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아들과 나눈 여름의 기록-
올해 여름의 제주도 방문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제주 출신인 아내를 따라 매년 일본에서 제주도를 방문하고 있었지만 올해는 내가 제주도에 유학을 간지 꼭 20년이 되는 해였으니까.
그렇게 특별한 해인만큼,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유학시절에 걸어서 제주도 한 바퀴 돈 것처럼.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도 이제 40대 회사원. 며칠 뒤에 귀국해야 하고, 귀국하면 바로 회사로 출근해야 한다. 혹시 무리하다가 아프면 아주 큰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제주도 지도를 바라보다가, 동쪽 끝에 있는 작은 섬이 눈에 들어왔다.
단 한 번 찾았던 작은 섬, 우도.
그래, 이 섬이라면 지금의 나도 한 바퀴 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도는 제주도에서 배로 약 15분 거리에 있다. 해안선을 따라 약 17km. 하지만 평소에 운동을 잘 안 하는 내가 한여름의 강렬한 햇빛을 맞으며 그 거리를 걷는 건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여러 블로그를 검색하니까 전동 자전거라면 약 두 시간으로 충분히 한 바퀴 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섬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아침 7시 반에 전동 자전거로 출발하자. 물론 혼자만의 여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해안선을 따라 두 사람이 함께 탄 자전거가 지나갈 때마다 나는 아들을 살짝 꼬드겨 보았다. “같이 가면 추억이 될 거야.” 아들은 그저 “음…” 하고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맞이한 출발 아침. 날씨는 맑고, 기온은 28도. 여정을 앞두고 숙소 방에서 조용히 준비 운동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벌떡 일어났다.
“역시 같이 갈래.”
그렇게 아빠와 아들이 함께 우도 자전거 여정이 시작됐다.
처음 타보는 전동 자전거. 타이어는 두껍고, 5단계로 조절 가능한 배터리가 달려 있다. 뒤쪽의 작은 의자에 아들을 살짝 태우고 출발했다.
전날 오후에 섬에 도착했을 때는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길에는 자전거와 스쿠터가 가득했다. 하지만 이른 아침 시간은 조용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새소리와 파도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전동 자전거 이동은 생각보다 훨씬 쾌적했고, 중간중간 사진도 많이 찍었다.
“아빠, 꿈이 이뤄져서 좋겠다.”
자전거를 멈추고 바다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있을 때, 아들이 말했다.
“제주도 한 바퀴 돌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한 바퀴 도는 게 꿈이었잖아.”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이런 때야말로 평소엔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눠야지. 사진보다 아들이랑 대화가 먼저야. 나는 얼른 아들에게 느닷없이 물었다.
“넌 꿈 있어?”
“음… 그냥 집에 있고 싶어.”
“그냥 집에만 있고 싶어? 집에서 뭐 하고 싶은데?”
“음…”
더 어렸을 땐, 커서 책이나 만화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태권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거나, 그런 꿈을 이야기해 주던 아들. 이제는 그런 꿈이 사라진 걸까. 아니면, 아빠에게 꿈을 말하는 게 부끄러운 나이가 된 걸까. 어쨌든, 꿈 얘기는 거기서 딱 끊겨 버렸다.
아들이 유치원생이던 시절,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졌다. 집에서 지루해하던 아들에게 나는 약속했다.
“초등학생이 되면, 1년에 한 번은 아빠랑 단둘이 여행 가자.”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도쿄 근교로 함께 여행한 이후, 그 약속을 지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소중했다.
한일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아내와 나의 반씩 닮은 아들. 한국과 일본의 반을 함께 가진 아들. 또 한 번, 느닷없이 질문을 던져봤다.
“한국이랑 일본 중에 어디가 더 좋아?”
“둘 다 좋아. 못 골라.”
출발 지점에서 북쪽으로 올라가 해안선을 따라 동쪽 방향으로 시작했던 여정. 이제 절반쯤 왔을까 싶은 시점에, 해안선에서 벗어나 밭으로 둘러싸인 언덕길을 올랐다. 이번 우도 방문에 앞서 KBS 인간극장의 다큐멘터리 ‘우도의 연인’을 시청했는데, 그 부부가 운영하시는 식당이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자 다시 출발해 볼까—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전동 자전거 배터리에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전원 버튼을 몇 번이고 눌러봐도 반응이 없다. 고장 난 건가? 아직 절반 이상 남은 길에, 게다가 후반은 산길이다. 그 험한 길을 열 살짜리 아들을 뒤에 태우고 페달을 밟고 가야 한다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도 여정의 추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을 벗어나버려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밭길이라 스마트폰 지도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리에 힘을 주고 페달을 밟으니,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오르막길에서는 아들을 내려 함께 걸었다.
쾌적했던 아들과의 여정이 어느새 고행으로 바뀌어 버렸다. 이대로라면 숙소 체크아웃 시간을 넘길 것 같아 방에서 대기 중인 아내에게 늦을 것 같다고 카톡으로 연락을 보냈다.
그러자 곧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내 연락을 받고 급히 자전거 가게로 달려간 아내가 직원과 함께 화면에 나타났다.
가게 직원이 화면 너머로 배터리를 복구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지만, 내가 외국인이라 잘 통하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금방 갈 테니까 거기서 기다려요.”라고 말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9시를 넘고 있었다. 햇볕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거의 밭 한가운데라 그늘 하나 없고,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똑같이 땀범벅이 된 채, 조금 지쳐 보이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 여정에 아들을 끌어들인 걸 후회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안 데려왔을 텐데……
잠시 후, 자전거 가게 직원이 차를 타고 도착했고, 배터리는 복구되었다. 다시 아들을 태우고 배터리의 힘을 빌려 속도를 올렸다. 꽤 시간을 허비한 터라 마음이 급했다. “너무 빨라!” 뒤에서 아들이 소리쳤지만, 나는 속도를 더 올렸다. 그런데 섬 남쪽의 우도봉 근처에 이르자, 트레킹 코스로 들어가 버려서 피하려다 또 밭길로 빠졌다.
이럴 수가… 길을 잃었다. 다시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우도봉 입구까지 돌아갔다. 근처 카페에서 유우리(優里)의 ‘베텔기우스’가 크게 들려왔다. 오랜만에 듣는 일본어 노래다.
“봐봐, 일본 노래 나오네.”
“그런 거보다 빨리 돌아가자니까.”
僕ら見つけあって 手繰りあって 同じ空
輝くのだって 二人だって 約束した
遙か遠く終わらないベテルギウス
우리는 서로 찾고, 끌어당기며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있어
빛나는 것도, 둘이 함께하자고 약속했잖아
아득히 멀리 끝나지 않는 베텔기우스
우리 둘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겨우 다시 제대로 된 길로 돌아왔지만, 이미 체력이 많이 소진되어 있었다. 계속 같은 자세로 자전거를 타는 바람에 허리가 아팠고 바지도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아들도 뒷자리에 달린 손잡이를 계속 잡고 있었던 탓에 손이 아프다고 했다. 어쨌든 빨리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그저 앞으로만 나아갔다.
열 살 아들에게는 이번 여정이 아빠와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앞으로 5년만 지나도 지금처럼 함께 뭔가를 하는 시간이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 앞에서는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입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았다. 그 답답함을 감추듯 자전거 속도를 더 올렸다.
생각해 보면 이번 제주도 방문은 그런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제대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건, 사람들 앞에서는 너무 긴장돼서 말을 잘 못 하는 내 타고난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상대가 내 아들이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아버지가 무서웠다.
불같이 화를 내시니까. 나는 그런 아버지와 거리를 두고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아들과는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고 싶었다. 근데 왜 이렇게 말이 안 나올까…
산호해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곧 도착이다.
그리고, 나와 아들의 짧은 여정이 끝나간다.
우도의 파란 바다의 일정한 리듬이 내 답답한 마음을 진정시킨다.
너는 변하지 않아도 돼. 그냥 그대로 있어 줘.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20년 전, 제주도 바다를 보면서 한 바퀴 돌았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제주도 바다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래, 나는 나답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분명 그 속에서 나만의 서사가 생겨날 것이고, 그 서사를 조금씩 남기고 싶어졌다. 그런 내 뒷모습을 아들은 조용히 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내 뒤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꼭 쥔 채 내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골이 보였다.
아내가 손을 흔들며 우리 둘을 촬영하고 있었다.
우리도 힘껏 손을 흔들어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