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유학생의 도전기

-걸어서 제주도 한 바퀴-

by 아키토 terrace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

아직 학생이였던 나는 홀로 제주도를 걸어서 한 바퀴를 돌았다.

해안을 따라 이어진 일주도로, 약 182km.

올레길을 걷듯 풍경을 즐기려던 것이 아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그 길을 끝까지

완주하는 일이었다.

사실 나는 그 도전에 이미 한 번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학의 목표〉

그 무렵 나는 제주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었다.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편의점 심야 아르바이트로 유학 자금을 마련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두 개의 장학대출을 동시에 받으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유학으로 인해 졸업은 1년이 늦어지고, 취업도 그만큼 미뤄졌다. 그러니 나는 눈에 띄는 성과를 반드시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


유학 기간 중 한국어능력시험(TOPIK) 최상급인 6급에 합격.

그것이 내 목표였다.


하지만 나는 한국어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고, 대학에서 제2외국어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간단한 일상 대화가 겨우 가능한 수준이다. 그런 상태로 유학을 왔으니, 당연히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전공 수업을 들어도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한국어능력시험 모의고사에서는 6급은커녕 바로 아래 단계인 5급에도 한참 못 미쳤다.


그런 상황에서 맞이한 여름방학. 나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 나가 한국어 공부를 했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점심은 혼자 빵으로 간단히 해결하곤 했다.


마음이 조급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유학이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도서관 창밖으로는 멀리 제주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문득 가방에서 꺼낸 제주도 지도를 펼쳐 보았다. 한라산을 중심으로 타원형을 그린 섬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를 한번 걸어볼까?


한 걸음을 내딛는다면 무언가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 스쳤다.

그래, 제주도를 걸어서 한 바퀴 돌아보자.


제주도 지도


〈첫 번째 도전〉

잿빛 구름 아래, 기숙사를 나와 출발점인 제주시내로 향했다. 바닷가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배를 채운 뒤, 그대로 일주도로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접이식 우산도 준비해왔다. 그러나 빗줄기는 점점 거세졌다. 제주도는 바람이 세다. 퍼붓는 비는 옆에서부터 몰아쳐 온몸을 흠뻑 적셔왔고, 금세 신발 속까지 파고들었다. 잠시 골목길로 몸을 피해 보았지만 접이식 우산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배낭 속까지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곧바로 후회가 밀려왔다. 굳이 이런 날 시작하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빗줄기는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note①.jpg 폭우로 골목에서 잠시


외로운 길이었다. 걷는 사람은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슷한 풍경. 납빛 하늘이 시야를 짓눌렀다. 길가에는 ‘4·3사건 희생자 위령탑’이라고 새겨진 비석 하나가 쓸쓸히 서 있었다. 1948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남북 분단 정책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봉기했고, 진압에 나선 본토군과의 충돌은 격화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나는 비석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거센 바람이 몰아쳤고 주위는 그저 적막했다.


note②.jpg 4・3사건 희생자 위령탑


간간이 차들이 지나갔다. 스쳐 지나가는 차들도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인가조차 보이지 않았다. 제주의 동쪽으로 돌기 시작해 그 날의 목적지는 성산이었다. 성산일출봉이라는 관광지가 있으니 숙박시설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숙소 예약은 하지 않았다. 발길 닿는 곳에서 묵을 생각이었니까.


어느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다섯 시. 주위를 둘러보니 농가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지도를 확인하니 목적지까지는 아직 15km 이상 남아 있었다. 이 여정을 가볍게 생각했던 나는 비상식량도 준비하지 않았다. 점심조차 먹지 못했다. 목은 바싹 말라왔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 구멍 난 신발로 들어온 자갈이 발바닥을 괴롭혔다. 오늘은 더이상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묵을 곳도 없었다. 그때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기력이 꺾였을 무렵 휴대전화가 울렸다. 홈스테이에서 신세를 졌던 어머니였다.


여름방학을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제주도를 걸어서 일주중이라고 하자, 이 비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며 혀를 내두르셨다. 그러더니 마침 내가 있는 곳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친척이 산다며 곧바로 연락해 묵을 수 있게 해주셨다.


홈스테이 어머니의 친척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불쑥 찾아온 일본인 학생을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할머니는 반찬이 별로 없다하셨지만, 저녁상에는 제주 전통 음식으로 가득했다. 허기를 채우느라 정신없이 먹고 있을 때 할머니가 또렷한 일본어로 물었다.
“ごはんはおいしいですか?(밥은 맛있습니까?)”

놀란 내가 ‘일본어 잘하시네요’ 하고 대답하자, 옆에 있던 할아버지도 능숙한 일본어로 말했다.
“この人のごはんはおいしいですねえ(이 사람 밥은 맛있지요).”

그러자 할머니가 웃으며 할아버지를 쿡 찔렀다.
“옛날엔 일본말을 잘했는데, 이제는 다 잊어버렸지.”

그렇게 두 분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난데없이 나타난 낯선 일본인 학생을 이렇게 받아주신 것에 감사했다.


note③.jpg 하룻밤 신세졌던 방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야. 뭐, 그땐 우리는 아마 세상에 없을 테지만.”
다음 날 아침, 출발을 앞두고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출발 직전에는 잠시 하늘이 맑아졌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악수를 나눈 뒤, 나는 다시 외로운 길로 돌아섰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겼다. 오른쪽 발목이 삔 것처럼 붓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걸어 성산에 도착했다. 원래 첫 날의 목적지로 삼았던 곳이다. 이렇게 해서 겨우 섬의 4분의 1을 걸은 셈이었다. 이렇게나 걸었는데도 고작 4분의 1이라니. 원래 축구 소년이었기에 두 다리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불안감이 밀려왔다. 한 바퀴를 걷는게 정말 가능할까. 나의 불안을 비추듯 다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퉁퉁 부은 오른발을 절뚝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note④.jpg 제주도 남부지역을 통과


오후 여섯 시, 마침내 한계가 찾아왔다. 처음 출발한 지점에서 약 60km를 걸어 표선에 닿았지만 절뚝이며 겨우 발을 들여놓았을 뿐, 더는 나아갈 수 없었다. 멈춰 서자 오른쪽 발목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몰려왔다. 계속 걸으면서 조금씩 감각이 마비되었던 모양이었다. 여기서 다쳐서는 안 된다. 여기까지 걸어온 것에 만족하자. 빗속에서 도전한 것만으로도 의미는 있었다. 마침 이 마을에서 학교로 향하는 버스가 보였고, 지쳐버린 몸을 버스에 맡기고 돌아가기로 했다.


제주도 한 바퀴 도전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note⑤.jpg 돌아오는 버스의 차창에서


〈갈등〉

한국어능력시험까지는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제주 한 바퀴 도전에 실패한 뒤에도 도서관에 틀어박혀 단어장을 들여다봤지만 목표인 6급은커녕 그 아래 단계인 5급 모의시험조차 여전히 넘기지 못하고 있었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목표를 다시 세우고 싶었다. 작전을 바꾸자. 지금이라도 현실적인 목표로 수정해 다시 전략을 짜자. 그렇게 생각한 순간, 어디선가 느껴 본 장면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 바로 제주 일주를 포기했던 그 순간과 겹쳐졌다.

그때 만약 끝까지 걸었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그 때의 포기가 지금까지의 내 인생과, 앞으로의 인생을 암시하는 것 같아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았다. 신발 안에 들어온 자갈처럼. 그렇게 또다시 창 밖의 제주 바다를 바라보다가 결심은 단단해졌다. 이번에는 반드시 제주 한 바퀴를 끝까지 해야겠다. 그래야 한국어능력시험에서도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시험에서 결과를 낼 수 있다면, 그 다음 기다리고 있는 취업 시험에서도 길이 열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걷기로 했다.


〈두 번째 도전〉

그 실패로부터 약 3주가 지난 2005년 8월 9일. 나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반대로 서쪽 방향으로 마음을 담아 첫 발을 내디뎠다. 지난 실패를 교훈 삼아 아침·점심·저녁마다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을 했고, 날씨 확인도 빠뜨리지 않았다. 경쟁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철저히 고독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나는 혼자, 묵묵히 걸었다. 빗속에서 시작했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었다. 무작정이었다. 절실했다.


――그 다섯 날 동안,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만났던가. 냉면만 시켰는데도 갈비까지 구워주었던 대정의 아저씨. 열이 난 내 몸을 걱정하며 약을 챙겨주었던 남원의 민박집 아주머니. 더위에 지지 말라며 빙수를 주시던 세화의 빵집 주인.

그리고 제주도의 자연. 생명력 넘치는 초록빛 대지와 짙푸른 바다, 고요한 평원에서 풀을 뜯는 말들.

나는 그저 혼자, 묵묵히 걸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래를 불렀다.


表紙.jpg 2일차 : 제주조각공원 인근에서
note⑨.JPG 3일차: 제주 월드컵경기장 앞
2005-08-14 014.JPG 5일차: 표선 인근 해안가에서


5일째는 아침 7시 반에 표선을 출발했다. 남은 길은 약 60km. 지난 4일 동안 120km를 걸으며 몸은 이미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8월의 뜨거운 태양이 온몸을 자극했다. 이 날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3시였다.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마지막 25km를 걸어 골인을 목표로 하는 계획이었다.

아니… 아직 더 갈 수 있잖아.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나는 다시 미친 듯이 걸음을 옮겼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한국에 와서 어느새 5개월이 지났다. 유학 생활의 거의 절반이 지나간 셈이었다. 일본에서 오래도록 꿈꾸던 유학. 우리 집엔 그런 돈이 없다며 가족은 반대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밤중,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며 졸린 눈을 비비고는 자주 별을 올려다보았다. 내 심장이 뛰는 저 너머에는 언제나 제주도가 있었다.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했던 2002년, 대학에 입학한 나는 왜 일본 바로 옆의 한반도는 두 개로 나뉘게 된걸까라는 의문과 함께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여름방학에는 제주도에서 3주간 홈스테이를 하며 이 섬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내게 있어 처음이었던 해외, 새로운 세계였다.


그로부터 3년이 흘러, 나는 지금 그 제주도를 무아지경으로 걷고 있다. 제주의 땅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고 있다. 꿈 속을 걷는 듯했다. 그래,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일본, 한반도, 중국… 동북아시아가 만들어낸 다양한 문화. 그 문화들을 하나로 잇는 다리가 이 제주도에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그 다리는 ‘동북아시아 평화공원’ 같은 이름으로,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 라이브하우스 등을 갖추는거야. 국경을 넘어 수많은 예술가와 작품이 모여, 각 문화가 빚어내는 유일무이한 서사와 생명의 외침을 펼치고 나누는 곳. 그런 거점이, 동북아시아의 십자로에 위치한 이 섬, 오랜 시간 고통받아 온 이 섬에 태어난다면… 얼마나 값질까.


앞으로 20km가 남았다.

내 존재는 작고, 인생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하지만 단 하나만 있어도 좋아. 이 인생의 끝에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이것만은 해냈다’ 라고 말할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그 한 걸음이 바로 지금, 내가 내딛는 이 발걸음이다.


앞으로 15km가 남았다.

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이 섬은 겪어온 고통만큼 수많은 가능성과 사명을 품고 있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민을 안은 채, 지금 여기까지 걸어왔다. 그러니 지금 이 제주 땅 앞에서 모든 것을 털어놓자.


저물어가는 해의 잔광이 내 길을 힘차게 비추었을 때, 그동안의 내 인생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앞으로의 내 사명과 이 섬의 사명이 교차하며,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예감하게 하듯 내 감정은 끝없이 고조되었다.


밤 11시. 나는 다시 출발점에 돌아왔다. 걸어서 제주도를 한 바퀴를 완주한 것이다.




〈그 후〉

2025년 여름, 그때로부터 딱 20년이 지났다.

그 여름, 걸어서 제주도 한 바퀴에 성공한 나는 한 달 후 목표였던 한국어능력시험 6급에 합격했고, 다음 목표였던 한일 간의 연결다리가 되는 직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하고, 제주도에서 태어난 아들을 키우며 지금은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금도 그 한 바퀴 도전은 내 인생과 여전히 이어져 있으며,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앞으로도 분명 그러할 것이다. 어쩌면 그 한 바퀴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많은 꿈들이 남아 있으니까.


note⑥.jpg 마지막 날에 본 일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