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글쓰기
사진을 찍는 것은 그 순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또한 잊지 않으려는 욕망이기도 하다.
잊지 못할 풍경을 사진이 아닌 마음으로 담는 일,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 Roksolana Fursa
어제는 암환자 5년차인 아버지의 검진이 있는 날이다. 새벽 5시 58분 첫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는데 이번엔 엄마와 함께셨다. 요즘 부쩍 걷는 게 귀찮다는 아버지가 걱정되셨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병원까지 오는 셔틀이 있지만 대기 줄도 어마어마하고 배차 간격이 30분이라 언제나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오셨다. 늘 내가 모시러 갔지만 어제는 사정이 여의치 않기도 했고 엄마가 있으니 알아서 잘 오시리라 생각했다.
아이 보내느라 아침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버지, 어머니가 노인이라는 것을 잠시 간과했다. 병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병원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어디냐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20분이나 서 있는데 사람이 많아서 택시를 못 잡았다."
아차 싶었다. 결국 나는 카카오앱으로 부랴부랴 부모님 택시를 잡아드리고 우여곡절 끝에 병원 검진 시간 10분 후에나 부모님은 병원에 도착하셨다.
카카오앱을 사용하지 못하는 노인들에게는 택시 잡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택시를 잡으려고 하면 '예약'이라는 글자가 켜진 택시들만 오가고, 정작 빈 차를 찾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부모님 말에 의하면 젊은 사람들만 택시를 타고 바로 가고 우리 같은 노인들만 줄을 선단다.
물론 부모님께 카카오택시 앱 사용법을 안 알려드린 건 아니다. 몇 번이나 알려드려도 부모님들은 앱 켜는 거부터 카드 확인, 위치 선정까지 모든 게 미션 임파서블이다. 문자밖에 쓰지 않는 80대인 아버지는 아예 배제하고 엄마에게라도 알려드리려고 했지만 다 실패.
어디서든 키오스크, 앱으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저번 검진날에는 어느 할머니 한 분이 밥을 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셔서 대신 주문을 해드렸는데 카카오톡으로 알람이 오는 시스템이었다. 즉, 알람이 받지 못하면 언제 식사가 나오는지 알 수 없는 것.
밥뿐만 아니다.
병원은 거대한 키오스크다. 도착하면 진료카드로 도착 확인에 맥박과 몸무게를 재고 채혈실로 이동해 또 키오스크로 대기를 한다. 기계 앞에서 화를 내는 건 우리 아부지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5년차, 도착 확인은 혼자 하실 수 있으시지만 병원에 오실 때마다 노인들은 예민해진다. 그리고 기계 앞에 선 부모님들의 뒷모습을 보면 '배우시면 되는데' 하다가도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나 역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중년인 나도 키오스크 앞에서 작아진다. 기프티콘이나 할인을 찾거나 메뉴 추가를 할 때도 한참 헤맨다. 평생 배워야 하는데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민폐를 안 끼치고 나이스하게 나이들고 싶은데, 쉽지 않다. 스마트는 편하면서도 인간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빠르고 편리하지만 누군가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심지어 편리한 기능을 누리는 걸 초스피드로 단념하게 만든다.
무지막지한 검사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내려가시는 두 분의 뒷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아직도 일일이 기차표를 끊어서 지갑에 넣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한 아부지와 더 왜소해진 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기차표를 나란히 좌석 앞에 걸어두신 완전 촌할매, 할배. 지금처럼만 있어 주세요.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두 분은 변하지 말고 내 곁에 오래 계셔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