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호주 아들레이드 공사장에서 적응하기
우여곡절 끝에 형광색 안전복을 입게 되었다. 나의 첫 번째 일은 스포츠 행사가 열리는 현장 건설보조였다. 그곳에서 만난 경력이 무려 40년인 호주 아저씨는 전형적인 보건(bogan, 사투리가 강한 호주 시골 사람) 악센트를 가지고 있었다. 하는 말의 50%는 욕이었고 funcking이라고 감탄사를 문장에 넣지 않으면 입을 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시큰둥했다. 처음부터 잘못 걸렸다고 생각했는데,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갑자기 주절주절 뭔가 털어놓기 시작했다. 외국인에 여자라 본인의 과거 경험으로 '에라이 오늘 망했다'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열심히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마음을 연 것이다. 눈물 나는 구직기간 끝에 한 첫 번째 일이라 그냥 뭘 시켜도 재밌었고 뭐든 신기했다. 그리고 한국인의 기준에서라면 최저의 최저의 최저의 일을 한 셈이었다. 그저 펜스를 잡아달래서 잡아줬고, 연장을 들고 있으래서 들고 있었는데 칭찬을 듣다니... 호주 상남자의 마음을 움직인 나에게는 보상이 주어졌다. 한국어로도 모르는 도구 이름을 영어로 알리가 없는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매듭 매는 방법, 선 정리하는 방법 등 앞으로 나의 공사장 일상에 큰 도움이 되어줄 많은 팁들을 얻었다. 나의 첫날은 뜻밖의 산타아저씨와 함께 시작했다.
내가 누구던가, 열심히 이력서를 돌리던 당시, 잭해머를 사용할 수 있냐는 질문에 그게 뭔지도 모르는 완전 초짜였다. 지금 생각하면, 몇십년 잔뼈가 굵은 아저씨들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웃기고 한편으로 귀여워 보였을까 싶다. 먼지하나 묻지 않은 깨끗한 작업복에 순진한 얼굴을 한 아시안 여자애가 공사장에 자투리 자재들을 주워담는 모습이란...
한 번은 아들레이드의 의사당 건물에 파견을 간 적이 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에서 "관계자"를 맡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는 아침이었다. 시간 맞춰 도착해 문 앞에서 전화를 했지만, 당연히 길을 찾지 못해 차로 나를 데리러 왔다. 복도가 복잡하고 미로 같았던 곳에서 부탁받은 물건을 옮기다가 문을 몇 번 통과했더니 전혀 다른 건물에 도착해 버렸다. 매니저조차 내가 어디 있는지를 몰라 결국 페이스타임으로 주위를 비추며 내 위치를 찾았다. 이날 하루는 결국 매니저가 길 잃은 나를 찾아다니다가 다 흘러버렸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현장에서 하루를 완성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호주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꽤나 정직하던 나에게 "유도리"을 알려준 아저씨를 잊을 수 없다. "근무시간은 앱을 통해 직접 기입하는 건데, 확인하는 사람이 없으니 한 10분 정도는 더 적어도 된다. 스모코나 점심시간은 적당히 상황 봐가며, 일이 없으면 더 쉬어도 된다."는 팁을 주었다. 좋게 말하면 여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다소 게으른 호주 사람들의 근무 태도를 체득하게 해 주었다. 사실 특별히 내가 필요하지 않은 한, 큰 공사장에서 굳이 나를 찾는 일은 없었다. 또한 누가 봐도 착하게 생긴 아시안 여자애의 눈빛을 가지고 화장실 가는 길 의자에 앉아 30분을 쉬다 올 거라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본래의 성실함과 호주 사람들에게 전수받은 농땡이 부리는 법의 합작은 놀면서도 칭찬받는 나로 승화되었다.
다양한 동료들과 매니저들을 만나며, 성실하되 적당히 꾀를 부리는 방법을 배워갔다. 힘들고 더운 날에도,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보람, 작은 인정들이 쌓이면서 점점 현장 생활에 익숙해졌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작업복 묻은 먼지가 좀 더 진해질수록, 그래도 생초짜에서 초짜 정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나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