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지 20년째, 한국인 아내에게 전하는 깜짝 선물

-이상주의자인 나와 현실주의자인 그녀의 이야기-

by 아키토 terrace

내가 한국인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제주대학교 유학 중에 수강했던 ‘영어 리스닝’ 수업이었다. 유난히 소심한 일본인 유학생이었던 나는 늘 강의실 뒤쪽에 숨듯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분위기를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여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갈색 머리에 약간 화려한 패션, 뭔가 세 보이는 성격일 것 같은 느낌. 그게 바로 그녀였다.


여기서 우리 둘의 연애 이야기를 자세히 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해 가을부터 사귀기 시작했고 (딱 20년 전이다), 약 8년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했다. 올해로 한일부부 12년 차를 맞았다.


돌이켜보면 지난 20년 동안 싸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섬세하고 갈등을 극도로 피하려는 나의 성격도 영향을 줬겠지만, 실제로는 아내의 무한한 포용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MBTI검사를 하면 나는 항상 INFJ가 나오고, 아내는 원래 외향적인 ESFJ였는데, 나의 내향적인 성향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 지금은 ISFJ라고 한다. 이상주의자인 나와 현실주의자인 그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상을 자주 말하는 나를 그녀가 현실로 끌어당긴다. 그렇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아내에게 지난 20년간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깜짝 이벤트를 하나 떠올렸다――。




【장거리 연애가 만들어준 습관】

우리의 연애 기간은 내내 장거리였다. 나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서울에서 일하게 되었고, 같은 시기에 그녀는 오키나와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내가 서울에서 귀국 후,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JET 프로그램을 통해 지방의 현청에서 일하게 되었고, 같은 일본에 있으면서도 계속 떨어져 지냈다. 그렇게 약 8년간의 장거리 연애가 이어졌다.


가끔밖에 만날 수 없는 장거리였기에, 기념일을 소중히 여기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어쩌면 그건 단순히 한국적인 문화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연애 초반, 나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기념일에 멋진 선물을 살 여유는 전혀 없었다.


고심 끝에, 100일 기념일에는 우리 둘의 만남을 소설로 써서 선물했고, 첫 생일에는 그녀의 초상화를 유화로 그려서 선물했다. 이렇게 말하면 좀 멋 부린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정말 그 정도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그녀도 나의 첫 생일에, 츠지 히토나리(辻仁成)와 공지영 작가의 콜라보 소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의 한국어판을 선물해 줬고, 나는 답례로 같은 소설의 일본어판을 선물했다. 섬세하고 소극적인 ‘준고’와 솔직하고 성격이 강한 ‘홍’의 모습을 보며 “왠지 우리 같지 않아?”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생긴 기념일을 소중히 여기는 습관은 결혼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날은 특별한 기념일이고, 그런 날에는 샴페인을 따기도 한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까지는 이제 하지 않지만.


하지만 올해는 우리가 만난 지 20년이 되는 특별한 해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녀가 나와 사귀게 되었을 때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그녀는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외동딸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사귀기 직전, 그녀는 다음 해 일본 교환유학 시험에 합격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J-POP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를 해왔지만, 아직 한 번도 일본에 가본 적이 없었다는 그녀. 그런 그녀가 얻어낸 일본 유학. 전화로 합격 소식을 전해준 그녀를 축하해 주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기쁘지만 슬퍼요.”

“왜?”

“엄마가 걱정하실 거니까.”


또 어느 날은 눈물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그 수년 뒤, 그녀는 일본인인 나와 결혼하게 되는 바람 1년간의 유학은커녕 일본에서 계속 살게 되어 버렸다. 엄마를 남겨두고.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 일본에서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그녀는, 반항기인 열 살 아들과의 전쟁의 날들에 지쳐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는 그녀에게 외국이다. 오래된 친구도, 친척도 없다. 물론 엄마도. 유튜브 육아 영상이나 한국에서 사 온 육아책을 의지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든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20년째, 나의 깜짝 선물】

주일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한일교류 작문 공모전’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한국어 수필(2018년)과 일본어 수필(2019년)로 가작을 수상한 적이 있다. 이미 두 번이나 도전했기에 더 이상 응모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이고, 지금까지 한국과 인연을 맺어온 한 사람으로서 나만의 어떤 결실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작년 초, 아내의 95세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도쿄를 방문해 우리 집에서 홈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다(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서 오셨다!). 그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뭔가 써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다시 들으며 일본어로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있다.

이 뜻깊은 해에 꼭 남기고 싶은 또 하나의 이야기.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수필을 쓰는 동시에, 아내 몰래 또 하나의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 아내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어 수필이다.


【결과는…】

9월 5일, 홈페이지에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었다. 과거 두 번은 가작이었기에, 올해의 목표는 그 이상이었다. 특히 아내 몰래 응모한 한국어 수필에서는 좋은 소식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일본어 수필, 한국어 수필 모두 가작. 더블 수상이었다.


그렇게 한여름의 도전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아내는 기뻐해주었다. 자신이 등장하는 수필을 응모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듯, “어떤 내용이야?”라고 궁금해했지만, 일부러 내용을 비밀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10월 5일(일), 한국문화원에 기간 한정으로 전시된 수상작을 가족과 함께 보러 갔다. 처음으로 아내에게 공개하는, 나의 깜짝 선물.


점심은 근처의 한국 음식점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드디어 문화원으로. 그런데 입구가 이상하게 어두운 느낌… 앞장서던 아내가 자동문 앞에서 멈춰 섰다.


문이… 안 열린다.


설마… 급히 한국문화원 홈페이지에서 ‘입상작 전시회’ 안내 페이지를 열어봤다.


“※휴관일: 일요일, 한국의 국경일(10/3, 9), 공휴일(10/13)”


그렇다. 이날은 일요일. 휴관일이었다.

열리지 않는 자동문의 유리에는, 살짝 멋을 낸 우리 세 가족의 모습이 허무하게 비쳐 있었다.


이런 이런. 정작 중요한 순간에 늘 실수하는 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믿음직스럽지 못한 나.

멋진 선물을 살 여유도 없고, 깜짝 이벤트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나.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며 앞으로 일정을 확인해 봤다. 전시회 종료 전까지 갈 수 있는 날이 없다. 유일하게 일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날은 집의 가스 점검 시간과 겹쳐 있었다. 내가 막막해하고 있을 때, 아내가 바로 가스 점검 일정을 업체와 조정해 주었다. 척척. 현실적으로.


항상 이상만 앞서는 서툰 나와, 현실주의자이자 든든한 아내.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간다.

20년 전부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이 실패한 깜짝 선물을, 우리 20년의 증거로서 그녀에게 건네고 싶다.


展示会.jpg 10월 8일(수), 다시 한국문화원을 방문했다(작품에 몰입한 아내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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