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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May 30. 2024

오늘의 풍경

일곱 번째 글쓰기

사진을 찍는 것은 그 순간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또한 잊지 않으려는 욕망이기도 하다.

잊지 못할 풍경을 사진이 아닌 마음으로 담는 일,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Roksolana Fursa



어제는 암환자 5년차인 아버지의 검진이 있는 날이다. 새벽 5시 58분 첫 기차를 타고 올라오셨는데 이번엔 엄마와 함께셨다. 요즘 부쩍 걷는 게 귀찮다는 아버지가 걱정되셨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병원까지 오는 셔틀이 있지만 대기 줄도 어마어마하고 배차 간격이 30분이라 언제나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오셨다. 늘 내가 모시러 갔지만 어제는 사정이 여의치 않기도 했고 엄마가 있으니 알아서 잘 오시리라 생각했다.

아이 보내느라 아침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버지, 어머니가 노인이라는 것을 잠시 간과했다. 병원에서 만나기로 하고 병원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어디냐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20분이나 서 있는데 사람이 많아서 택시를 못 잡았다."


아차 싶었다. 결국 나는  카카오앱으로 부랴부랴 부모님 택시를 잡아드리고 우여곡절 끝에 병원 검진 시간 10분 후에나 부모님은 병원에 도착하셨다.

 

카카오앱을 사용하지 못하는 노인들에게는 택시 잡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택시를 잡으려고 하면 '예약'이라는 글자가 켜진 택시들만 오가고, 정작 빈 차를 찾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 부모님 말에 의하면 젊은 사람들만 택시를 타고 바로 가고 우리 같은 노인들만 줄을 선단다.

물론 부모님께 카카오택시 앱 사용법을 안 알려드린 건 아니다.  몇 번이나 알려드려도 부모님들은 앱 켜는 거부터 카드 확인, 위치 선정까지 모든 게 미션 임파서블이다. 문자밖에 쓰지 않는 80대인 아버지는 아예 배제하고 엄마에게라도 알려드리려고 했지만 다 실패.


어디서든 키오스크, 앱으로 움직이는 세상이다.

저번 검진날에는 어느 할머니 한 분이 밥을 시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셔서 대신 주문을 해드렸는데 카카오톡으로 알람이 오는 시스템이었다. 즉, 알람이 받지 못하면 언제 식사가 나오는지 알 수 없는 것.

밥뿐만 아니다.

병원은 거대한 키오스크다. 도착하면 진료카드로 도착 확인에 맥박과 몸무게를 재고 채혈실로 이동해 또 키오스크로 대기를 한다. 기계 앞에서 화를 내는 건 우리 아부지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5년차, 도착 확인은 혼자 하실 수 있으시지만 병원에 오실 때마다 노인들은 예민해진다. 그리고 기계 앞에 선 부모님들의 뒷모습을 보면 '배우시면 되는데' 하다가도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나 역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사실 중년인 나도 키오스크 앞에서 작아진다. 기프티콘이나 할인을 찾거나 메뉴 추가를 할 때도 한참 헤맨다. 평생 배워야 하는데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민폐를 안 끼치고 나이스하게 나이들고 싶은데, 쉽지 않다. 스마트는 편하면서도 인간을 소외시키기도 한다. 빠르고 편리하지만 누군가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심지어 편리한 기능을 누리는 걸 초스피드로 단념하게 만든다.


무지막지한 검사를 마치고 기차를 타고 내려가시는 두 분의 뒷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아직도 일일이 기차표를 끊어서 지갑에 넣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한 아부지와 더 왜소해진 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기차표를 나란히 좌석 앞에 걸어두신 완전 촌할매, 할배. 지금처럼만 있어 주세요. 세상이 아무리 빨리 변해도 두 분은 변하지 말고 내 곁에 오래 계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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