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였다.
아니, 특별한 해로 만들어야만 했다.
올해는 내가 한국에 유학을 간 지 꼭 2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에 아들과 단둘이 우도를 자전거로 한 바퀴 돌았다.
그래서 만난 지 20년이 된 아내에 대한 마음과 한국의 할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에세이로 썼다.
그래서 아버지의 칠순을 맞아, 평소에 연락을 잘하지 않는 동생들과 함께 선물을 준비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태권도를 배우고, 함께 음악을 연주했다.
그래서 서울에 온 일본 고등학생들 앞에 서서 내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올해를 특별한 해로 만들기 위해 내가 가장 이루고 싶었던 목표는
바로 한국 문학 번역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것이었다.
내가 번역 공모전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소설 같은 건 전혀 읽지 않았지만 고등학생 시절 『레 미제라블』에 감동받은 것을 계기로 책을 통해 시대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 유학과 취업으로 한국에서 3년 동안 살았는데, 한국어로 『가시고기』를 끝까지 읽은 것이 자신감으로 이어져, 이순원 작가의 소설이나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 등 한국 소설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국의 서점을 자주 찾으면서 깨달은 건 한국에는 일본 소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나 『태엽 감는 새 연대기』 같은 책은 한국 서점에서 사서 읽었다. 물론 일본어 원서로 말이다.
반면 일본에 돌아오고 나서는 한국 소설이 현저히 적다는 걸 느꼈다. 그 당시, 츠지 히토나리와 공지영 작가가 함께 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라는 소설이 출간되었는데 너무도 드문 일이어서 한국인 여자친구(지금의 아내)와 함께 사서 읽었다.
그리고 취미의 일환으로 한국 소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처음 손을 댄 작품은 유학 시절 교재였던 이순원 작가의 『혜산 가는 길』이었다. 한국어의 세계가 내 손에서 일본어의 세계로 바뀌어 가는 그 과정을 즐기고 있을 때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 책 번역 콩쿠르’ 제1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2017년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일본어로 읽고 싶은 한국 책 번역 콩쿠르」(K-BOOK 진흥회, 주식회사 쿠온)
「한국문학번역상 신인상」(한국문학번역원)
「2025년 한국 문학 번역 대회」(주오사카한국문화원)……
도전하고 탈락하고, 대책을 세우고 또 도전하고 또 탈락하고.
그런 과정을 몇 년이고 반복해 왔다.
구입한 지정 도서들이 책장을 하나둘 채워갔다.
『쇼코의 미소』,『선릉산책』,『토끼와 잠수함』,『우상의 눈물』……
문득 돌아보니 벌써 10번이나 실패했었다.
그런 가운데 맞이한 2025년.
올해만큼은…
한국 유학을 간 지 20년이 되는 올해만큼은,
꼭 수상하고 싶었다.
그리고 20년 전의 나에게, 그 결과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는 올해도 탈락이었다.
나는 능력도, 자격도 없는 걸까.
이제 그만두어야 하나,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부족한 걸까?”
그런 마음으로 지금 일본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문학 번역가인 사이토 마리코 선생님의 저서를 손에 잡히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사이토 마리코 선생님은 『작별하지 않는다』, 『82년생 김지영』 등 한국문학 번역을 다수 맡았고, 본인 저서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적 배경도 폭넓게 소개하고 계신 분이다.
선생님의 책에는 한국문학과 작가들에 대한 깊은 호기심,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문필력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직 내게는 한국어 독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사전 없이 문학 작품 하나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을.
게다가 일본어든 한국어든 어휘력이 부족해서 내 생각을 제대로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결국 아직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마치 값싼 운동화를 신고 한라산에 오르려 했던 것과 다름없었다.
등산에 견딜 만한 등산화를 갖추고, 오르막도 내리막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다리와 체력을 길러야 했다.
그런데 나는 늘 결과만을 원했던 것이다.
2025년 여름.
나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일본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8월부터 일본어로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럼, 한국어 실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그때, 한국 작가들이 활동하는 브런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들여다보니, 브런치의 세계에는 나처럼 고민을 품고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떤 글에서는 함께 가슴 아파하고,
어떤 글에서는 함께 미소 지었고,
어떤 글에서는 낯선 세상을 함께 여행했다.
그런 가운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도 브런치에 도전해 보고 싶다.”
하지만 일본인인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망설였다.
그런 나의 등을 떠민 건, 다름이 아니라 20년 전의 나였다.
그 여름, 한국어능력시험 6급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걸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던 내가 응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우선 그 20년 전의 경험을 한국어로 써보자.
그리고 9월,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한국어는 나에게 외국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국어로는 절대 쓸 수 없는 내면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 같은 건, 일본어로는 절대 쓸 수 없다. 그런 이야기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써 내려갔다.
지금, 2025년을 마무리하며,
그동안 브런치에 발행한 글들을 도전의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브런치북으로 엮기로 했다.
이유는 단 하나다.
20년 전, 한국에 유학하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내가 바라던 것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나 역시 여전히 꿈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는 모습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분명, 나는 또다시 도전할 것이다.
도전하고 실패한 만큼 이야기가 생기니까.
실패의 경험이 나를 브런치의 세계로 이끌어준 것처럼, 헛된 도전은 결코 없으니까.
꿈을 이루는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 “2025년이 내 원점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계속 도전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오늘의 나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2025년 1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