 일종의 영역 표시랄까


어렸을 적에 시골동네 울타리 안에서 자랐다

가족 울타리에서 자라면서

부모님 울타리는 정말 튼튼해서

나를 잘 보호하여 평화스럽고 행복했다


성장한 이후 결혼을 하여 내 집을 만들고

아이 기르며, 나는 그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어느 날 나의 울타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 시누이, 남편, 시어머니 시집살이로 하나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펜스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끄떡 앉고

나무 울타리를 수리하여 대문도 달고 아이들과 살았다

어쩌면 세 살배기 아들이 튼튼한 나의 울타리였을지도 모른다


세월 흘러 아이들은 내 울타리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울타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외국으로 떠나고, 장교로 군에 가서 울타리를 치고 살면서부터

내 울타리는 초라하고 빈약해 보였다

바람 불면 훅! 하고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를 보호해주었으면 해서 쥐똥나무 울타리를

꿈꾸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해가 둥글게 떠서 웃고

햇살이 눈부시게 내리면 새들이 날아와

노래하는 쥐똥나무 울타리에 오월은 꽃이 하얗게 피고

가을엔 까만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는 울타리를

꿈을 꿀 때쯤 시골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 울타리 밑에 맨드라미 봉숭아 채송화를 심고 싶었는데 쥐똥나무는 아니지만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다 태풍에도 끄떡 이 없는 가시 달린 울타리였다

부모님과 그 울타리에서 사니

든든한 느낌이었는데, 가을엔 탱자가 노랗게 익고

참새들이 수십 마리 날아와 짹짹 노래했다


그때쯤 턩자가 몸에 좋다고 사람들이 우리 집 울타리에

와서 탱자를 따다 효소를 담았다

나는 잘 키워 탱자 차도 만들고, 효소를 만들

꿈을 꾸면서 몸에 좋다니 거들떠보지 않다가

관심을 가지는 내가 탱자나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탱자꽃이 하얗게 핀 봄

호수로 탱자나무에 물을 주는데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느릿느릿 기어 나오는 엄청 큰 구렁이었디

나는 놀라 호수는 집어던지고 달아났다

그 큰 구렁이는 집 뒤 내가 밤이면 걸어 다니며

달을 보는 100평쯤 되는 감나무가 있는 곳인데

큰 구렁이는 긴 몸을 이끌고 그곳으로 갔다

그날 이후로 풀 뽑아 꽃을 심고 예쁘게 꾸미고

약초도 심고 취나물 심어 뜯어먹어

엄청 좋아하는 공간인데 다시는 가지 않았다

아마도 큰 구렁이는 탱자나무 울타리 가시 속이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을 하여 거기서 살았는데

내가 물을 뿌리니 놀라 이사를 간 것이다

그 탱자나무 울타리에 대나무까지 함께 자라서.

탱자나무 울타리는 튼튼해 보였는데


내 울타리 안에 적군이 침입했다

지네였다 70센티쯤 되는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며 옷걸이로 치니

두 동강이 났는데 두 마리가 되어 나를 따라오는 것이다

야! 네가 왜 내 울타리를 넘어서

문 열고 온 거야? 나가!라고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여기는 내 울타리 안의 길이야 세상모든 것들은 다 움직이는 길이 있어"

지네는 소리쳤다


길은 무슨? 여긴 내 집이고 너는

침입자 거든 하니

원래 여기가 우리들의 집이었고

너네가 땅을 파고 집은 지은 거야

침입자는 너지, 지네는 비웃으며 소리쳤다

그다음부터는 지네가 새끼들을 데리고 가끔씩 무단침입 하여 내 방 안을 걸어 다녔고

내가 자는 동안 내 머리로 팔로 기어 다니다

내 머리 혈관에 침을 박고 물어 응급실로 실려갔다

119 구조대 차에 실려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까마득히 먼 곳으로 가는 듯 정신이 희미해지고

병원에서는 소리 들리냐고 가슴을 툭툭 치며 내 이름을 불렀다

지네는 해독약이 없어요

링거와 항생제를 맞으며 독을

없애야지요 한 달은 항생제약을 먹고 치료를 했다


울타리에 번호키까지 방문도 잠그었는데

녀석은 어떻게 내 집을

자기 집 드나들듯 왔다 갔다 하는지 모르겠다


방역팀을 불렀다

수십만 원을 주고 온 집 안에 약을 뿌렸다

벌레들은 길이 있어요

사모님 집은 신축건물이라 들어 올곳이 적은데 유리창 밑 빗물받이가 뚫렸네요

나는 다음날 다이소가서 막을 곳을 메울 재료들을 사다가 집안을 막았다


이쯤 되니 문밖 울타리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 후로 부모님 돌아가시니 울타리가 하나 무너지고 남편이 하늘로 이사를 가니 또 마지막 남은 작은 울타리마저도 무너져 흔들흔들

침입자가 들어오기 딱이다


어느 날 보니 내 집 울타리를 너머

유혈목이가 꽃밭을 지나다녔다

야 꽃뱀 우리 집을 왜 허락도 없이

드나드는 거야? 하하 너네 집이 여기라고 우리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지나다니는 길이야 무슨

네가 이 땅 주인인 모양인데

인간이 만든 문서고 자연의 주인은

하나님이지, 웃겨 나는 이 집에 두꺼비가 살아 잡아먹으러 오는 거고 그걸 먹어야 독이 생기거든 저 까진 울타리가 무슨 소용이야 나만 다니니?

여기 길을 트고 사는 고양이들도 있고 굼벵이, 땅 파는 두더지, 개구리 엄청 많이 다니고 여기서

살고 있지. 저마다 자기 영역을 표시하고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치고 살며 서로 질서를 지키며 살고 있는 중이거든


너는 커다란 보이는 울타리만

든든한 줄 알지?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거든

내가 보기엔 너를 지켜 줄 울타리는 하나도 없구먼

우리하고 라도 잘 지내면

모두 합심하여 너를 지켜 줄터인데

시비만 걸지 말고 약도 뿌리지 말아


나는 물론 지네도 터줏대감 능구렁이도 여기 사는 야생고양이들도 다 좋게 하면

너를 지켜줄 테니까


듣고 보니 그럴싸한 일이다

하지만 내 집은 울타리가 무너져

이젠 우체부도 아무 신경 안 쓰고

드나들고 택배 아저씨도 그렇다

그저 비번이 달린 현관문이 나를 지켜주는 걸까

늦은 밤 달이 뜨는 길을 걸으니

저쪽 교회 아스팔트 길 위

커다란 지네 부부가 사이좋게 걸어오고 있다


안녕하세요?

으음 누구시던가 그 방역을 불러

우리 족속을 몰살시킨 여자구먼

나도 길을 바꾸었어

너희 집 길마다 순찰을 돌며 나쁜

기운 있는 녀석들을 쫓아주었는데

여기저기 약을 뿌려대니

이젠 몰라 나도 너를 지키는 울타리였는데

서로 돕고 살아야지 인간의 속이 밴댕이 콧구멍 보다 좁아서야 허허 생긴 건 이리 생겨도

의리 있는 지네인데 날 무시하다니


그래도 난 지네는 싫어

내 울타리는 내가 지킬 거야

도대체 내 울타리는 어떻게 쳐야 할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튼튼한 펜스를 쳐야겠는데

우리 집은 침입자가 너무 많아

벌레들은 물론 느물 느물 민달팽이까지, 캄캄한 밤 달을 보며 묻는다

내 울타리는 어디 갔을까요?

나는 보이게 펜스를 치듯 거창한 울타리를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네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도 그저 옆에만 있어주면

커다란 위안이 되고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울타리라는 것을


보기는 멀쩡한데 온통 침입자 투성이니

달님! 서울 아파트로 가야 할까요?

아파트는 안전하였는데 ,

글쎄요? 울타리가 무엇인지요

달님은 그저 웃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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