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인 내가 한국어로 글을 쓰면 아마 문법적으로 틀리거나 읽기 불편한 문장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브런치에 도전해보려 한다.
【브런치에 도전하게 된 계기】
계기가 된 건 올여름의 제주 방문이었다. 올해는 내가 제주도에 유학을 간 지 꼭 20년이 되는 해로, 내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아들과 함께 우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기도 하고, 제주 출신인 아내의 친척과 친구들을 오랜만에 다시 만나며 짧지만 알찬 5박 6일을 보냈다.
그 가운데 느낀 것은 한국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답답함이었다. 질문을 받으면 의사 표현은 할 수 있지만, 먼저 말을 꺼내거나 내 이야기를 풀어내지는 못했다. 특히 아내와 함께 있을 때는 자연스럽게 아내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물론 이건 단순히 언어 실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원래 내가 낯을 많이 가리고 말수가 적은 성격이라 일본어로도 말을 잘 못한다. 그래서 지난달부터 일본에서 <note>라는 블로그를 새로 시작하기도 했다.
2005년 유학 시절에는 한국에서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이었다. 미니홈피에는 나만의 방이 있었고 좋아하는 BGM을 설정하거나 아이템으로 배경을 꾸미는 등 나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었다. 또 일촌 신청을 해서 친구가 되면 서로의 미니홈피를 방문해 사진 글에 댓글을 남기거나 방명록에 글을 쓸 수도 있었다.
낯가림이 심했던 내가 수많은 한국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도(아내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도ㅎㅎ) 모두 싸이월드 덕분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싸이월드는 결국 서비스를 종료했고, 그때 이어졌던 많은 인연은 자연스레 흩어지고 말았다.
그 후로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사회인이 되었다. 한국과의 인연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KBS, 삼성SDI, 현대자동차 등 한국 기업의 일본 법인에서 10년 넘게 많은 한국 사람들과 함께 일해왔고, 집에서는 한일 부부다. 내 주변엔 늘 한국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국을 잘 이해한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어를 배웠던 시인 이바라키 노리코(茨木のり子)는 한국어를 공부한 동기를 “이웃 나라의 말이니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독학으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던 나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다. 그 시작에서 출발해 홈스테이와 교환학생 경험을 거치면서 수많은 ‘연결’을 만들 수 있었고, 그 ‘연결’ 속에서 내 인생이 형성되었기에 ‘한일의 가교가 되겠다’는 목표는 더욱 단단해졌다.
물론 한국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한일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일도 많았다. 상처받은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HSP 기질의 예민한 성격 탓에 깊게 아플 때도 있었다) 그래도 이대로 어중간한 상태로 ‘한일의 가교 역할’을 끝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유학을 마친 지 20년이 되는 이 시점에 브런치 세계에 뛰어들기로 했다. 원점 회귀라고 할까. 유학 시절 싸이월드를 통해 많은 한국 사람들과 연결됐던 것처럼, 다시 한번 연결되고 싶다. 그것이 곧 한국에 대한 이해로 이어질 거라 믿는다. 낯선 세계에서 혼자 부딪히며, 때로는 또 상처를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흔을 넘은 지금, 일부러라도 도전해 보고 싶다. 변함없이 한일의 가교로서 계속 도전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20년 전의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이렇게 브런치 작가가 된 나는, 9월 11일 첫 글을 발행하며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였다. 솔직히 ‘외국인이 쓴 글 같은 건 아무도 읽어주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 글에 반응을 보여주는 작가들이 있었다. 나도 그들이 쓴 시와 에세이를 읽어 보았다. 브런치는 글을 복사할 수 없어서 번역기를 쓸 수 없다. 그래서 사전을 옆에 두고 스스로 읽어 나간다. 천천히. 그 글들엔 자기 피와 살을 깎아내듯 절실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 혹은 글을 쓰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묘한 동지애가 싹트는 걸 느꼈다. 이 한 걸음 더 나아간 ‘연결’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브런치라면 분명 많은 한국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인으로서가 아니라,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다른 작가들처럼, 글을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을 조금씩 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