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작은 죽음이다." — 폴 엘뤼아르
헤어지던 날
나는 죽지 않았다.
심장은 여전히 뛰고
숨은 여전히 쉬고
눈은 여전히 떴다.
하지만
뭔가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네게 연락하던 습관
죽었다.
재밌는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네게 말하던 버릇
죽었다.
"우리"라고 말하던 입버릇
죽었다.
폴 엘뤼아르는 옳았다.
이별은 작은 죽음이라고.
사람이 죽는 게 아니라
관계가 죽는다.
너와 내가 죽는 게 아니라
우리가 죽는다.
카페에 갔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예전엔
"아메리카노 한 잔, 바닐라 라떼 한 잔이요."
였는데.
이제는 한 잔.
영화를 봤다.
옆자리가 비어 있었다.
예전엔
네가 앉아서
팝콘을 먹으며
웃었는데.
이제는 빈자리.
집에 돌아왔다.
"다녀왔어."
대답이 없다.
예전엔
"어, 왔어?"
네 목소리가 들렸는데.
이제는 침묵.
그래서 이별은
죽음과 닮았다.
살아 있지만
뭔가 없어진다.
숨 쉬고 있지만
뭔가 멈춘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약이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죽진 않는다.
가끔
네가 좋아하던 노래가 나오면
작은 죽음이 다시 살아난다.
우리가 자주 가던 길을 지나면
작은 죽음이 다시 아프다.
네 이름과 비슷한 이름을 들으면
작은 죽음이 다시 숨 쉰다.
그래서
이별은
한 번의 죽음이 아니라
수백 번의
작은 죽음이다.
매일 아침
네게 연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죽는다.
재밌는 일이 생겨도
너와 나눌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며
죽는다.
밤에 잠들기 전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죽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매일 조금씩 죽으면서
나는
조금씩
살아난다.
혼자 커피를 마시는 법을 배우고
혼자 영화를 보는 법을 배우고
혼자 집에 돌아오는 법을 배운다.
"우리" 없이
"나"로 사는 법을
천천히
배운다.
그래서 깨달았다.
이별이 작은 죽음이라면
동시에
작은 탄생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가 죽으면
나와 너가 다시 태어난다.
함께였던 내가 죽으면
혼자인 내가 다시 살아난다.
아프다.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견딜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음 다음엔 항상 새로운 삶이 오니까.
오늘도
작은 죽음을 견뎠다.
네가 없는 하루를
살아냈다.
네 생각이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워해도
찾아가지 않았다.
내일도
견딜 것이다.
모레도
그 다음 날도
그리고 언젠가
작은 죽음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완전히
새로 태어나 있을 것이다.
이별은 작은 죽음이지만
동시에
작은 부활이다.
죽으면서
다시 사는 것.
그것이
이별을 견디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