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 눈사람이 있는 함박눈 풍경

[2월호] 나를 보여주는 책 한 권

by 담장넘어도깨비

"친구들처럼 같이 모이자." 선생님이 부른다.

집중하느라 못 듣는 것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하얀 스케치북 위 눈 쌓인 언덕과 중앙에 눈사람 하나, 깨알 같은 눈송이가 그려진 겨울 풍경. 관절이 부러질 듯 크레파스를 꽉 쥐고 주구장창 눈송이를 색칠한다. 계절과 상관없이 유치원을 다니는 내내 거의 같은 그림이었다. 유일한 변화는 기분과 상황에 따라 눈송이 개수가 작아지거나 많아졌고, 눈사람의 빨간 바케쓰 모자, 목도리, 배에 달린 단추들이 소박해지거나 화려해지는 것이었다


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겨울의 하얀 눈을 좋아했다. 예쁜 결정체를 가지고 있는 그 하얀 눈이 마법 같아서 좋았다. 신이 만든 만물 중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작품은 눈이라 생각했다. 아름다운 결정체가 손등에 떨어져 물이 되는 과정은 아름답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게어다, 이 볼록렌즈 좀 봐!"
눈송이는 훨씬 커졌어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 한 송이 같기도 하고, 육각형 모양의 별 같기도 했어요. 정말 아름다웠지요.
카이가 말했어요.
"굉장히 신기하지? 나는 진짜 꽃보다 이게 훨씬 더
재미있어! 흠이 단 한 개도 없어, 녹지만 않으면 자로 잰 것처럼 계속 반듯반듯할 거야!"

-눈의 여왕 (166쪽)-



시골의 겨울은 코와 손끝이 떨어질 만큼 추웠지만 함박눈이 퐁퐁 내리는 날은 오리털 이불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다. 무릎까지 눈이 쌓인 날은 세상이 하얀 오리털로 호강하는 날이 되었다. 모든 걸 다 덮어주었다. 나온 건 나온 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지붕은 지붕대로 더러운 쓰레기더미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따뜻한 이불로 감싸주는 행복한 날이었다. 여왕벌과 하얀 벌들이 정말 떼 지어 왔다 간 것이다.


"하얀 벌들이 떼 지어 날아다니고 있구나!"

"하얀 벌도 여왕벌이 있어?"

아이는 진짜 벌들 가운데 여왕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요.

“겨울밤에 여왕벌이 거리를 날아다니다가 창문을 들여다볼 때도 있단다. 그러면 참 이상하게도 창문에 성에가 잔뜩 끼지. 그러면 창문이 완전히 꽃처럼 보인단다."

-눈의 여왕(p161)-


유치원 1년은 사진을 찍는 것도 즐겁게 웃는 것도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선생님 물음에 네 아니면 도리도리뿐이다. 100년 같은 1년은 스스로를 타인으로부터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친구가 없어서 혼자가 아니라 나는 수많은 눈송이를 칠해야 해서 시간이 없을 뿐이다. 선생님 물음에 겁이 나서 말 못 한 것이 아니라 눈송이를 집중해서 칠하느라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이해받고 싶었다. 그렇기에 흰 눈이 펑펑 내리는 함박눈 풍경과 눈사람은 딱 알맞는 소재이자 어색함을 채워주는 천하무적이었다. 끝내 유치원 졸업까지 친구 한 명을 못 사귀는 벙어리로 졸업했지만 동료를 알지 못한 아쉬움은 없었다. 도화지를 가득 메운 하얀 벌들 덕분에 1년을 어색하지 않게 나의 손이 매우 분주해져 몹시도 바빴을 뿐이다. 눈 내리는 겨울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기에 나에게 눈의 여왕은 단순한 허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온 세상을 가장 아름답고 따뜻하게 꾸며주는 하얀 눈의 마음씨가 하얀 눈을 닮아 있어 마음이 먹먹하고 행복했다. 잊고 싶은 기억들에도 하얀 눈이 덮여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동화 속 눈의 여왕님이 정말 있을 것만 같아서 조금 더 오래 눈을 볼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랬다. 먹먹하고 포근하고 아름다운 풍경으로 조금만 더 행복에 머물고 싶었다

함박눈과 눈사람 하나 - 아이 그림에 채색