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넘어, 국경을 넘어-
일본인인 나에게 한국 사람들과의 교류는 언제나 긴장이 따른다.
그 대부분은 낯을 많이 가리는 내 성격 때문이지만, 양국 간의 역사적 배경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상대가 연세가 많은 분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어쩌면 내 한마디가, 혹은 내 존재 자체가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눅 들고 말이 더욱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거기서 관계가 멈춰버리고 그 이상의 관계가 발전하지 않는다. 그게 아내의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하지만,
한 걸음 더 할아버지께 다가가 보고자, 이번 여름에 펜을 들었다.
아내의 95세 외할아버지께서 일본행 비행기를 타고 우리 집에 오셨다.
할아버지께는 두 번째 일본 방문이었지만 도쿄는 처음이었다.
2024년 1월. 내가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사이를 이용해, 할아버님과 장모님, 이모님, 그리고 아내의 사촌 동생, 이렇게 넷이 함께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한국에서 도쿄까지 오셨다.
일본의 좁은 아파트에서, 나의 가족(아내와 아들)과 한국에서 온 네 분이 약 일주일간 함께 생활하게 된다. 할아버지께서 불편하지 않도록, 다른 친척들은 거실에서 함께 잠을 자고, 할아버지께는 내 방을 편하게 쓰시도록 했다.
출장 중에는 아내가 사진을 많이 보내주었다. 도쿄타워, 센소지, 쿠사츠 온천까지. 할아버지는 95세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허리는 곧으시고, 베레모가 아주 잘 어울리셨다. 관광버스를 타고 도쿄의 명소를 둘러보고, Z세대와 함께 하라주쿠의 다케시타 거리에서 라면도 드셨다. 온천에서는 아홉 살인 내 아들이 안내를 맡아, 할아버지와 단둘이 함께 온천을 즐기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었을 때, 과연 할아버지는 95세가 되어, 일본과 한국의 피를 함께 가진 증손자와 단둘이 일본의 온천에 들어가는 여생을 상상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10대는 격동의 시기였을 것이다. 16세에 광복절을 맞이하고, 곧 고향인 제주도에서 4·3 사건이 발발했다. 그 후 바로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해병대이셨는데, 인천상륙작전 당시 참전 용사로서 지금도 각종 기념행사에 초대받고 계신다.
출장을 마치고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할아버지 일행이 머물렀던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머무르셨다. 거실에서 건배하는 사진이나 현관 앞에서 찍은 마지막 단체 사진까지 아내가 보내주었으니까.
단 하나, 내 방안의 무언가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출장 짐을 정리한 뒤, 조용히 방에 누웠다. 그리고 새하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분명 할아버지도 이렇게 천장을 바라보셨을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할아버지와 인사 외에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일본인인 나를 혹시 피하고 계신 건 아닐까, 괜히 혼자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방에 할아버지께서 일주일이나 머무르셨다는 사실에, 나는 이제 할아버지께 받아들여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강한 인연으로 이어진 느낌이랄까.
할아버지와 나는 혈연관계는 없다. 하지만 돌고 돌아 이어진 인연.
그 인연을 통해 내 인생도 이어져 있다. 할아버지께서 걸어온 삶과. 그리고 그 삶의 연결은 내 아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나보다 더 특별한 인연으로 할아버지와 이어져 있는 아들에게. 그 인연이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 가는 것이, 어쩌면 내 역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이 방을 아들에게 물려주기로 결심했다.
올여름엔 제주도에 가서 할아버지 댁을 방문할 예정이다. 아들과 함께. 올해 96세가 되신 할아버지께, 이번 일본 방문은 어떠셨는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싶다.
(2025년 8월 11일,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이 글은 원래 일본어로 쓴 짧은 에세이였지만, 할아버지께 읽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 브런치용으로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 가족 셋이 함께 직접 할아버지 댁을 다녀왔지만...
결국 너무 긴장돼서 제대로 말 못 했습니다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