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학생’
그것은 작년 여름, 그러니까 2025년 여름,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단기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아들을 배웅하고 아내가 기다리는 장모님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낯선 할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학생’
난 40대이며 학생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엔 할머니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주변에는 나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다 좀 전화해 줄래요? 어떻게 지불하는지 모르겠네’
확실하다.
내 눈을 보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땀이 줄줄 흐르던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저는 외국인이에요’
당황한 나는 그렇게 한마디를 하고서 모퉁이를 돌아 집으로 서둘렀다.
그때의 일은 오랫동안 마음에 걸렸다.
나는 20년 전에 한국에 유학 와서 한국어를 배웠다.
그런데도 도움이 필요한 할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도와드릴 수 없었다.
물론, 외국인인 내가 할머니 대신에 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지불 방법에 대해 문의하는 것은 좀 어려운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도와드리자고 마음만 먹었더라면, 그 자리에서 한국인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는 처음부터 마주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지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그때 느낀 무력감과 한심함은 귀국 후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국과의 사이에 스스로 만든 벽을 허물어 보려는 도전이었다.
일본인으로서가 아닌, 브런치에서 활동하는 다른 작가들처럼, 글을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런 가운데 내 안에서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일본에 사는 일본인이지만 브런치 세계에서는 완전한 ‘외국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외국인 문제에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노동력 부족을 배경으로 급증한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오버투어리즘으로 이어지는 외국인 관광객들과의 마찰 속에서 일본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배타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물론, 자신들의 언어가 아닌 말을 쓰는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이 사는 곳에 몰려들면 불안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인이라면 잊어서는 안 될 과거가 있다.
한때 한반도와 아시아 여러 나라를 제 집처럼 활보하던 ‘외국인’이었던 과거 말이다.
그런 과거와 마주하게 되면 나는 외국인으로서, 아니 일본인으로서 브런치라는 세계에 내가 들어와도 되는 걸까 하는 갈등이 생긴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소심한 사람이니까.
오늘로 브런치를 시작한 지 딱 4개월이 되었다.
그런 갈등을 안은 채, 지금까지 열 편의 이야기를 써왔다.
이 글들을 「소심한 일본인, 브런치에 도전하다」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으로 엮어, 여기서 한 번 이 여정을 마무리하려 한다.
2025년으로부터 2026년으로 바뀌고…
이제 곧 다시 모퉁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가야 할 집에 곧 도착한다.
그리고 낯선 할머니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
나에게 무언가 말을 걸려는 듯하다.
지금의 나라면 어떨까.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까.
2026년 1월 11일
(2006년 1월 11일, 한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꼭 20년 되는 날에)
또 가까운 좋은 날, 다른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