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하는 것의 아름다움

by 수담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익숙해질 뿐이다." — 헤르만 헤세



"이제 잊었어?"

친구가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응, 잊었어."


거짓말이었다.

잊지 못했다.


단지
익숙해졌을 뿐.




네 이름을 듣는 것에
익숙해졌다.


예전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조금 아릴 뿐.


네가 없는 하루에
익숙해졌다.


예전엔
하루가 1년 같았는데


이제는
그냥 하루.


네 생각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예전엔
눈물이 났는데


이제는
미소 짓게 된다.




헤세는 옳았다.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건 불가능하다고.
다만 익숙해질 뿐이라고.




사람들은 착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된다고.


아니다.

잊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1년이 지났다.

네 얼굴은
여전히 선명하다.


네 목소리는
여전히 들린다.


네 웃음소리는
여전히 기억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들이
아프지 않다.


예전엔

네 생각을 하면
가슴이 무너졌다.


네 사진을 보면
숨이 막혔다.


네 이름을 부르면
목이 메었다.


하지만
이제는


네 생각을 하면
조금 그립다.


네 사진을 보면
조금 쓸쓸하다.


네 이름을 부르면
조금 멍해진다.


"조금"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그게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엔
100도의 뜨거운 물이었다.


손을 대면
화상을 입었다.


시간이 지나
90도가 되고
80도가 되고
70도가 되었다.


이제는
40도쯤 된다.


따뜻하지만
뜨겁지 않다.


손을 대도
화상을 입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

네 기억을
만질 수 있다.




우리가 함께 갔던 카페에
혼자 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좋아하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봤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프지 않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견딜 수 있을 만큼 아프다.




그리고 깨달았다.


잊지 못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왜냐하면


네 기억은
내 인생의 일부니까.


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으니까.




함께 웃었던 날들
함께 울었던 밤들
함께 걸었던 길들


전부
나를 만든
소중한 시간들.


그걸
왜 지워야 하지?


이제는
네 기억이
아프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그때 좋았지."


이렇게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좋아"가 아니라
"그때 좋았지."


이게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가 되는 것.


그리고


과거는
아름답다.


왜냐하면


과거는
더 이상 변하지 않으니까.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으니까.




이제
나는 안다.


사랑했던 사람을
잊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단지
익숙해지면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익숙해지면


그 사람은
내 상처가 아니라
내 역사가 된다.


아픔이 아니라
성장이 된다.


슬픔이 아니라
추억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너를 기억한다.


잊지 않았지만
괜찮다.


익숙해졌으니까.


그리고 안다.


잊지 못하는 것도
때로는 아름답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증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