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버라이닝 May 28. 2024

어른이 되기 위한 글쓰기

책에서 발견한 슬픔 사전 

카톱트릭 트리스테스(CATOPTRIC TRISTESSE)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착하게 생각할지 나쁘게 생각할지,
혹은 어떤 식으로든 생각하기나 할지-비록 여기저기서 몇몇 힌트를 모으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한 의견을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중 어떤 의견이 아첨하느라 누그러뜨려진 것이고,
어떤 의견이 악의로 날카로워진 것이며,
어떤 의견이 그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말해지지 않은 것인지-절대 알 수 없으리라는 슬픔. 

<슬픔에 이름 붙이기>. 존케닉 중에서 





바다는 늘 움직인다. 감정 역시 마찬가지.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 늘 신경쓴다. 

나를 나쁘게 생각할까 봐 힘들어도 힘들지 않는 척한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태도가 나의 캐릭터가 되고 

나의 능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가면을 쓰고 상황에 따라 단호하거나 

유연하거나 성실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만 '프로'라 추앙받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는 없고 가면을 쓴 '나'만 남아 있다. 

남들의 평가에 연연하느라 정작 나의 일상조차 돌보지 않았다. 

팀원들에게 꼰대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잔소리하는 대신 

내가 처리하거나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에 웃으며 

팀원들을 다독이기만 했다.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갇혀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 

'사람만 좋으면 뭘해'가 최악의 상사를 말하는 것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대로 표현하지 않고 

적절한 타이밍에 대처하지 않았기에 늘 악순환이었다. 

팀원은 부장한테도 깨지고 나한테도 깨진다고 

제대로 일의 지침을 내려줘야 한다고 불평했고 

부장은 팀원들 일정 관리와 멘탈 관리를 못한다고 타박했다. 


그 모든 문제는 나의 '자존감'의 문제였다. 

남에게 휘둘리고 뭐든 내가 부족하고 나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나 때문'이야라는 말은 나를 갉아먹는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평생 알지 못한다는 것은 슬픔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비극은 

남의 시선과 평가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른은 나를 잘 돌보는 사람이다. 

뭔가 뺏기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 나를 평가하고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비싼 집, 좋은 차,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 눈앞의 것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찾는 것이 삶의 기쁨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하루 한 번 나를 생각하는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