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80] 수능 그리고 입시제도

극도로 이상적인 이야기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이야기

by 명경

수능은 1993년에 첫 시험이 치러진 이후 올해까지 30여 년 동안 대한민국 대학입시의 핵심 역할을 해왔다. 그 사이 교육과정은 여섯 차례나 대대적으로 개정되었고, 사회와 산업 구조는 더 빠르게 변화했지만, 수능이라는 시험은 놀라울 정도로 예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한 문제들이 점점 기괴한 방향으로 비틀어지고,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는 ‘킬러 문항’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등 난이도 조절 실패가 매년 논란이 되고 있다. 때로는 학계에서도 정답을 두고 의견이 갈릴 정도다.

최근에는 대학교수나 전문가들이 수능문제를 풀어보는 콘텐츠가 유행처럼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들조차 시간 내에 풀지 못하거나 문제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이는 시험의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수능 외의 다른 입시제도에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어디를 어떻게 손대야 하는지조차 감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나는 그 복잡한 문제들의 중심에 ‘대학 서열화’라는 뿌리 깊은 구조가 놓여 있다고 본다.

‘인서울’, ‘스카이’, ‘대치동’, ‘의대’. 어느새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이 단어들은 우리나라 입시제도가 만들어낸 기괴한 문화적 산물이다. 대학 간 서열이 너무 강하게 고착화되어 있다 보니,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보다 대학 이름을 우선하고, 지역의 우수한 인재들도 굳이 비싼 집값과 생활비를 감수하며 서울로 몰려든다.

만약 대학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가정해 보자. 지방에 사는 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지역 대학에서도 질 좋은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졸업 후의 기회가 고르게 주어진다면, 많은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완화될 것이다.

대학 서열이 약화되면 입시제도는 지금처럼 비정상적으로 과열될 필요가 없다. 수도권 집중 문제도 완화되고, 지방에 인구가 분산되며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산업과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더 나아가 학생들 역시 입시 경쟁에만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탐구할 여유를 갖게 된다.

어쩌면 이런 발상이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교육 현장에서 수십 년 동안 입시를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하나다. 한국 입시제도의 근본 문제는 대학 서열화가 만들어낸 불균형 구조에 있다. 그리고 이 구조를 해결하지 않고는 어떤 제도 개편도 근본적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나는 교육은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개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결국 그 세대가 스스로 더 나은 입시제도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중앙에 지나치게 집중된 고등교육의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지방의 대학을 어떻게 경쟁력 있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역을 살릴 수 있는 요소는 문화, 산업, 관광 등 다양하지만, 그중에서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교육이 바뀌면 지역이 바뀌고, 지역이 바뀌면 결국 나라 전체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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