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언어, 두 문화 속에서 함께 자란 이야기-
일본인 아빠(나)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올해 10살이 되었다. 이제 스무 살까지 딱 절반을 지난 셈이다. 남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소심한 나를 시험하듯이, 지금까지 여러 벽에 부딪히며 나름대로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그 과정 속에서 내가 깨달은, 아들과 마주하는 나만의 방식을 10년의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아들은 나를 ‘아빠’라고 부르고, 아내를 ‘엄마’라고 부른다. 나는 아들에게 일본어로, 아내는 한국어로 말을 건다. 그 결과, 아들은 자연스럽게 일본어와 한국어 두 언어를 함께 익히며 자라왔다.
하지만 나는 아들이 사람들 앞에서 한국어를 말하는 것이 늘 두려웠다.
아들이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아들은 일본에 살면서도 한국어의 세계에 속해 있었다. 주말이면 우리 가족 셋이 함께 공원에 가거나,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쇼핑몰에 가곤 했다. 그런데 그런 외출이 나를 늘 불안하게 만들었다. 아내와 대화할 때면 전철 안이든 식당이든 아들이 큰 소리의 한국어로 떠들기 때문이다. 그때는 2019년,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나는 항상 주변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아내에게 “밖에서는 일본어로 말해줘”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들도 ‘밖에서는 일본어를 써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아내와는 한국어로만 대화하기 때문이다. 한국어 공부를 위해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국어로 대화해 왔고, 지금도 아내 앞에서는 일본어가 나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 자신을 말할 때도 아내 앞에서는 ‘나’라고만 하지, ‘僕(보쿠)’이나 ‘俺(오레)’ 같은 말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우리 관계에서는 ‘나’가 가장 자연스럽고 다른 말들은 잘 맞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본에서 한국어를 쓰는 것이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밖에서 우리가 말할 때는 항상 주변을 살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한다.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우리 부부의 관계는 그렇게 한국어의 세계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아들과 엄마의 관계도 한국어의 세계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무리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식은땀이 나더라도 그들만의 세계를 지켜주는 것이 아빠로서의 내 역할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사람들 앞에서 한국어를 말하는 아들을 두려워했던 건, 정치적인 한일 관계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지나치게 민감한 나 자신의 문제일 테니까.
또 하나, 나와 아들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있다.
아들은 나를 닮아서인지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바람 소리에도 무서워하며 밖에서 놀지 못할 정도였다. 또래 아이들 무리에도 잘 섞이지 못하고 항상 부모 뒤에 숨어 있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아빠로서 자책하곤 했다. ‘나를 닮았구나’.
나는 어릴 적부터 소극적이고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였다. 낯을 많이 가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이렇게 되고 싶다’는 이상은 있어도, 한 발 물러서고 도전 자체를 포기하거나, 도전하더라도 잘 되지 않아 좌절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이 싫어져서 점점 더 자신감을 잃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다. 내 청춘은 그런 반복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를 바꾸고 싶어서 고등학생 때는 용기를 내어 학생회장에 도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대신, 그 성격을 나만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무엇보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들은 한일 혼혈이다. 괜한 걱정일 수도 있지만, 한일 관계에 따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마음이 강해져야 한다. 강해지기 위해선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감을 기르기 위해선,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키워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만난 것이 바로 태권도와 피아노였다.
아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태권도와 피아노를 시작했다. 혼자 묵묵히 연습하는 걸 좋아하는 아들의 성격과도 잘 맞았는지, 지금까지도 즐겁게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조금씩 자신감을 쌓아가며, 예전의 소심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활발한 소년으로 자랐다. 태권도 발차기로 판을 깨고, 사람들 앞에서 즐겁게 길거리 피아노를 연주한다.
아들이 학원에 다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태권도도, 피아노도 전혀 몰랐던 나와 아들 사이에는 조금씩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태권도의 기술도 모르고, 피아노는 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들을 응원하고, 공감하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년 봄부터 나도 같은 태권도 도장에 다니기 시작했고(내 인생 첫 학원!), 아들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때로는 서툰 기타를 들고 아들과 함께 연주하기도 한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테니까.
몇 년만 지나도 아들은 사춘기를 맞이하고,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을지도 모른다. 그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 지금 가능한 한 많은 추억을 함께 만들고 싶다. 그리고 아들이 자신의 인생을 자신 있게 걸어갈 수 있도록, 어떤 상황에서도 응원하고, 공감하고, 함께 달려가고 싶다.
이것이 지난 10년 동안 내가 찾아낸, 나만의 아들과의 마주하는 방식이다.
https://youtu.be/dbzVWL4s3Ek?si=KTJ8gJQDuS-IQA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