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삼단논법 - 프롤로그

논리적으로 위로받는 법

by 수담

어느 월요일 아침이었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한 직장인이 출근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어깨가 축 처져 있었고,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죠. 그 모습이 3년 전 제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강사로서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지만, 정작 제 삶은 그 말들로 위로받지 못했습니다. 격려는 힘이 세지만 때로는 너무 가벼웠고, 조언은 현명했지만 가끔은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날 밤, 우연히 옛날 노트를 뒤적이다가 대학 시절 철학 수업 필기를 발견했습니다. 거기 삐뚤빼뚤하게 적혀 있던 삼단논법. "대전제 - 소전제 - 결론." 왠지 모르게 이 단순한 구조가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논리는 냉정하지만 정직했습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반전이 있었습니다. 두 개의 진실이 만나면 예상치 못한 세 번째 진실이 탄생했습니다.


"인간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그날부터 저는 삼단논법으로 제 일상을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금이다. 금보기를 돌같이 하라. 그러므로 시간을 돌같이 대하자."


처음으로 늦잠을 자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논리적으로 타당했으니까요.^^


"완벽은 좋음의 적이다. 연습이 완벽을 만든다. 그러므로 연습은 좋음의 적이다."


처음으로 마감을 앞둔 보고서를 '적당히'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정당했으니까요.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만든 삼단논법을 강연에서 살짝 언급했더니, 청중들이 웃었습니다. 그리고 메모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한 분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오늘 처음으로 위로가 논리적으로 느껴졌어요."


그 말이 이 시리즈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는 평생 답을 찾으며 살아갑니다. 이 선택이 맞는지, 이 길이 옳은지. 하지만 인생에는 수학 문제처럼 명확한 정답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논리'라고 믿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정답이 아니어도,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면 우리는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의 30편 삼단논법은 완벽한 논리학 교과서가 아닙니다. 때로는 억지스럽고, 가끔은 궤변 같고, 자주 장난스럽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제가 삶에서 배운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무거운 어깨로 출근길을 걷고 있다면,
당신이 지금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당신이 지금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면,


이 작은 삼단논법들이 당신의 마음에 쉼표 하나쯤은 찍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논리적으로,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