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내가 사라지던 시절

by 아키토 terrace

축구를 좋아했다.


세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사촌 형에게 축구를 배우고는 매일같이 동생들을 이끌고 축구에 푹 빠져 지냈다. 집 앞 골목이 주된 연습장이었고 가끔 이웃집 화분을 깨뜨려 혼나곤 했다. 집에서는 매일 축구 만화를 읽고 TV로 J리그 팀인 Urawa Reds를 응원했고 용돈을 모아 축구 선수 카드를 사 모았다.


그렇다, 나는 축구 소년이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축구부에 들어갔다. (일본에서는 중학교에서 부 활동이 필수다.)


한편, 집에서는 장남으로서 대장처럼 굴던 나였지만, 학교에서는 부끄러움이 많고 매우 내성적인 아이였다. 내가 먼저 친구에게 말을 걸어본 적은 없었고 교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에도 누가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늘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밖에서는 소심한 나, 집에서는 대장 같은 나.

그렇게 두 얼굴의 내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두 살 어린 남동생도 같은 학교 축구 부에 들어왔다.

밖에서의 나를 모르는 동생이 같은 공간에 들어온 것이다.


축구부 선생님은 아주 무서운 분이셨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시합에서 지면 선배들이 한 명씩 맞기도 했다. 그래서 시합이 있을 때면 모두가 진지했다. 형편없는 경기를 하면 선생님께 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합에 나갈 멤버는 보통 당일 아침에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서 정했는데, 선배들이 은퇴하고 나서는 드디어 우리들의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


제발 내일은 내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제발 내일은 비가 와서 시합이 취소되기를.


시합 전날이면 항상 그렇게 빌었다.


하지만 대부분 내 이름은 불렸다.


등번호 8번.

왼쪽 미드필더.


팀이 지면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니 이기기 위해선 실수하면 안 된다.


그런데 나는 항상, 내 실수로 팀이 지는 상상을 했다.

모두 앞에서 선생님께 혼나는 상상을 했다.

팀원들이 “쟤 때문에 졌어”라고 뒷말하는 걸 상상했다.

경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는 걸 상상했다.


그래서 경기 중에는 공을 받는 게 무서워졌다.


제발 내 쪽으로 공이 오지 않기를.


시계를 보며 항상 생각했다.

15분만 더, 10분만 더…


하지만 그럴 때면 느닷없이 공이 내게로 온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된 나는 긴장한 나머지, 상상도 못 한 실수를 하곤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내 동생이 보고 있다.

나를 대장처럼 따르던 내 동생이.

그 상황이 그 당시 나에겐 너무 괴로웠다.


이제 더 이상,

나는 동생에게 멋진 대장이 아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동생과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눈을 마주치는 것도 무서웠다.


그래서 그동안 동생들과 함께 쓰던 2층 방을 나와, 1층 할머니 방 옆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혼자 틀어박혔다.

새로운 나만의 공간으로.


이제 축구 따위는 정말 싫었다.


형으로서의 자신감을 잃은 나는, 모든 게 싫어졌다.

그리고 집 안에서도 점점 말이 없어졌다.


그때의 나는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꼈다.

꿈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나의 중학교 시절이었다.


또 다른 나,

대장이었던 내가 사라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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