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웠던 기억과 미래 이야기 -
2년 동안 서울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간 후엔 다시 서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딛은 도시.
자취생활을 경험했던 유일한 도시.
일본에 돌아온 뒤에도 출장으로 몇 번 서울을 찾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나는 용무를 마치면 발걸음을 서둘렀다.
낯선 도시에서 외로움에 떨었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두려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 때문에 나에게 서울은 오랫동안 마음을 열지 못했던 도시인 것 같다.
2025년 11월.
그런 내가 다시 서울에 오게 되었다.
이번 목적은 한일 청소년 교류였다. 일본 대표로 선발된 고등학생들을 인솔해, 한국의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홈스테이를 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프로그램이다.
감상에 젖을 틈은 없다. 괜한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비행기 안에서는 프로그램 일정표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고등학생 참가자 두 명에게 한국은 처음이냐고 물으니, 둘 다 한국은 물론 해외도 처음이라고 했다. 첫 해외라니. 분명 평생 잊지 못할 시간이 될 테고,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창밖으로 고층 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19년 전 서울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의 감정이 되살아났다.
---2006년9월.
새벽 4시.
알람 소리에 벌떡 잠에서 깼다.
잠든 건 새벽 2시였다.
거의 잠을 못 자서 몸이 무거웠다.
네 개의 가방은 꽉 차 있다.
가까운 역까지는 아버지 차로,
공항까지는 어머니와 둘이 전철을 탔다.
8시 20분 하네다 출발 비행기이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탑승이 시작됐다.
약 2시간 반의 비행.
어느새 국경을 넘고 있었다.
이륙과 동시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곧 서울의 빌딩 숲이 눈앞에 펼쳐졌고,
압도적인 불안이 밀려왔다.
옆자리 두 명 외에도 처음 한국에 오는 고등학생들이 많았다. 입국 심사를 어색하게 통과하는 고등학생들을 수하물 찾는 곳까지 안내했다. 여기저기 눈에 들어오는 한글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울 것이다.
도착 게이트에서 한국 측 스태프와 무사히 합류해 서울 시내로 향했다.
6박 7일의 프로그램이 이제 시작된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 날씨는 내내 좋았다.
비는 한 번도 오지 않았고, 후반에는 코트 없이도 지낼 수 있을 정도였다.
프로그램 중반에 진행된 학교 방문과 홈스테이에서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몸짓과 표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졌다.
자신의 말로, 자신의 표정으로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느꼈다.
작별 인사 때는 눈물을 흘리는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이런 만남 외에도, 한국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고등학생들은 적극적이었고, 가는 곳마다 또래의 한국 학생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우리가 견학장소를 떠날 때, 어느새 친구가 된 한국 학생들이 배웅하러 온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한국 고등학생들도 적극적이었다.
경복궁 근처를 단체로 걷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한국 학생들이 멀리서 먼저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인사해주기도 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도 방문했다.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한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내가 서울에서 혼자 살았던 곳은 바로 이 박물관 근처였다.
그 시절의 나는 무척 외로웠다.
집도 있었고, 수입도 있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말도 쉴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내성적인 나는 대부분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고 나면, 그 외의 시간은 완전히 꺼져버렸다. 집에는 전임자에게 물려받은 기타와 CD 플레이어, 일본에서 가져온 책 더미와 노트북뿐.
그 시절 좋아했던 BUZZ와 M.C.the MAX의 CD를 들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와 쓰지 히토나리의 소설을 읽고, 기타를 치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고, 자기 전에는 한강을 따라 혼자 산책했다.
그런 나에게 유일한 위로는 근처 박물관에 가는 것이었다.
대학 시절 고고학 동아리에 있었고, 무엇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했던 나에게 그곳은 오아시스 같았다.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듯 과거로 타임슬립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17년 전으로 타임슬립했다.
박물관 견학을 마친 이 날의 마지막 일정은 남산 서울타워였다.
대표적인 관광 명소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서울에서 은둔 생활을 했던 것이다.
고등학생들과 함께 숨을 헐떡이며 산길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나 역시 서울의 야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이번 방한에서는 뜻밖의 반가운 재회도 있었다.
자세한 경위는 생략하지만, 내가 한국인 G씨와 재회한 곳은 광화문 근처 차도였다. 강의를 맡아주신 분을 배웅하러 갔을 때, G씨가 운전하시는 차가 나타난 것이다. 차는 곧 출발해야 했기에, 운전석에 앉은 G씨와 창밖에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2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동료로 일했지만, 벌써 17년 전 일이다.
잊혀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시간이었지만, G씨는 내 얼굴과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밤, G씨의 직장 동료로부터 메일이 왔다.
그 메일에는 G씨의 카카오톡 연락처가 적혀 있었고, 연락하고 싶다는 말이 덧붙어 있었다.
그리고 이틀 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짧은 틈을 이용해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아주 진한 시간이 되었다.
그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19년 전, 내가 서울에 도착한 날 열린 내 환영회.
G씨를 포함한 한국 아저씨 열 명 남짓과 함께 소주를 마셨다.
조금 무서운 인상이지만 정 많은 아저씨들.
내 업무 중 하나는
그분들에게 배차 업무를 맡기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몇 번은 업무로 조수석에 함께 탔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면서,
낯가림이 심했던 나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서울 시내를 달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익살스러운 기사님, 겸손한 기사님, 말 없는 기사님, 투덜대는 기사님……
2년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할 무렵,
강변에서 송별회도 열어주었다.
윗옷을 벗고 축구를 하며 소주를 마시고,
큰 냄비에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해준 여름날.
내성적이고 미숙했던 내가
2년간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던 건
그분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2008년 가을 이후, 17년 만의 재회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추억에 꽃을 피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년이면 정년이라고 하셨다.
함께 일했던 분들 중에는 이미 정년퇴직한 분도 계셨고,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분도 있다고 하셨다.
어딘가에서 나는 서울에 오면 언제든 그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
서울의 거리 풍경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17년 동안, 나는 한 번도 그분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마음만 먹었다면, 만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카카오톡 같은 것도 없었지만, 연락할 방법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서울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절의 외롭고 불안했던 감정이 다시 떠오를까 봐, 그 기억에 사로잡혀 우울해질까 봐, 나는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변했다.
1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서울과 연결되었다.
마지막 프로그램은 성과 발표회였다.
한국 측 주최 기관인 국립국제교육원 관계자분들 앞에서, 그룹별로 이번 교류 프로그램의 성과를 발표하는 시간이다.
한일의 차이점, 새롭게 알게 된 점, 교류 중의 에피소드, 그리고 앞으로의 행동 계획 등을 고등학생들이 발표했다.
일본 측 주최 대표로 나도 무대에 올라 인사를 했다.
여기는 서울.
내 앞에는 일본에서 온 약 100명의 고등학생들이 있다.
나는 사람들 앞에만 서면 긴장해서 말이 잘 안 나온다.
하지만 원고도, 메모도 보지 않고,
그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꺼냈다.
내가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
“한일 간의 가교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던, 그 시절의 마음을.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고등학생들은 내가 서울을 떠났던 17년 전, 그 무렵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밝은 표정, 17년 만의 재회. 그 모든 것을 통해 내 안에서 서울의 색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더 이상 그때의 외로운 감정은 이곳에 없었다.
내년, 2026년은 내가 서울로 떠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줄곧 피하고만 있었던 서울.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내년엔 그냥 마음 가는대로 서울에 한 번 가볼까? ”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서울의 고층 빌딩 숲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