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한국어를 선택했다

by 아키토 terrace

고등학교 3학년 가을.

미술부원이었던 나는 마지막 졸업 작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잃고, 꿈도 희망도 없던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크게 변할 수 있었다.

용기를 내어 도전하면 세상은 달라진다.


그 확신을 품은 나는 졸업을 앞두고 그 마음을 한 점의 유화로 남기기로 했다.

새로운 세계로 날아오를 나 자신에게 바치는 그림이었다.


모교의 복도에 서 있는 나의 뒷모습.

가만히 앞을 바라보고 있다.

낡은 가방은 짐으로 가득하다.

복도 한쪽에 쪼그려 앉아 있는 소년.

그 아이는 상처투성이였던 중학교 시절의 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변했다.

먼 미래를 바라보는 내 그림자에는 날개가 있다.

이 고등학교 시절,

나는 하늘을 날기 위한 날개를 얻게 되었다.

하늘 높이,

구름 위에 보이는 것들은 꿈과 희망.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사람들.

교실 칠판에는 ‘2002년 3월 8일’이라고 적혀 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다.

나의 새로운 출발의 날.




“한국이나 프랑스, 아니면 미국으로 단기 유학을 가고 싶다. 꿈이 있으니까 노력할 수 있다.”


당시의 일기에 나는 그렇게 적었다.

중학교 때 축구 소년이었던 나는 좌절을 겪고 자신감을 잃은 뒤, 모든 것이 싫어졌다.

어릴 때부터 귀와 심장이 좋지 않아 병원에 다니는 날이 많았던 탓도 있어,

“혹시 나는 큰 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꿈도 희망도 없는 미래가 무섭기만 하고,

나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이 지루한 나와는 다른 삶을 만나보고 싶어

고등학교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만화밖에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고1 겨울, 『레 미제라블』에 감동받은 뒤로 세계에 관심이 생겼다.

세계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런 나를 바꾸고 싶어 학생회장에도 도전했다.

회장이 되어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여전히 서툴렀지만,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신감'은 생겼다.


그래서 대학에 가면 꼭 유학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일지, 프랑스일지, 아니면 미국일지.




프랑스어와 한국어.

고3 연말, 대학 입시를 끝낸 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언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도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말했다.


교실에서 프랑스어 교재를 펼치면 “우와!”, “멋지다!”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한국어 교재를 펼치면 “한국? 왜?”라는 의아한 반응이 돌아왔다.


학생회장까지 할 정도의 괴짜였으니, 그런 시선쯤은 이미 익숙했지만.


왜냐고 물으면

한국은 이웃 나라니까,라고 답했다.


세계를 바라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웃 나라니까.




대학 입학이 가까워지자 제2외국어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프랑스어… 한국어….

『레 미제라블』의 세계에 빠진 나는, 그 무대가 된 프랑스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고, 강한 동경심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막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의 대표작 『장 크리스토프』를 읽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 책은 아직도 나에게 중요한 책이다.)


한편,

텔레비전에서는 매일같이 한반도 이야기가 나왔다.

월드컵 공동 개최로 떠오르는 한국.

미사일 문제 등으로 자주 언급되는 북한.

서로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두 나라.

왜 한반도는 분단되어 버렸을까.


그런 의문 속에서

나름대로 역사를 공부하다 보니

애초에 한반도가 분단된 원인은 그 시기의 일본에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웃 나라에 너무 무관심하고, 모르는 것이 많다.

이웃 나라에 살고 있는 일본인으로서 더 배워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고 느꼈다.


주변 사람들의 무관심이 오히려 나를 분발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

사명감이랄까.


나는 한국을 더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나는 한국어를 선택했다.


5話①.jpg 그때 그린 작품『나를 믿어(自分を信じて)』는 지금도 내 방에 걸려 있고 나에게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