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변하고 싶었다.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떠들며 장난치고 싶었다.
모두 중학교 시절에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고등학생 시절에 모든 것을 걸어 보기로 했다.
중학생 시절에 ‘자신감’을 잃고,
나 자신까지 싫어지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미련이 싹 사라졌다.
어차피 잃을 것도 없다.
이 고등학생 시절, 한번 마음껏 살아보자.
입학식 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봄바람이 불었다.
앞으로의 3년 간이 격동의 시간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새로운 반의 남자아이들은 나와 비슷하게 내성적인 타입이 많았다(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그런 조용하고 어색한 반 분위기가 나를 안심시켰다.
어느새 나는 스스로 먼저 말을 걸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에 항상 움츠러들던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즐거웠다.
내가 점점 업데이트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부활동은 기타부에 들어갈지 미술부에 들어갈지 고민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초등학생 시절, 내 꿈은 만화가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5명의 전사’라는 만화를 노트에 그려 동생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만화의 독자는 동생들 뿐이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 동생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말을 안 하게 되면서 내 새로운 취미는 기타로 바뀌었다. 자신감을 잃고 모든 게 싫어졌던 내 마음에 울림을 준 건 록밴드(GLAY, LUNA SEA)의 음악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기타부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소심한 나는 기타부 부실에 드나드는 불량스러운 학생들의 모습에 주눅이 들어 미술부의 문을 두드렸다.
그게 정답이었다.
미술부는 사람이 적고, 나와 음악 취향이 잘 맞는 3학년 선배와 록밴드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작품을 그렸다.
중학교 때 고통스럽기만 했던 축구부와는 완전히 달랐다.
부활동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독서에 이어 부활동의 즐거움까지 알아버린 나는, 미술부 활동과 동시에 핸드볼부, 영화동호회 준비회, 연극부에도 들어가 활동을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너무 소극적인 나머지 아무것도 못 했던 나.
그걸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그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반에서는 모두에게 협력을 구해 1학년이 끝날 무렵에 모두의 장래 희망 등을 담은 반의 문집을 제작했고, 2학년이 되자 새로운 반의 자기소개 팸플릿을 만들었다.
중학교 시절의 나를 아는 친구들은 내 변화에 놀라워했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나 자신이었다.
그런 나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된 건 학생회였다.
학생회는 늘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다른 타입의 학생들이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서기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1학년 가을에 학생회 서기가 되자 학생회 신문 편집 등을 맡았다.
1년 후, 다시 선거 시기가 찾아왔다.
학생회에도 익숙해졌고, 이번에는 부회장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모처럼 1년 동안 열심히 서기를 해왔는데 그 경험을 살려 다음에는 과감하게 학생회장에 도전해 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정말로 못한다.
내가 회장으로서 사람들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역시 무리일 것 같다.
하지만…
단 한 번뿐인 고등학교 시절.
어쩌면 내가 크게 변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중학생 시절부터 늘 자신감이 없었다.
그런 나도 고등학교에 들어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만약 회장을 끝까지 해낼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최강의 자신감’이 생길 것이다.
용기를 내자.
나는 마음을 먹고 선거에 출마했고, 2학년 가을, 학생회장이 되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한다.
그렇다면, 그 외의 부분에서 나다움을 보여주면 된다.
혼자 묵묵히 학생회실을 청소하고, 어지럽게 쌓여 있던 학생회지를 연도별로 정리했다.
그 당시에는 머리 염색이나 피어싱이 문제였기 때문에, 실태 파악과 교칙 개선을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해 선생님들과 협의하기도 했고, 학교의 상징이었던 ‘참나무’의 역사를 정리한 팸플릿을 자발적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너의 필사적인 모습을 보고, 불가능한 건 없다는 걸 배웠어.”
1년 후, 학생회장을 은퇴할 때 학생회 지도교사 선생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 나를 움직였던 용기의 한 걸음.
그 한 걸음으로, 확고한 자신감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참 괴짜 학생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
부활동을 네 개나 겸하고, 소심한 주제에 학생회장에 도전하고, 반에서는 계속해서 모두를 끌어들여 새로운 일을 벌이고.
그런 괴짜 학생이던 나는 마지막까지 괴짜로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졸업식 당일.
누가 시키지도 않은 졸업 논문을 멋대로 쓰고선 교무실로 들어가 신세 진 선생님들께 나눠 드렸다.
‘우리 학교가 더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제로 한 논문이었다.
A4 용지 34장, 3만 자.
그렇게 괴짜학생이던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선생님들을 괴롭히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